소설 연재
원남동 서점의 아침은 언제나처럼 조용하고 평온했다. 책장 사이를 돌며 어제 진아가 어제 놓고 간 책을 정리하고 있었다. 서점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자, 나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었다. 진아가 다시 찾아왔다. 이번에는 혼자가 아니었다. 경찰관과 함께였다.
“무슨 일이시죠?” 이마에 지저분하게 흘러내린 머리카락 두 세 가닥을 황급히 정리하며 인사를 건넸다.
경찰관은 진아를 보호소로 데려가기 위해 온 것 같았다. 그러나 진아의 표정을 보니 뭔가 다른 이야기가 있는 것 같았다.
“진아야, 괜찮니?” 걱정스러운 눈으로 그 아이를 바라보았다.
진아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눈에는 여전히 불안함이 가득했다. 경찰관은 잠시 우리를 지켜보다가 말을 꺼냈다. “이 아이가 집에서 학대를 받고 있다는 신고가 들어왔습니다. 보호소로 데려가기 전에 잠시 이곳에 머물러도 괜찮겠습니까? 진아 양이 보호소 가기 전에 꼭 이 서점에 들러야 한다고...”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물론입니다. 진아야, 여기는 안전한 곳이니까 걱정하지 마.”
진아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내게 다가왔다. 그 아이의 손을 잡고 서점 안쪽으로 안내했다. “진아야, 여기는 네가 편히 있을 수 있는 곳이야. 무엇이든 말해도 돼.”
경찰관은 잠시 서점 밖에서 기다리겠다고 하고 나가셨다. 나는 진아를 편안한 소파에 앉혔다.
“목말라? 뭐 마실래?”
진아는 잠시 고민하다가 작게 대답했다. “물 좀 주세요.”
진아에게 물을 건네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진아야,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진아는 물을 한 모금 마시고는 고개를 숙였다. “아빠가... 화가 많이 나셨어요. 저를... 때렸어요.”
나는 진아의 손을 잡고 말했다. “진아야, 괜찮아. 여기서는 아무도 너를 해치지 않을 거야. 언니는 너를 도와줄 거야. 솔직하게 말해도 괜찮아.”
진아는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워요, 언니.”
나는 진아를 꼭 안아주며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이 아이를 반드시 지켜주겠다고.
그 후로, 진아는 종종 서점을 찾아와 나와 이야기를 나눴다. 그녀는 서점의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조금씩 마음의 안정을 찾기 시작했다. 어느 날, 진아는 내가 책을 정리하고 있을 때 다가와 조용히 말했다.
“언니, 나... 사실은 책을 좋아해요. 책 읽으면... 잠시라도 다른 세상에 있는 것 같아서.”
나는 진아의 말을 듣고 미소 지었다. “진아야, 네가 책을 좋아해서 정말 기뻐. 여기 있는 책들 중에 네가 읽고 싶은 게 있으면 언제든지 말해줘. 언니가 진아한테는 무료로 빌려줄게. 정말이야.”
진아는 기뻐하며 책장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그녀의 표정이 한결 밝아진 것 같았다. 나는 진아가 책을 통해 조금이라도 위로를 받기를 바랐다. 사실 내가 책방 주인이 된 것도 책, 특히 소설을 읽을 때는 정말 내가 아닌 기분이 들어서 좋았다. 타인의 삶을 살아보는 기분. 나쁘지 않았다. 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삶에서 잠시라도 벗어나고 싶었다. 소설은 나에게 일탈이자 여행이며 위로 그 자체였다. 소설 속 주인공이 울면 나도 울고, 웃으면 나도 웃었다. 책방을 차린 것도 다 내 운명이겠지. 진아를 만난 것도. 전부 다.
어느 날, 진아는 나에게 한 권의 책을 내밀며 물었다. “언니, 이 책 읽어도 돼요?”
나는 책을 받아 들고 제목을 보았다. <우울에는 도돌이표가 찍혀있지>라는 책. 어린 진아가 읽기에 조금 어려울 수도 있지만 어리다고 동화책만 읽으면 안 되니까. “물론이지, 진아야. 이 책 정말 슬픈데 재미있어. 이 책에도 진아처럼 씩씩한 언니가 주인공으로 나오거든! 언니도 이 책 읽고 용기가 났어. 살아갈 용기. 이겨낼 용기. 앞으로 나아갈 용기!”
진아는 그 책을 소중히 안고 소파에 앉아 읽기 시작했다. 그녀의 얼굴에는 오랜만에 평온한 미소가 떠올랐다. 나는 그런 진아를 보며 마음이 따뜻해졌다. 서점에서의 시간은 진아에게도, 나에게도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우리는 서로의 상처를 치유하며 조금씩 더 가까워졌다. 진아는 서점에서 자신만의 안식처를 찾았고, 나는 그런 진아를 보며 진정한 의미의 도움을 주는 기쁨을 느꼈다.
하루는 진아가 말했다.
“언니, 나... 학교에서 친구가 없어요. 다들 저를 이상하게 봐요.”
나는 진아의 손을 잡고 말했다. “진아야, 너는 이상한 아이가 아니야. 너는 아주 특별한 아이야. 친구를 사귀는 건 시간이 걸릴 수도 있어. 하지만 분명 좋은 친구를 만날 거야.”
진아는 눈물을 훔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워요, 언니. 언니한테는 고맙다는 말만 계속하게 되네요.”
그날 이후로, 나는 진아가 조금 더 자신감을 가질 수 있도록 여러 가지 활동을 함께 했다. 우리는 함께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고, 서점에서 열리는 작은 모임에도 참석했다. 진아는 점차 밝은 모습을 되찾아갔다.
어느 날, 서점에서 독서 모임이 열렸다.
“진아야, 오늘 독서 모임에 참여해 볼래? 새로운 친구들을 만날 수 있을 거야.”
진아는 망설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해볼게요.”
독서 모임에서 진아는 처음엔 긴장한 표정을 지었지만, 곧 다른 아이들과 어울리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나는 그런 진아를 보며 뿌듯함을 느꼈다.
독서 모임이 끝난 후, 진아는 나에게 다가와 말했다.
“언니, 오늘 정말 즐거웠어요. 친구들도 많이 사귀었고요.”
나는 미소 지으며 말했다. “그럼 정말 다행이네, 진아야. 너도 이제 좋은 친구들을 많이 사귈 수 있을 거야.”
진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언니 덕분이에요. 정말 고마워요.”
그렇게 진아와 나의 일상은 조금씩 변해갔다. 우리는 서로를 통해 성장하고, 서로에게 힘이 되어 주며, 더 나은 내일을 꿈꾸기 시작했다. 진아의 상처는 아직 아물지 않았지만, 내가 진아의 아픔을 보살펴 줄 수 있을 거라 믿었다. 어린 시절의 나에게는 나 같은 어른이 주변에 없었다. 너무 외로웠다. 슬펐다. 공허했다. 세상에 태어난 게 잘못처럼 여겨졌다. 진아에게는 그런 감정을 느끼게 하고 싶지 않았다.
서점의 문이 닫히는 그날 밤, 나는 진아와 함께 서점을 정리하며 말했다.
“진아야, 이제 너는 나에게 소중한 가족이야. 언제든 이곳에 와서 쉴 수 있어. 알겠지?”
진아는 눈물을 글썽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언니. 알겠어요. 그럴게요.”
나는 진아를 꼭 안아주며, 우리 앞에 놓인 밝은 미래를 그려보았다. 뭔지 모를 확신이 들었다. 나와 진아 둘 다 행복할 수 있다는 그런 확신. 비록 오늘 서점 손님이 진아 한 명이었지만. 슬프지 않았다. 내 공간이 누군가에게 치유의 장소가 될 수 있으니까. 그게 단 한 명뿐이라도. 괜찮았다. 내가 책방을 연건 때부자가 되기 위해서도 아니었고, 돈을 억수같이 벌려고 한 게 아니었으니까. 단, 한 명의 손님이라도. 행복해질 수 있다면. 그거면 충분하다. 책방지기 하길 정말 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