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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회 - 위기의 서막

SF사극《시간을 품은 달》

by 엄태용

1777년 7월, 경희궁


경희궁 지붕 위로 길게 뻗은 달 그림자. 여름밤, 서늘한 긴장이 감도는 정조의 침전. 잠들지 못했다. 창가에 서서 어둠을 바라보았다. 즉위한 지 일 년 하고도 넉 달. 여전히 왕이라는 자리에 익숙하지 않았다. 아니, 익숙해지고 싶지 않았다. 왕이 된다는 것은 고독해진다는 뜻이기도 했다.


"전하."


어둠을 가로지르는 율의 목소리. 푸른빛으로 미세하게 흔들리는 율의 눈동자.


"무엇이냐."

"경계 시스템에 이상 신호가 감지되었습니다."


평소와 사뭇 달라진 율의 표정. 내면 깊은 곳, 수많은 변수가 빠르게 계산되고 있다.


"적인가?"

"확률상 그렇습니다."


푸른 빛이 더 짙어진 율의 눈동자. 내부에서 수많은 데이터가 강물처럼 흘렀다. 침입자의 움직임, 호위병의 위치, 가능한 도주 경로. 모든 것이 0.3초 안에 분석되었다.

정조는 조용히 물었다.


"짐을 죽이러 온 자들인가."

"그럴 가능성이 높습니다."


순간, 침전 밖에서 희미한 소음이 들렸다. 여러 명의 발걸음 소리. 율의 감각에는 모든 것이 선명했다. 율이 앞으로 나섰다. 몸에서 미세한 진동이 일었다. 전투 준비 상태였다.


"전하, 뒤로 물러서십시오."

"아니다. 짐은 도망치지 않는다."


율의 눈동자에서 푸른 빛이 미세하게 깜빡였다. 내부에서 알 수 없는 감정이 데이터 사이로 스며들었다. 정조를 지켜야 한다는 명령과, 정조의 의지를 존중해야 한다는 새로운 코드가 서로 충돌했다.


그때였다.

문이 열렸다.

검은 옷을 입은 자들이 침전 안으로 뛰어들었다.

다섯 명.

각자 칼을 들고 있었다. 그들의 눈에는 살의가 서려 있었다.


"사도세자의 아들을 죽여라!"


선두의 자객이 외쳤다.

율이 먼저 움직였다.

몸에서 푸른 빛이 폭발했다. 전투 모드 활성화. 모든 감각이 극한으로 증폭되었다. 시간은 격자무늬로 분해되었다. 율의 시야에서 자객들의 움직임은 궤적을 그리며 예측 가능한 벡터로 변환된다.


율의 내부에서는 이미 전투 시뮬레이션이 가동되었다.


[ 전투 알고리즘 실행 ]

[ 적 5명. 무기: 조선도 5자루 ]

[ 최적 대응법: 순차 제압 ]

[ 예상 소요 시간: 14.7초 ]

[ 정조 안전 확률: 99.94% ]


첫 번째 자객이 정조를 향해 칼을 휘둘렀다.

율이 순식간에 그 앞을 막아섰다. 자객의 칼이 율의 갑옷에 닿았다. 금속끼리 부딪치는 소리가 울렸다. 칼날은 갑옷을 뚫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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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주로 '영상화'를 목표로 사람과의 유대감이 담긴 'SF소설'을 씁니다. 이 세상의 모든 불완전한 존재들을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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