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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라는 죄

by 김영훈 Mar 18. 2025

나는 인간의 악의를 믿지 않는다. 나는 세상의 어떠한 악인도 악의를 가지고 행동한다고 믿지 않는다. 인간은언제나 최선의 선택을 한다. 그것이 제 3자가 보기에 명백하게 악의에 의한 행동처럼 보일 때조차도 그러하다. 예를 들어, 살인이나 자살에 대해 생각해보자. 그러한 행동의 원인이 상대방에 대한 원한이나 나 자신에 대한 혐오에 있다고 해도, 행위 당사자의 입장에서는 최선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것이 다른 사람이 판단하기에 법적으로 윤리적으로 악한 의지에 의한 행동으로 보일지라도, 행위 당사자에게는 최선의 행동일 뿐이다.


나는 인간이 선과 악 가운데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고 믿지 않는다. 인간은 언제나 스스로에게 가장 선해 보이는 것을 선택하기 때문이다. 다만 자신의 선택이 자신을 포함하여 모든 사람에게 선한 결과로 이어지지 않을 뿐이다. 게다가 세상에는 당장에는 선해보여도 시간이 지날수록 그 일이 정말 선한 일인지 악한 일인지 알 수 없게 되어버리는 일들이 많다. 가령, 어떤 사람이 로또 1등에 당첨된 것은 당연히 그 사람에게 좋은 일처럼 보이지만, 그 일이 반드시 선한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갑작스러운 행운이 도리어 저주가 되어버리는 일들을 우리는 세상에서 수없이 목격하기 때문이다.


물론 나는 악의가 없다는 이유로 악인에게 면죄부를 줄생각이 없다. 법정에서는 악인에게 범죄의 의도가 있었느냐 없었느냐가 감경의 사유가 되지만, 나는 모든 인간이 스스로의 의도와 상관없이 자신의 인생에 책임을 져야하는 존재로 태어났다고 믿는 사람이다. 내가 이러한 입장을 가지게 된 것은 물론 경험으로 인해 형성된 것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내가 기독교인이기 때문이다.


기독교에는 원죄라는 교리가 있다. 원죄의 핵심은 아담으로 대표되는 모든 인간은 죄인으로 태어난다는 것에 있다. 인간이 죄인이라는 것은 인간은 스스로의 의도와상관없이 스스로에 대해 책임을 지는 존재로 태어났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인간이 자신의 삶에 책임을 진다는 것은 윤리적 행위 정도가 아니라 인간의 인간다움이며, 그 자체로 신앙인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어떠한 인간도 스스로의 삶을 책임질 수없다는 데 있다. 이것이 인간에게는 근원적인 비극이다. 인간은 자신의 인간다움을 스스로 실현할 수 없는 존재이다. 이것이 인간이라는 존재의 한계이자 독특성이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인간이 자아실현을 통해 성장한다고 믿고 있다. 그러나 기독교는 인간의 인간다움이 자아실현을 통해 만들어진다고 보지 않는다.


기독교에는 은혜라는 말이 있다. 은혜는 흔히 생각하듯인간의 자아실현을 돕는 초월적인 외부의 조력 정도가 아니다. 때로 은혜는 인간의 자아를 붕괴시키고 억압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그러한 갈등과 충돌 속에서 인간다움이 만들어진다고 말하는 것이 기독교이다. 기독교는 참된 인간다움이 예수 안에 있다고 선포한다. 예수는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기이한 의지와 사랑의 표현이다. 인간이 죄인임을 인정해야 구원받는 것이 아니다. 예수 안에서 구원받아야 인간이 죄인임을받아들이게 되고, 인간이 창조주의 놀라운 은혜 안에 있음을 깨닫게 된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나는 인간이 선과 악을 선택하며 산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인간의 선택은 늘 최선의 선택이지만, 그 최선이 생명을 만들어내지 못한다는 것이성경이 증언하는 인간의 역사와 오늘의 경험을 통해서 증명되고 있는 현실이다. 물론 동시에 그러한 인간의 운명과 함께 은혜가 작동하고 있음을 말하는 것도 기독교이다. 그렇기에 기독교인은 절망할 수 없다. 인간이라는 죄보다 더 큰 하나님이라는 은혜가 늘 우리보다 앞서가며, 절망의 끝까지 뒤따라오기 때문이다.



율법이 들어온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이는 죄가 사망으로 말미암아 왕 노릇한 것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노릇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라. (로마서 5: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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