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학년인 아들의 친구를 나는 한 번도 실물로 본 적이 없다. 왜냐면 한 번도 친구를 집에 데려온 적이 없기 때문이다. 또래 아이들 대부분 다니는 영어, 수학 학원도 그동안 안 다녔으니 더 할 말이 없다. 아이들은 대부분 학원에서 친해진다고 했다. 영어 학원 등록 1개월 차 햇병아리 아들에게 영어 학원에서 친구 좀 사귀었냐고 물어봤더니 그런 질문은 하지 말라고 했다. 그러나 저녁마다, 토요일 아침마다 게임을 하자고 전화가 오는 걸 보니 친구가 있기는 한 것 같은데 엄마는 영 미덥지 못하다. 그래서 9월에 본인 생일이 있으니 아들에게 친구들을 집에 초대해서 생일 파티를 해보자고 제안했다. 며칠 고민하던 아들은 그러자고 했다. 혹시나 걱정되었는데 친구가 있기는 있었다.
그동안 아들이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했던 우리 집이 더러워 친구를 초대하지 못했다는 말이 신경이 쓰여 일주일 전부터 청소에 열을 올렸다. 청소할 때만 급격히 집중력이 떨어지는 나는 조금만 정리를 해도 녹초가 되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애들이 학교 갔다 오면 또 어지르고, 나는 또 치우고. 에잇 안 되겠다. 그냥 토요일 아침에 벼락치기로 청소하는 거야!
금요일 저녁 아들에게 물어보니 친구 2명이 온다고 했다. 너무 약소하지 않냐고 물어보니, 1명은 가족이랑 해외여행을 갔고, 1명은 아파서 일주일째 등교도 못 하고 있다고 했다. 꼴랑 두 명 오는데 생일 파티하냐고 딸이 비웃었지만, 뭐 친구가 온다니 그대로 진행시켜!
저녁을 먹고 양치하던 아들은 위쪽 어금니 부분이 흔들린다고 했다. 당장 예약이 불가하니 내일 아침에 치과에 전화해보자고 했다. 그런데 화장실에 들어갔던 아들이 얼마 후 피를 질질 흘리며 뛰어나왔다. 나는 진짜 큰일 난 줄 알았다.
“엄마, 엄마, 내가 이 뽑았어. 잘했지?”
“아니, 치과 간다면서 겁도 많은 애가 무슨 짓을 한 거야?”
“그게 아니고, 내일 엄마가 치킨 피자 시켜주면 그거 먹어야 하잖아.”
그랬다. 겁쟁이 아들은 치킨 피자에 눈이 멀어 순간 전사가 되었다. 그래서 자기 손으로 이를 흔들어 뽑는 놀라운 광경이 벌어진 것이다. 한 상 떡하니 차려진 음식 앞에서 이가 불편해 음식을 포기할 아들이 아니었다.
토요일 오전 피자와 치킨도 주문해 놓고, 케이크와 샤인머스켓도 사왔다. 식탁에 예쁘게 세팅을 해놓고 기다리니 친구들이 왔다. 케이크에 초를 꽂고 노래도 불렀다. 3명이 하는 단출한 생일 파티지만 그래도 할 건 다했다. 기념사진 촬영도 했다. 아들 입이 귀에 걸렸다. 그리고 약속된 1시에 딸과 나는 집을 나갔다. 아들은 절대 5시까지 집에 아무도 들어오지 말라는 당부를 하였다.
딸아이는 친구를 만나러 나갔고, 나는 도서관에 책을 반납하러 갔다가 할 일이 없어서 동네를 배회했다. 동네를 배회하고 있는데 아 글쎄 비가 한 방울씩 떨어진다.
딸아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너, 어디니?”
“엄마, 나 친구랑 비 와서 무인 문구점에서 쭈구리하고 있어.”
“친구 우산 있어?”
“아니, 없는데.”
“비도 오는데 계속 거기 있을 거야?”
“곧 그치겠지. 엄마 끊어.”
딸이 정확한 위치를 알려주지 않았지만 집 앞에 문구점이라면 짚이는 곳이 있었다. 우산을 사기엔 돈이 너무 아깝고 어쩔 수 없이 집에 몰래 들어가서 신발장에서 우산을 두 개 꺼내왔다. 문구점으로 달려가니 아! 딸과 친구가 문구점 바닥에 앉아서 산 물건을 뜯으며 놀고 있다. 내 얼굴을 보고 딸은 깜짝 놀랐고, 그 옆에 친구는 귀신 본 듯이 놀라워했다. 딸에게 우산을 주며 곧 집에서 만나자고 했다.
“아들 생일 잔치한다고 우리 엄마 고생이 많다.”
“힝, 비 오는데 집에 가고 싶다. 엄마 힘들어”
저녁에 아들에게 친구들과 뭐하고 놀았냐고 물었더니 거실에서 게임만 했다고 했다. 그럼 나 방청소 왜 한 거니? 아들이 친구들에게 받았다며 구글 기프트카드를 두 개나 가져온다. 아들의 소원이라고 하니 구글에 접속해서 카드를 등록해 주었다. 생애 최초 현질 기회를 맞이한 아들은 신이 났다. 아들은 자신의 캐릭터를 개간지나게 꾸며놓고 아주 해맑게 웃었다. 엄마! 너무너무 좋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