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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차원 그녀 Apr 14. 2024

행복한 일은 매일 있어

가족회식이 이렇게 재미있을 줄이야!

 

지난주 토요일 가족과 회식했습니다. 3차까지 한 회식은 처음이었습니다. 집에 돌아온 남편은 최근 들어 가장 행복한 날이었다고 했습니다. 행복은 가까이 있다는 말이 틀린 게 아니군요. 이런 소박한 일상에 감동한 남편을 보고 있으니 짠했습니다. 남편은 며칠째 야근으로 저녁이 없는 삶을 살고 있거든요. 1인 자영업자라 그렇다고 야근을 안 할 수도 없고 말이죠.      


토요일 3시쯤 퇴근을 한 남편은 소파에서 낮잠을 잡니다. 제발 침대에 가서 자라고 해도 티브이 켜두고 소파에서 자는 꿀잠을 포기하지 못하겠다고 하니 제가 양보합니다. 친구와 놀던 아들도 딸도 하나둘 집에 들어옵니다. 자! 제군들 준비가 다 되었으면 가보자고! 차 좀 타고 가자는 자식들의 말을 무시하고 우리는 튼튼한 두 다리로 걸어갑니다. 걸으면 10분 안에 가는데 차를 타다니요. 말도 안 되는 소리죠.     

 

초등학생인 아이들과 한 회식이야 별것 없었습니다. 일단 1차로 동네 고깃집을 갔습니다. 고기 구워 먹으며, 아이들은 사이다에 우리는 맥주를 한 컵씩 담아 건배했습니다. 우리 가족을 위하여! 2차로는 또 5분 거리에 있는 카페에 갔습니다. 1인 1 메뉴를 시켰지만 음료의 반 이상을 남겼고, 제 음료는 다시 테이크아웃 잔에 담아서 나왔네요. 커피숍에서 남편은 노래방에 가자고 했고, 딸은 집 앞에 있는 코인노래방을 지목했습니다. 심각한 음치 박치인 제가 가장 가기 싫어하는 장소는 바로 노래방입니다. 그리고 몇 주 전에 미나리 축제에 가서 저의 부탁을 들어주지 않은 남편 때문에 이가 갈리는 장소이기도 하죠.      


그런데 말이죠! 봄밤이라서 그랬나 봅니다. 핑크르르 떨어지는 벚꽃잎에 반하여 코인노래방에 따라 들어가고야 말았습니다. 5곡에 3000원을 결제했습니다. 요즘은 다들 무인으로 운영하니 사장님은 당연히 없고 방마다 CCTV만 열심히 일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가족이 들어간 3번 방에는 마이크 두 개와 헤드셋

 2개가 있었습니다. 문제는 말이죠! 음 헤드셋에만 음악이 흘러나온다는 것이죠. 그래서 아들과 딸이 낭만고양이를 불렀는데 남편과 저는 아들과 딸의 생목 라이브만 들을 수 있었습니다. 추억의 가족오락관에서 하던 고요 속의 외침 그 상황이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딸은 이상하다며 헤드셋을 뽑으면 방에 음악이 흘러나올 거라고 했지만, 카운터에 가서 모든 방의 시스템이 이렇다는 걸 확인하고는 포기합니다. 아무튼 기존 노래방의 빵빵한 사운드가 없어서 흥은 좀 덜 났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재미가 있었습니다. 남매는 듀엣곡을 부르면서도 누가 앙숙 아니랄까 봐 싸우네요. 박자! 박자! 맞춰라. 그래봤자 점수는 겨우 90점을 넘었습니다. 요즘 핫한 비비의 밤양갱도 한곡 불러 보고 엄마 아빠에게 마이크를 양보합니다.      

집순이인 저는 여행을 싫어하지만 아는 노래가 없어 이승기의 여행을 떠나요를 불러봅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여름방학 전 우리 반에서 단골로 부르던 노래라 익숙했군요. 남편은 딸내미와 듀엣으로 낭만고양이를 또 부릅니다. 아들은 연신 휴대폰을 꺼내 이 장면을 담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딸과 저는 소찬휘의 티얼스를 부릅니다. 둘 다 고음 유전자를 타고 난 우리 두 여자는 신나게 노래를 부릅니다. 잊지는 마! 내 사랑을 너는 내 안에 있어!!!! 아이유의 고음을 능가하는 돌고래 소리를 신나게 내어봅니다. 그리고 떨리는 마음으로 점수를 확인합니다.

“우와, 미쳤다. 100점이라니”

“아들, 빨리 사진 찍어.”

“잠시, 잠시만 엄마. 카메라 열어야 해.”


아들이 폰을 만지작거리는 사이 화면은 다시 처음으로 돌아갔고, 태어나 처음으로 노래방 기기로부터 100점을 받아본 엄마는 이 상황이 너무나 화가 납니다. 아이 C. 진짜 폰을 사주면 뭐 해! 남편은 노래를 잘 불러서 100점 나온 게 아니고, 소리를 너무 크게 질러서 기계가 노래 잘하는 걸로 판단했을 거라며 나불대지만 못 들은 걸로 합니다.      


아쉬운 아이들은 추가 결제를 요구하지만, 저는 거절합니다. 가장 재밌을 때 떠나라. 손뼉 칠 때 떠나라. 이런 말 몰라. 어차피 추가로 5곡 더 불러봤자 여기서 행복감이 더 올라가지도 않을 테지요. 그리고 꼰대 같은 엄마는 얼큰하게 취한 부장님처럼 아이들에게 훈화 말씀 한마디 합니다.

“엄마, 아빠가 열심히 일해서 우리가 이런 시간도 가질 수 있는 거야. 학교도 잘 다니고 학원가서도 열심히 공부하도록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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