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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차원 그녀 May 06. 2024

엄마 머리 꼭대기에서 노는 아들

엄마와 아들의 치열한 눈치 싸움 

1달 전쯤 아들이 학교 앞 문방구에서 뽑기를 했다며 뽑기 캡슐을 집으로 들고 왔다. 캡슐 안에는 지우개로 만든 캐릭터들이 다양하게 들어있었다. 한 개 뽑을 때 500원이고 11개쯤 들고 왔으니 5500원이나 썼겠다. 돈이 아까운 엄마는 잔소리 폭격기를 출동시킨다. 

“ 지우개 이거 쓰다 못하겠구먼. 그냥 지우개를 사서 써.”

“ 이거 내가 다 뽑은 거 아니야. 반은 내가 뽑았고, 반은 옆에 애가 자기 필요 없다고 줄까? 해서 내가 받아 온 거야.”

“ 그래? 아들 생각보다 알뜰하네. 그래도 더 이상 뽑기 하지 마.”     


아들은 지우개 캐릭터를 11개쯤 만들었고, 플라스틱 캡슐을 분리수거 통에 버리려는 것이다. 앗! 뭔가 저거 어디 쓸 때가 있을 것 같은데 말이지. 급히 아들을 불러 세웠고, 나는 미래를 위해 캡슐 11개를 서랍에 처박아 두었다. 그리고 몇 주가 흘렀고 불현듯 쓸모가 떠올랐다. 현장 체험 학습 때 퀴즈 미션을 통과한 아이들에게 사용할 뽑기 통으로 말이다. 옆 반 아이들 수까지 계산하니 아무래도 몇 개 모자랄 듯싶었다. 최소 4개쯤 더 필요하군.     

아들이 만든 지우개 친구들 


저녁이 되었고 아들에게 정중히 부탁했다. 

“아들, 엄마가 저 뽑기 캡슐이 4개 더 필요한데 네가 구해다 줄 수 있어?”

“4개나? 그럼 돈이 필요한데?”

“혹시 애들이 뽑기하고 캡슐 버리고 가지 않아? 그거 네가 4개만 주워다 주면 안 될까?”

“그거 문방구 옆에 모으는 통이 있어서 애들이 거기 다 넣고 가지. 그리고 부끄럽게 어떻게 바닥에 흘린 걸 주워와.”

“그래, 그렇구나. 미안해. 엄마가 2000원 줄 테니까, 내일 뽑기 4개만 뽑아와.”

“응, 엄마. 내일 학교 마치고 뽑아올게.”      


퇴근하고 소파에 잠깐 널브러져 있었다. 아들이 현관문을 열고 들어온다. 

“엄마, 여기 캡슐 4개.”

“응, 근데 이번에는 지우개 캐릭터 뭐 나왔어?”

“응, 이번에는 지우개 캐릭터가 품절돼서 옆에 거 뽑았더니 열쇠고리 나왔어. 여기 2개 있고, 나머지는 방에 있어.”

“그래? 엄마는 이거 열쇠고리 필요도 없다. 너나 가져라.”

“응, 엄마. 고마워.”     


캡슐을 15개나 확보한 나는 뿌듯함에 기분이 하늘을 날아갈 것 같다. 양치하고 아들과 함께 침대에 누워서 책을 읽는다. 책을 읽다가 번뜻 캡슐이 생각이 나서 아들에게 물어본다. 

“아들, 열쇠고리 나머지 2개는 뭐 나왔어? 보여줘 봐.”

“어, 잠시만.”     


책상으로 간 아들은 주섬주섬 책상 위와 서랍을 뒤적거립니다. 그런데 오늘 뽑은 열쇠고리를 찾아내지 못합니다. 뭔가 싸합니다.

“아들, 이리 와봐. 너 밑장 빼기 했냐?”

“(흔들리는 두 눈동자) 아니 그게 왜 안 보이지........ 엄마, 피곤한데 책 그만 읽고 빨리 자요.”

“ 너 캡슐 2개는 뽑았고, 2개는 주워왔지. 귀신은 속여도 엄마는 못 속인다. 이 녀석!”

“아... 아니야. 엄마. 오늘 피곤해요. 빨리 자요.”     


아들은 학교를 마치고 뽑기를 하러 갔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 떡인가요? 뽑기 기계 밑에 빈 캡슐이 2개나 굴러다니고 있었답니다. 아들은 신발 끈을 묶는 척 쪼그리고 앉아서 캡슐 2개를 양 주머니에 넣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제가 준 1000원으로 뽑기 캡슐을 2개 더 뽑았다고 합니다. 그럼 남은 1000원으로 아들은 무엇을 했을까요? 제 피 같은 돈 1000원은 아들의 지갑으로 쏙 들어갔습니다.      


학교에 가서 선생님들께 아들의 맹랑한 일탈썰을 풀었더니 수익률이 얼마냐며 칭찬합니다. 커서 주식투자 잘하겠다면서요. 2000원을 받아서 1000원이나 남겼으니 우리 아들은 투자의 귀재인가요? 그러면서 저보고 눈치 없이 그걸 꼬치꼬치 캤냐며 뭐라고 하십니다. 필요 없이 아들에게 촉을 세우지 않겠습니다. 반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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