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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차원 그녀 Jun 20. 2024

삼시세끼보다 더한 자식새끼

아이들이 알려준 엄마의 존재 이유

6시쯤 집에 도착했습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아들이 저를 몹시 반깁니다. 택배 상자를 들고 들어섰더니 상자까지 받아줍니다.

“우쭈쭈. 내 새끼. 학교 잘 다녀.........”

“엄마, 왜 이렇게 늦었어. 빨리 폰 좀”

“왜?”

“나 독서록 다 썼어. 빨리 물총 주문해야 해.”

아들이 약속을 이행했으니 물총을 주문해 주기로 합니다. 세상 좋아졌습니다. 희한한 물총이 다 있네요. 가격은 13000원입니다. 택배비까지 하니 15000원이 넘습니다.

“돈 가져와.”

“엄마, 미안한데 다 털어도 10000원밖에 안 돼. 남은 2000원은 다음 달에 줄게. 그리고 택배비는 엄마가 계산하는 걸로.”

지갑에서 꼬깃꼬깃한 천 원짜리 열 장을 꺼내줍니다. 짠하네요. 너도 먹고살기 힘들구나. 그래 나머지는 엄마가 안 받을게.     


30분 후에 딸아이가 들어옵니다. 오늘은 무슨 바람인지 일찍 들어왔습니다. 다른 날은 본인 방으로 쌩 들어가는데 오늘은 엄마부터 찾습니다.

“엄마, 이거 봐. 안경코(실리콘) 1개 떨어졌어. 빨리 안경원 가야 할 것 같아.”

벗어두었던 원피스를 주섬주섬 다시 챙겨 입습니다. 걸어가는 10분 동안 딸아이와 학원 이야기를 합니다. 다음 주 화요일에 영어 학원 상담 겸 레벨테스트를 가게 되었습니다. 처음 가는 영어 학원에 엄마와 딸도 설레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면서 피아노 학원은 어쩔 거냐고 물었더니 계속 다니겠다고 합니다. 주 3일 수업으로 줄이는 조건으로요. 피아노, 수학, 영어. 교육비 증가 속도를 제 월급이 따라가지 못하는 안타까운 상황입니다. 그래도 본인이 영어 학원을 제 발로 가겠다고 하니 보내줘야지요.      


안경원에 도착했습니다. 안경코만 수리하기엔 딸아이의 안경이 너무 낡은 나머지 일단 시력측정을 다시 해보기로 했습니다. 하....... 모두의 예상대로 눈이 더 나빠졌습니다. 불 끄고 핸드폰하고 책 읽고 했는데 당연한 결과입니다. 짜증 나서 한번 째려봐 줍니다. 남자 안경사분께서 안경테를 추천해 줍니다. 그 와중에 또 딸아이의 마음을 사로잡을 투명 고급 안경테를 추천해 주시는 바람에 또 소비가 늘었습니다. 12만원 결제를 하는데 이거 속이 쓰립니다. 집에 오는 길 고깃집에서 풍겨오는 삼겹살 냄새가 너무나 고소해서 화가 납니다.   

   

어제는 수요일이었습니다. 직원 체육 시간에 배구를 하고 우리는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땀을 식혔습니다. 옆에 있는 연구부장님의 전화기가 울렸습니다. 통화버튼을 누르고 연구부장님은 자리를 피했습니다. 옆에 앉은 미혼인 1학년 여자 선생님이 딸은 전화로 무슨 말을 하느냐고 묻길래 저는 자신 있게 대답을 해주었습니다. 분명 준비물 사 오라고 하거나 아니면 간식 주문 전화일 거라고요. 전화를 마친 연구부장님이 돌아와서 통화내용을 물었습니다. 초등학교 2학년인 연구부장님의 순수한 딸아이는 오늘 방과 후 시간에 요리 수업에서 무엇을 만들었는지, 집에 와서 본인은 다 씻고 아빠를 기다리고 있으니 빨리 오라고 했답니다. 쿨럭. 제가 너무 우리 집 생각만 했네요. 아~ 우리집 아이들도 이렇게 순수하던 때가 있었기는 했는데요. 기억이 안 나요. 차마 연구부장님께 몇 년 후 통화내용이 달라질 거라는 이야기는 해주지 못했네요. 딸바보 지켜.    

  

그런데 말이죠. 오늘 쌀이 똑 떨어져서 남편에게 퇴근길에 쌀을 사오라고 전화를 했습니다. 남편이 쌀포대를 들고 현관문을 들어서는데 너무 짠합니다. 오늘따라 쌀이 더 무거워 보이네요. 부모의 존재 이유. 삼시세끼 아니고 자식새끼 때문입니다. 자식새끼 덕분에 남편과 저는 열심히 일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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