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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유 Mar 02. 2024

[헤어질 결심]

소설보다 영화가 더 모호할 수 있을까?

  박찬욱 감독의 제작사 이름은 모호필름이다. 이름을 듣자 문득 그런 의문이 들었다. 소설보다 영화가 더 모호할 수 있을까?

  소설은 문자로 써진다. 글자의 검고 딱딱한 외형과는 다르게, 서술로 만들어지는 세계가 있다. 바로 독자가 서술을 읽으며 상상한 세계다. 그렇게 탄생한 소설 속 세계는 객관적 문장 외에도 독자가 상상력으로 만들어낸 주관성을 가지게 된다. '밀집모자를 쓴 소년이 호밀밭에 서 있다.'라는 문장를 들었을 때 떠오르는 이미지는 독자마다 다를 것이다. 누군가는 유순한 얼굴에 주근깨가 조금 있는 10대 중반의 소년을 상상하는 반면, 누군가는 검은 머리카락에 호밀밭에 약간 불만을 품은 듯한, 자신이 이깟일을 하기에는 너무 대단한 사람이라 믿는 10대 후반의 소년을 상상하기 때문이다. 호밀밭도 독자만큼이나 다양한 이미지를 가지게 될 것이다. 그러나 "밀집모자를 쓴 소년이 호밀밭에 서 있다"는 점은 동일하다. 개인성과 공유성은 이렇게 문장 안에 존재한다.
  그러니 이러한 개인성, '문장의 여백'은 문장에 서술되지 않은 부분을 독자가 상상으로 창조하며 생겨나는 부분이다. 문장의 여백은, 문장이 쌓여감에 따라 사라지거나 유지된다. 이때 독자가 소설을 읽는 도중에 오랫동안 유지된 이미지는 반복을 통해 독자에게 문장같이 객관적인 세계로 착각된다. 즉, 소년을 '갈색 머리카락'으로 상상한 독자는 소설의 후반부에 소년이 '검은색 머리카락'임이 서술되어도 이를 인지하지 못하거나, 거부하여 소설이 끝날 때까지 '갈색 머리카락' 소년을 유지하게 된다. 이처럼 독자들의 '검은색 머리카락'에 대한 저항은 주요인물일수록 강해지는데, 이미 생성되어온 세계가 '갈색 머리카락' 소년을 위주로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갈색에서 검은색이라는 간단한 변화조차, 독자의 세계에서는 극심히 공포적인 것이 되어 '인물'을 붕괴할 수 있다. 이러한 서술과 상상 사이의 갈등은 서술의 모호함으로 해소된다. 그렇기에 능숙한 소설가는 독자의 세계가 붕괴되지 않도록 이 모호함을 잘 유지한다.




  그러나 영화는 이러한 모호함을 형성할 이유가 없다. 관객은 영상으로 보여지는 영화의 세계를 들여다보는 관찰자이지, 독자처럼 세계를 만들어내는 주체가 아니다. 소설에는 소설가가 만들어낸 세계와, 독자가 만들어낸 세계가 불일치하며 발생하는 갈등이 있다. 그러나 영화에는 관찰자의 세계가 없다. 오직 영화의 세계뿐이다. 다른 세계가 존재하지 않기에 갈등이 발생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모호함은 더 이상 갈등해소의 기능을 수행하지 않는다. 영화 속 모호함은 어떤 갈등도 해소하지 못하며 그저 모호함으로 남을 뿐이다.

헤어질 결심, 스틸컷

  그러나 박찬욱 감독은 <헤어질 결심>을 통해, 소설의 전유물이었던 모호함의 갈등 해소 기능을 영화에서도 유지시켰다. 박찬욱 감독은 영화라는 하나의 세계를 둘로 나누어 갈등상태를 빚음으로써, 모호함의 갈등 해소 기능을 구현한다. <헤어질 결심>에서 파란색으로도 녹색으로도 보이는 원피스는 영상을 통해 녹색으로 인지되었다가, 대사를 통해 파란색*으로 인지되어지며 관객에게 혼란을 불러온다. 영상(시각적 세계)과 대사(청각적 세계)의 불일치를 통해 고조된 갈등은 소설과 마찬가지로 모호함을 형성해 해소된다. 원피스가 '파란색으로도 보이고 녹색으로도 보이는 중립적인 존재'임을 관객에게 알리며, 원피스라는 대상에 '모호함'을 부여함으로써 갈등을 해소한 것이다.

  그러나 이처럼 원피스에 '모호함'을 부여하는 것이 가능한 이유는, 관객이 '영상 이전의 원피스'가 어떤 세계에도 소속되지 않는 중립성을 가진 객관적인 실체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관객은 영상 속 원피스는 녹색으로 나타나지만, 영상이 대상을 왜곡할 수 있음을 인지한다. 그리고 곧 관객은 고조되는 갈등에 객관적인 실체의 필요성을 느끼고, 영상 이전의 대상이라는 새로운 차원을 발견하게 된다. 스크린 너머에 있는, 영상이라는 대상의 기록을 넘어, 그 대상을 찾아나선다. 그렇게 관객은 카메라라는 하나의 차원을 넘어서서 객관적인 실체인 원피스를 바라본다.

  이렇게 박찬욱 감독은 영화 '헤어질 결심'에서 소설의 전유물인 모호함의 기능을 영화 속에서 구현한다.





*정확히는 커플의 말과 핸드폰 사진 속에서는 파란색 원피스로 나타납니다. 나머지는 녹색 원피스로 나타납니다.

실제로 영화에서는 초록색, 파란색, 청록색 원피스 3가지를 준비해 갈아입으면서 촬영했습니다.

사실 장면마다의 원피스 색깔에 관해서는 논란이 많을 수 있는데, 적어도 저는 그렇게 느꼈습니다. 


어쨌든 하고 싶었던 말은 소설이 가지는 형태와 상상의 세계간 차이를 모호함이 메꾸고 있듯이, 영화에서도 시각적 세계와 청각적 세계 사이에 일부러 차이를 만들어 대상에 모호함을 부여하는 것 또한 재밌는 기법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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