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거 새 아니야?" 7월 말의 정오였다. 운전 중인 엄마가 갑자기 말을 걸었다. "밟혀 죽은 새 같은데?"
"의외로 매미일 수도 있어"
나는 별생각 없이 대답했다.살면서 새의 사체는 딱 한번 봤다. 초등학교 정문 앞에서, 하굣길에 비비탄 총에 맞아 피 흘리던 작은 참새가 언뜻 스쳤다.
"아니 새인 거 같은데"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차가 오른쪽으로 꺾였다.주차장에 차를 중립으로 세우고 엄마랑 나는 작은 홈플러스를 가기 위해 차에서 내렸다.차에서 내리자 아스팔트 위를 뒹구는 비둘기의 깃털이 보였다.
"엄마 말이 맞아. 근데 새이긴 한데, 그냥 깃털이야"
깃털이라 다행이었다. 동물 사체를 보고 싶지 않았으니까. 그러나 깃털에는 신경을 거스르는 점이 있었는데, 그게 우리가 일반적으로 아는 날개 쪽의 깃털 한 개가 아니라, 비둘기 꼬리나 머리 쪽에 있을 법하게, 짧은 솜털 같은 깃털이 원 모양으로 배치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집 근처에 있는, 다들 '작은 홈플러스'라고 부르는 가게로 들어가려면 작은 횡단보도를 건너야 했다. 길이가 5m도 안 되는 것 같은 횡단보도에는 신호등이 없었다. 횡단보도를 건너려면 눈치껏 차도를 살펴야 했다.
그것은 눈치가 없는 건지, 차도에 누워있었다. 검은 아스팔트에는 그것에서 나온 것이 분명한 깃털들이 뒹굴고 있었다. 여름의 작열하는 태양빛에 뜨겁게 달궈진 아스팔트에서 이상한 냄새가났다.나는 누운 참새 주위로 모여들던 개미떼를 기억해 냈다. 매끈한 아스팔트 위에 이질적인 그것은 생각보다 피가 흐르거나 하지는 않았다. 이리저리 뒤엉킨 깃털사이로 찐득거리는 붉은 액체가 보였다. 피는 내 기억보다 붉지 않고검었다. 바퀴에 으스러진몸처럼 보이는 부분과는 다르게 머리 부분은 살아있는 것처럼 완전했다. 그렇다고 몸 부분이 납작했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간간히 부는 바람에 깃털이 일어서, 팔랑거렸다. 그것이 누워있지만 않았다면, 나는 별생각 없이 지나갔을지도 모른다.
"쳐다보지 마, 그런 걸 왜 굳이 봐" 엄마의 충고에도 나는 횡단보도를 지나는 내내 그것을 쳐다보았다.도저히 눈을 뗄 수가 없었다. 횡단보도를 거의 다 지나갈 때쯤에는 그것과 눈이 마주쳤다. 순간 죄를 짓는 기분이 들어서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그대로 걸어 가게까지 들어왔지만 정신은 여전히 멍했다. 어떤 한 단어로 말할 수 없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감정이 먹먹히 차오르고 있었다. 봐야만 할 것 같았다. 이대로 모른 척하고 싶지 않았다.나는, 적어도 나라도 기억해야 한다.
엄마는 영화 볼 때 먹을 과자를 고르자고 했다. "미안해 엄마 좀 더 보다가 올게" "뭐? 왜? 설마 그걸 굳이 보러 가겠다고?" 엄마의 말을 뒤로하고 다시 가게 밖으로 나왔다. 시원한 안과 다르게 밖은 더웠다. 검은 차 한 대가 지나가면서 매미 울음소리가 더 커졌다.
설마 머리도 뭉개졌을까. 살짝 겁이 난 채로 다가갔다. 다행히 이번 차는 비둘기를 밟지 않고 지나갔다. 나는 그것을 바라보았다. 눈을 돌리고 싶기도 했지만 계속 보고 있었다. 그냥 계속 눈을 마주했다. 비둘기의 눈과 마주쳤을 때, 회색빛의 동그란 안구와 그 안구를 감싸는 붉은 원을 보았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나는 사진을 찍었다. 다시 가게에 들어올 때처럼 횡단보도를 건너면서 동영상을 찍었다. 그것과 눈을 마주했던 순간을 기록하고자 했다.
"가자" 과자를 구매한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왠지 힘이 들어간 엄마의 팔에 이끌린 채로, 다시 그것을 지나 주차장으로 갔다.
엄마는 그날 한 번 더 그 길을 지났는데, 아직까지 안 치워져 있더라고 말했다.치워지는 건가. 다음날 내가 그 길을 지날 때, 전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아스팔트는 매끄러웠다.
그리고 며칠이 지난 오늘, 엄마는 내가 글을 쓰기 전까지 그 일을 잊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날 밤에 그것을 다시 보았을 때, 하도 많은 차가 밟고 지나가서 완전히 으스러져 있었다는 말과 함께.
이 글을 쓴 지 1년 하고도 5개월이 더 지난 지금도 저는 그 길을 지날 때면 아스팔트 위에 있던 새를 기억합니다. 참 빠르게 도는 미친 세상에서, 제가 새 한 마리의 죽음을 여전히 기억해서 다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