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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미정 Mar 25. 2024

구형왕릉

눈빛으로도 통하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


  산청군 금서면에는 돌을 쌓아 만든 이국적인 무덤이 있다. 그 무덤은 가야의 마지막 왕인 구형왕의 무덤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삼국에 가려 먼 후대까지 전해 내려오는 자료가 많지 않아 구형왕릉이라는 설조차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해 앞에 전 자를 붙여 전 구형왕릉으로 불렸고, 최근에는 산청 전 구형왕릉으로 명칭이 바뀌었다고 한다.


 돌을 네모로 깎아 쌓은 피라미드형 적석총의 모습도 이색적이었지만 역사책에 몇 페이지를 장식했던 가락국 가야라는 이름이 내 마음에 남았다. 한때는 화려한 왕국으로 찬란한 미래를 꿈꾸었을 그들의 시간이 잠들어 있는 것이다. 사라진 왕국에 대한 연민인지 이후 자주 그곳을 찾았다. 잃어버린 역사의 흔적에 호기심이 발동한 이유도 있고 곱게 자란 나무숲 사이로 흐르는 계곡물에 발을 담그는 것도 좋았다. 


 구형왕릉의 멋은 소박함에 있다. 빛이 드는 좋은 자리가 아니라 습하고 외진 자리를 욕심 없이 지키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밝고 화려한 사람보다 뭔가 비밀을 감춘 듯 묵묵히 자신의 일을 수행하는 사람에게 더 눈길이 간다. 나의 이야기를 듣기만 하다가 정말 필요한 순간에 던지는 한 마디에 그 사람이 새롭게 보이는 일들이 많아졌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을 드러내고 남들보다 더 나은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은 욕심으로 가득한데 그중에는 스스로 낮추고 기회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      

 어느 과일 가게 아저씨는 바보처럼 과일을 팔았다. 과일을 팔고도 계산이 느려 기다리다 지친 손님이 자신이 거스름을 계산해 받았다. 과일 가게 아저씨는 연신 미안하다며 고개를 숙이고 덤으로 과일 하나를 덥석 집어 보자기에 넣어줬다. 그렇게 장사를 해도 해가 서산으로 기울 때면 매대 위에 올려놓은 과일들이 모두 비워진 상태였다. 소문에 바보처럼 보였던 아저씨가 건물을 올렸다는 설도 있고 은행 VIP 명단에도 이름이 올려져 있다는 그런 유사한 미담들이 연이어 들릴 때면 세상에는 깊은 물 속 같은 사람들이 존재하고 처세술에 능한 사람이 있지 않을까 궁금해진다.     

 소크라테스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석수장이였고, 유년을 가난 속에서 살았다고 한다. 몇몇 학자들은 소크라테스가 가난해서 못 배웠다고 추측한다. 그러나 그 가난이 소크라테스에게는 하나의 기회였다. 자신이 부족하다고 여기고 사람들에게서 배우려고 스스로 낮추었다. 그 자세가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철학자의 탄생으로 이루어졌을 것이다.     

 구형왕릉은 잃어버린 왕국의 미래를 말해주듯 숲 안쪽에 자리하고 있다. 크게 내세울 것이 없으니 잃은 자의 슬픔처럼 그 자리에 붙박여 있는 것이다. 그러나 외형이 말해주듯 적석총의 모습이 예사롭지 않다. 그 속에 비밀을 감추고 있는 것 같은 착각에 들게 한다. 그래서 한 번 가본 사람은 또다시 들르게 될 만큼 매력적인 곳이다.      

 때로는 한마디 말 보다 눈빛으로 전하는 의미가 더 강할 때가 있다. 사람의 소통은 강한 유대감에서 나오는 것이고 그 유대감은 말로 포장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구형왕의 무덤을 떠 올리며 오늘은 말하지 않아도 마음이 통하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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