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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디 Dec 05. 2023

기다리는 마음

저는 지금 기다리고 있습니다. 소식 없다가 뜬금없이 무슨 소린가 하실 테지요. 그러니까 그게, 애 낳을 때 있죠, 그때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는 아이를 한 달 일찍 낳았어요, 양수가 급히 터져서. 유도분만을 기다리는데, 안경도 쓰지 못해 눈에 뵈는 건 없고 무엇보다 외롭고 추웠어요. 이럴 땐 종교가 있는 사람 아니어도 기도하게 되잖아요. 아기 폐는 산달 한 달 전쯤 완성된다고 했어요. 조산해야 한다고 의사 선생님께 얘기 들었을 때 창밖 저 아래서 횡단보도를 건너는 중고등학생들이 얼마나 놀랍고 대단해 보였던지요. 아기 숨 쉬어요, 그 말을 들을 수 있기만 간절히 바랐지요. 지금 심정이 딱, 그런 거 있죠.     

 

또 애를 낳냐고요? 지금 제 나이가, 아니, 그건 아니고요. 이제 곧 세상에 제가 지은 책이 나와요. 그걸 기다리고 있답니다. 흔한 비유네, 하실 거예요. 저도 이게 남 일이기만 했을 때, 그것이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란 건 생각하지도 못하고, 웬 호들갑이야, 했었지요. 아, 생각해 보니, 아이를 낳을 때도 엄마가 옆에 있었네요. 평소에 늘 다정다감하게 잘 챙겨주곤 하던 아이 아빠는 회사에서 급한 연락을 받아서 갔고 대신 엄마가 들어와 옆에서 손을 잡아줬죠. 출산 날이 한 달이나 남아 있었기 때문에, 소프롤로지 분만인가를 배워볼까, 하고 있었는데 말입니다. 식은땀이 줄줄 흐르고 몸이 찢어지는데 도무지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더군요. 그때 어렴풋이 스피커를 통해 말소리가 들렸어요. 천천히 50을 세며 심호흡하면 고통이 잦아든다고요. 파도가 치듯 왔다 갔다 할 거라고요. 덩달아 엄마는 내가 아닌 뱃속 아기에게 그러는 거예요. 자, 이제 천천히 나와 보자, 힘내라, 옳지 착하지. 저는 이렇게 기억하고 있어요. 내가 애를 낳은 게 아니라 아이가 애써서 나온 거라고요.   

   

제가 써 올린 <엄마가 있어> 브런치 북과 <도서관 아줌마 읽다> 매거진 글들이 정리되어 한 권 책으로 나와요. 이렇게 말하고 있지만 아직도 제 일이 맞는가, 그저 신기하기만 합니다. 그래요, 제가 쓴 글들이 제 손을 떠나 지금 책으로 태어나고 있어요. 저는 바라며 시작했을 뿐이었는데요, 그 바람을 이루어 주는 분을 만났어요. ISBN도 받았고요. 출판된 책은 국립중앙도서관에 납본되니까 도서관 서가에 배가돼요. 그게 될까, 싶었는데요, 그게 되었어요. 꿈이 이루어졌어요. 그런데 뭐가 그리 외롭고 춥고 그러냐고요? 떨려요. 그게,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얘기를 한 거고요. 도서관 서가를 꿈꾼 건, 제가 좀 수줍은 성격이잖아요. 서가 모퉁이에 조용히 있다가 다정히 내미는 손길을 잡는 상상을 했달까요. 그런데 제 얘기가 출판된다니까요, 그게, 광화문 광장에 홀딱 벗고 서 있는 기분인 거예요. 애 낳을 때도 그렇잖아요. 한 마리 동물이 된 기분. 옷을 안 입고 있잖아요, 동물은. 이런 제게 출판사 편집회의는 그리스의 튜닉, 로마의 토가 같은 옷을 입혀 주었어요. 애를 병원에서 혼자 낳지 않았듯 말입니다.      


저는 일기를 로이텀에서 나오는 5년 메모리 북에 짧게 짧게 씁니다. 노트 한 권을 다 쓰면 지나간 5년 치 일들을 대충 돌아볼 수 있게 되죠. 책상을 정리하다가 그 일기장을 펼쳐 보았어요. 일기를 쓰던 그 하루하루는 정말 별다를 거 없는 평범한 날이었는데요, 지금 보니 어느 날 아주 작은 우연들이 제게 배움이 되고, 곧 나올 책으로 이어지는 별자리가 되어 있는 거예요. 지금은요, 제 사랑, 도서관에서 일하기가 수월치가 않아요. 재계약이 안 돼서 안내 데스크 일도 쉬어야 하고요. 배가 봉사도 책수선 봉사도 도서관에 사정이 생겨 계속할 수가 없게 되었어요. 회사가 불러 자리를 뜬 남편처럼 도서관과 전 책이 나올 때 함께 할 수가 없네요. 하지만 책이 나오면 제 손으로 다시 만들어 엄마에게 드리려고 예술제본을 열심히 배우고 있어요. 왜 그렇게 애를 쓰냐고요? 제가 애를 쓰는 게 아니고요. 글이란 것이 그런 것 같아요. 애를 가지면 낳아야 하는 거잖아요. 잘 낳으려면 애를 쓸 수밖에 없고요. 또 제 힘으로만 낳는 것도 아니고. 어떤가요, 한 번 시작된 글의 운명, 태어나는 아기랑 꼭 같지요?      


저희 아빠 돌아가실 때 마지막 하신 말씀 두 마디가 있어요. ‘미안해요’, 그리고 ‘고마워요’였어요. 아줌마가 되다 보니 돌아보면 미안한 일 투성이지만요, 책을 기다리고 있는 지금, 제 목구멍을 밀고 나오는 말들은 온통 ‘고마워요’입니다. 저는 둘째 아이를 낳아 본 경험이 없어요. 그래서 늘 처음은 마지막처럼 절실해져요. 브런치에 어떤 글을 올려야 하나, 다른 작가님들은 새벽으로 늦은 밤으로 매일 같이 새로운 글들을 올리시던데, 고민이었어요. 그래 그냥, 지나간 우연들에 고마운 마음을 전해야겠다, 그렇게 해야겠다, 생각했습니다. 그러다가 보면 또 언젠가는 두 번째 책을 낼 수도 있지 않을까요?


https://youtu.be/8qOyvbcsuYI?si=LYf9E4_-ZfSMg8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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