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부장, 시계는 뺍시다. 쪽팔리잖아."
노무현 전 대통령을 수사했던 이인규 중앙수사부장의 회고록에 따르면, 이 부장이 수사 과정에서 노 전 대통령에게 '시계' 수수 의혹에 대해 질문하는 과정 중, 노 전 대통령이 했다는 발언이었다.
난 진실은 모른다만, 이 전 부장이 고인까지 되신 전직 대통령을 굳이 거짓말까지 첨가해 가며 모욕을 줄 동기는 없다고 본다.
즉, 나는 저 발언을 신빙성있게 받아 들이고 있다.
시간이 많이 흘렀고, 언제쩍 일인가 검색해 보니 벌써 15 년이나 흘렀다.
모두 아는 것처럼 노 전 대통령은 수사 후 얼마 안 가 숨을 거두었고, 문재인 전 대통령도 퇴임하여 양산에서 평온하고 여유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리고, 나는 문 전 대통령은 늘 그렇 듯, 책방에서 앞치마를 두르며 카운터를 보고, SNS에 고양이와 함께하는 사진을 올리고, 이따금 중요한 행사 때 전직 대통령으로 참석하면서 기사로 접하는, 그렇게 남은 여생을 전직 대통령의 한가로운 모습으로 보낼 것을 예상했었다.
지독하리만치 뜨겁디 뜨거웠던 갑진년의 여름.
작년은 꽤 더워서 고생했던 기억을 떠 올리면, 설마 올 해도 작년만큼 더울까 싶었는데, 올해가 오히려 더 지독한 것 같다.
보통, 광복절이나 말복 쯤 되면 폭염은 한 풀 꺾이고, 저녁은 공기가 선선해 지면서 상쾌하다.
올 해는 8월 말일이나 돼서야 겨우 한 풀 꺾였다.
일상복을 반팔에서 긴팔을 옷장에 꺼내서 갈아 입기 시작한 지 불과 며칠 되지 않는다.
이 독한 여름을 에어컨이 없이 났는데, 내년 봄에는 에어컨 하나 장만하려 한다.
이 무렵, 네이버에 올라 오는 문 전 대통령과 딸에 대한 수사 기사들.
"결국 당신도 어쩔 수 없구나."
대한민국 국민은 속은 것을까, 속을 걸 알면서도 문재인을 대통령으로 선출한 것일까.
국가의 주인인 국민 한 사람으로써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나는 문재인 전 대통령에게 한 표를 주었다.
당시에는 정치에 대한 시각이 조금 순진했고, 박근혜 후보를 군사독재의 후예라서가 아니라, 겉으로 드러 난 어떤 정치적 과업이 전무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민주당을 지지해서도, 문재인 후보를 내켜서 지지하는 것은 결연코 아니었다.
많은 국민들이 그랬던 것처럼, "그래도 문재인 후보가 그나마 나아 보이니까."였다.
"적폐를 청산한다.", 액면 그대로 보면 누가 여기에 반대할 사람 있을까.
잘못된 관행, 오랫동안 누적되었던 부패를 청산하자는 것은 참 좋은 공약이다.
많은 시간이 흐른 지금, 정말 적폐 덩어리들이 청산되었는가.
그 것은 파란 적폐가 빨간 적폐를 몰아 냈을 뿐이다.
도적을 다른 도적으로 몰아 낸 것이다.
나는 그 후로부터 어떤 기성 정당의 후보에 투표하지 않았다.
군소후보도 마찬가지로 표를 주지 않았다.
투표장에 가되, 빈 종이를 접어서 제출하고 곧장 나올 뿐이다.
진정한 적폐를 청산하고자 하는 국민 한 사람으로써의 주권 행사이자, 기성 정치에 대한 저항이다.
도적으로 도적을 잡지 못 한다.
오물은 깨끗한 걸레로 닦아 내는 것이지, 똑같은 구정물, 똑같이 더러운 걸레로는 닦아 내지 못 한다.
대통령으로써 행사하는 모든 권한과 누리는 제반 의전과 경호, 예산들은 국민의 세금으로써 집행이 되는 '公돈'이지, '꽁돈', 즉 '空돈'이 아니다.
대통령은 직위를 남용하여 어떠한 사적인 부당한 이득을 획책해서도 안 되며, 헌법이 보장하는 다른 권력기관이나 국민의 주권을 침해하여서도 안 된다.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몰라서 안 지켜 지는 것이 아니다.
고위 공직자로써 사심을 완전히 버리지 못 한 자를 앉힌 국민들도 책임이 있다.
자식의 잘못은 곧 부모의 잘못인 것처럼.
전직 대통령에 대한 비판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그런 대통령을 직선제로 뽑은 국민들도 한 번 쯤은 이 번 기회에 국가의 주인인 국민으로써 반성하고, 스스로에게 책임을 물을 좋은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머지 않아 문 전 대통령도 검찰청사 앞에 서게 될 것이다.
악순환과 오명의 역사가 반복되고 있다.
정치보복이란 핑계는 그만 각설하고, 혐의가 있으니까 그냥 불려 나간 것이다.
정치보복? 아무리 여당에서 잡아 먹으려고 해도 비리를 저지르지 않고 정직하게 직무를 수행하면 아무 일이 없다.
단지 그 뿐이다.
왜 박근혜, 이명박 전 대통령 수사할 때만 정의로운 검찰이고, 자신들이 불려 나갈 때는 정권의 사냥견이고, 보복수사란 말인가.
"선생님, 저희가 수사한 바에 의하면 타이 이스타젯으로부터..."
"이 봐, 한 부장! 타이 이스타젯 얘기는 뺍시다, 쪽팔리잖아!"
혹시 아는가, 수년 후, 한 부장의 회고록이 출간돼서 저런 내용이 실릴 지.
똑같이 대통령이 된 것처럼, 그리고 퇴임 후 수사를 받는 것처럼, 문 전 대통령은 노 전 대통령의 발자취를 올곧이 잘 따라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