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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재 Mar 31. 2024

‘원데이’:사랑했던 사람들이 곁에 있는 것처럼 행동하기

고독한 순례길에서 계속해서 발을 내딛어 길을 건너는 방법

 대학 시절, 영화를 좋아하는 친구가 있었다. 가끔 시간이 나면 친구 기숙사 방에 놀러 가서 둘이 눕기엔 좀 좁은 침대에 구겨 엎드려서 노트북 화면으로 영화를 보곤 했다. 코미디 영화를 볼 때도 있고, 공포 영화를 볼 때도 있고, 때로는 SF영화를 볼 때도 있었다. 장르를 정하지 않고 그날 끌리는 영화를 보곤 했는데, 하루는 영화를 보다 옆에 친구를 의식하지 못할 정도로 펑펑 운 적이 있었다. 그날을 그렇게 보내고도 일주일은 그 영화에 대한 여운이 마음에 머물러 있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나에게도 인생 영화, 인생 맛집, 인생 취미 등을 정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당당히 그 영화를 나의 인생 영화로 칭하기로 마음먹었었다. 그 영화의 제목은 ‘원데이’이다.     

 인생 영화에 있어서 사람마다 정하는 기준이나 범위는 다양할 것이다. 그저 가장 재미있었던 영화를 인생 영화라 부를 수도 있고, 가치관에 영향을 주는 영화를 인생 영화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 외에도 정말 다양한 기준이 존재하겠지만 적어도 나에게 있어서는 삶의 가치관에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영화를 인생 영화라 부르고 있다.     

 이쯤에서 ‘원데이’가 왜 내게 인생 영화가 되었는지 설명해야 하겠지만 그 전에 대략 한 달 하고 이주 전쯤 부산으로 이사를 오게 된 나의 근황을 먼저 들려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기존에 전세로 살고 있던 집에서의 계약만료일보다 대략 한 달 정도 일찍 ‘이직’이라는 이유로 부산에서 거주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한 달 정도 거주할 집을 알아보다 결국에는 돈을 조금 아껴보고자 고시원을 택하게 되었다. 고시원이라는 경험해보지 않은 장소를 체험해본다는 생각에 들었던 설렘은 고시원 생활 첫날부터 무너지게 되었다. 3평 남짓한 방이기에 공간 분리란 기대할 수 없어 그저 책상 한편을 빨랫감을 두는 장소, 한편을 옷을 두는 장소로 구분 짓는 정도가 최선이었다. 평소에 잠을 거칠게 자지 않는 편인데도 좁은 침대에서 자다가 자꾸 바닥으로 넘어질 뻔한 적이 많았다. 프라이버시라고는 기대할 수 없을 정도로 방음이 되지 않아 방에서는 자연스레 묵언수행을 실천하게 되었다. 이런 모든 불편함이 저렴하다고 여긴 고시원의 가격이 합리적이거나 조금은 거품이라는 생각으로 전환하게 되는 계기가 되어주었다.     

 2-3일 쯤 지나 계약일이 되어 부동산을 방문했을 때, 지금 계약하는 집이 공실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임대인에게 빌다시피 제발 먼저 입주할 수 있게 해달라는 체면과 예의를 버린 무리한 부탁을 청했다. 일반적이지 않은 요구에 제법 당황한 표정의 중개사와 임대인은 나의 절박한 표정에 가련함을 느꼈는지 결국에는 다양한 각서 비슷한 서류를 작성하고 한 달 월세를 내는 조건으로 선입주를 허락해주었다. 기쁜 마음으로 고시원에서의 짐을 챙겨 새로운 보금자리로 이사하고 나서, 생각지 못했던 위기가 또 발생하고 말았다. 전 집에서의 가구 같은 여러 옵션은 새로운 집에 들어가기 힘들 것 같다는 생각에 전부 처분하고 그저 옷 몇 가지와 이불과 베개를 챙겨 온 게 전부였다. 커튼이나 블라인드도 없어 프라이버시란 없는 방에서 창문을 피해 바닥에 이불을 깔고 바닥의 딱딱함을 오랜만에 느껴보는 잠을 청하며 인생이 단단히 잘 못 흘러가고 있음을 느꼈다.     

 심지가 그리 단단한 편이 아닌지라 쉬이 흘러가는 게 없고 누구 하나 기댈 사람이 없어 혼자서 모든 걸 감당해야 할 상황이 닥치면 쉽게 우울증 비슷한 감정이 일어나곤 했는데 이번에는 감정의 동요가 크지 않았다. 결국에는 잘 지낼 수 있을 것이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을 마음 깊이 새기며 현재까지 조금씩 방을 꾸며 나가며 지내고 있다. 아직 부족한 게 많은 집이지만 그 한 달이라는 기간동안 집에 침대가 들어오고 소파가 들어오는 등 조금씩 집에 부족한 것들을 채워나가는 중이다. 전과 달리 위기에 묵묵하게 내 할 일을 찾아 나가게 되는 근원에는 다시금 영화 ‘원데이’가 자리잡고 있다는 걸 이야기하게 된다.     

 ‘원데이’를 보며 눈에 수도꼭지를 틀어놓은 것처럼 넋 놓고 울게 되는 장면이 정말 많았는데, 그중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과 대사가 있었다. 교통사고로 아내를 잃고 방황하는 아들과 10년 전 어머니와 사별한 아버지가 같이 TV를 보는 장면이었다. 어머니라는 중재자가 있어 겨우 관계를 유지해나갈 정도로 삐걱거렸던 부자지간의 어색함을 깨고 아버지는 아들에게 조언 같은 위로를 건넸다.     

 “근데 이 말은 솔직하게 하고 싶구나. 네가 지금 가장 할 수 있는 일은 엠마가 네 옆에 있었을 때처럼 네 삶을 살아가는 거란다.”

 “전 제가 해낼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당연히 넌 할 수 있어. 뭐 나는 10년을 그동안 어떻게 보내었겠니?”


 영화를 처음 봤을 때, 그리고 일주일동안 이 대사를 읊조리며 아버지처럼 살아보고자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스무 살부터 독립해서 본가에 자주 가지 못했는데 처음에는 자주 가족의 부재로 외로움을 느낄 때가 있었다. 그럴 때면 영화 속 아버지의 대사를 떠올리며 내 곁에 가상의 가족을 만들어 기대곤 했다. 깊은 우울증에 빠져 식욕이 줄어 점심을 굶으려다가도 어린 시절 비슷한 상황에서 어머니가 했던 잔소리를 떠올리며 걱정을 끼치지 않으려고 점심을 챙겨 먹을 때처럼 주변에 가족이 있다면 했을 법한 조언이나 따뜻한 말을 되새기며 힘든 시간을 견뎌냈었다. 신기하게도 가상의 사랑하는 사람들을 내 곁에 두면 조금씩 외로움을 극복하는 힘이 생기게 되었다. 이번 부산에서의 위기도 위와 같은 마음으로 견뎌내게 되었다.     

 아직 극단적인 상황은 겪어본 적은 없지만, 삶의 고통은 모두에게 상대적이다. 이 글을 쓰기 위해 다시 한번 영화를 정주행하며 한 때는 가까웠지만 여러 이유로 이별했던 사람들과 참을 수 없어 무너졌던 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가까운 이별은 근 몇 년 내에 있었고, 가장 오래된 이별은 십 년이 지나고도 한참 전에 있었다.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를 비교하며 씁쓸함과 흐뭇함이 동시에 느끼는 경험을 하게 되는 건 나를 사랑해주었던 그 사람들 덕에 내 모습이 계속 개선되어 왔음을 깨닫는 데에 있었다. 


“말을 더 예쁘게 해주면 안 될까? 나를 존중해주는 기분이 들지 않아.”     

 마지막 연애에서 자주 들었던 부탁이었다. 결국에는 연애의 마지막 날까지 그 부탁을 들어주지 못했었다. 놀라운 건 최근 들어서 말을 예쁘게 한다는 칭찬을 종종 듣는다. 이전에는 들어보지 못한 칭찬이었다. 다소 기분이 좋다가도 만약 그때부터 그랬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씁쓸함을 느낀다. 영화를 처음 본 날로부터 9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외롭고 힘든 순간들이 많다. 그런데도 이 고독한 나날에서 계속 앞으로 발을 내딛을 수 있는 데에는 손 위에 모래처럼 흩어져 사라져간 사랑했던 사람들이 여전히 내 주변에 있는 것처럼 행동하는 덕분이라는 것이다.


영화 : 원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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