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지나면 제주도에 카페나 차릴까?

미성숙의 성숙에 대한 기대

by 다재

제주도는 참 아름다운 곳이다. 이런 경치와 감성을 이제 와서 알아본 게 아까울 정도였다. 7년 만에 제주도에 왔다. 스스로 찾아온 건 아니다. 5월에 있을 현장 체험 학습 답사 목적으로 방문하게 되었다. 평소에 가성비를 중요시하는 사람이었다. 제주도 여행 비용은 나의 계산에 맞지 않았다. “그 돈이면 조금 보태서 일본 여행을 가지. 아니면 동남아 여행을 가거나.”를 외치며 살았다. 여행 기회가 올 때면 다른 곳을 찾아갔던 걸로 기억한다. 이번에는 비행기도 숙소도 그리고 식사도 어느 정도 지원되었다. 제주도를 가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답사 날짜를 정한 후 정신없이 맡은 업무를 쳐내며 지냈었다. 제주도로 가는 당일이 돼서야 부랴부랴 짐을 싸서 쫓기듯이 가는 제주도였다. 공항에도 체크인 마감 시간 10분 전에 겨우 도착하여 비행기에 탑승할 수 있었다. 겨우 한숨 돌리고 ‘제주도의 푸른 밤’ 노래를 들으며 비로소 조금씩 제주 여행에 대한 설렘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그동안 봐왔던 제주도 배경의 드라마와 영화를 떠올리며 머릿속에 제주도 풍경을 조금씩 그려나가기 시작했다. ‘제주도에는 정말 도둑이 없을까?’, ‘제주도에는 정말 가게마다 귤을 무료로 나누어줄까?’ 등 온갖 제주도에 대해 들었던 이야기들을 떠올리다 보니 제주 공항에 도착해 있었다.


부산보다 조금은 더 강하지만 따뜻한 바람이 반겨주는 제주도에 도착했다. 먼저 한 일은 친구를 만나 같이 택시를 타고 애월로 넘어가는 것이었다. 게스트하우스 파티를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우리 둘은 제주도의 게스트하우스 파티를 체험해보기로 했다. 택시가 자꾸 으슥한 곳으로 들어가 조금 무서웠던 참에 도착한 곳은 정말로 시끌벅적한 파티장이었길래 조금은 신기했었다. 이렇게 인적이 드문 곳에서 비밀 연회라도 하듯 유일하게 시끄러웠던 파티장에 들어갔다. 스태프가 안내해준 테이블에 앉아 어색한 인사를 하고 앉아 조용히 테이블 바닥만 보고 있었다. 계속 침묵을 유지하다 보면 가장 어색함을 참지 못하는 사람이 결국 말을 꺼내는 법이었다. 그분의 리드로 서로 자기소개를 이어가다 레크레이션 직원의 아이스 브레이킹이 시작되었다. 조금씩 무르익는 분위기 속에서 한 잔, 두 잔을 기울이며 서로 급격하게 친해졌지만, 다음날 숙취와 함께 일어나니 남은 추억은 없었다.


그렇게 무거운 머리를 겨우 달래며 제주도 2일차 일정을 시작하였다. 본래 제주에 온 목적에 충실하게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틈틈이 지난 파티의 의미를 떠올렸지만 아무래도 건질 게 없는 시간이었던 것 같다. 제주 날씨는 종잡을 수 없다더니 서귀포로 내려오며 화창했던 날씨가 조금씩 흐려지기 시작했다. 조금씩 굵어지는 빗방울을 뚫고 가는 곳곳 나름의 운치에 점점 기분이 좋아졌다. 그럴수록 다시금 제주도에서의 첫날이 곱씹어졌다. 무언의 설명할 수 없는 기분이지만 좋은 기분은 아니었다. 나름의 기대를 하고 온 제주였건만 첫날부터 의미 없이 하루를 보냈다는 생각이었다.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미성숙하다는 생각이었을지도 모른다.


빗방울이 거세져 답사를 급하게 마무리 짓고 숙소에서 비가 그치길 기다렸다. 어느 정도 비가 잦아들어 친구와 함께 서귀포의 이름 모를 동네를 걸어 다녔다. 온 군데가 보리밭이었던 풍경을 지나 바닷가까지 걸어갔다. 그곳에는 작은 카페가 한 곳이 있었다. 카페에는 흰 백발의 할아버지가 카페를 지키고 있었다. 아메리카노 2잔을 시키고 둘러보는 카페 내부에는 할아버지께서 모아온 수집품들로 가득했다. LP판부터 여러 여행 사진들과 책과 악보들 그리고 기타가 놓여있었다. 모든 것들이 조화롭게 배치되어 참 운치 있는 카페 분위기를 만들었다. 혼자서 이 카페를 운영하는 듯 보이는 이 할아버지는 참 낭만 있게 사셨던 모양이다. 방명록 용도로 쓰이는 작은 수첩에 나는 내 이름을 새겼고, 친구는 할아버지께 허락을 맡고 기타를 들어 어색하게 연주를 시작했다. 평소였으면 짓궂은 농담을 한 번씩 건넸었지만, 이번에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조용히 기타 소리를 감상했다. 손가락이 아프다며 기타를 오래 치지는 못했지만 잠시나마 기타 소리를 들으며 커피 한 모금 하는 그 순간이 참 좋았다. 이 할아버지는 어쩌면 매일 이런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지내고 계실까? 꼭 고요한 바다 같았다. 무엇이든 품어줄 수 있을 것처럼 말이다.


다시금 어제의 의미 없던 시간이 떠올랐다. 휩쓸고 지나가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 파도 같은 하루였다. 언젠가는 그 할아버지처럼 지내고 싶다고 생각했다. 이 할아버지께서 모아온 수집품들은 그 할아버지의 인생이 고스란히 담겨있을 것이다. 그 수집품의 이야기를 엿듣다 보면 할아버지께서 겪었던 거친 풍파를 알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런 풍파들을 견디고 견뎌 지금의 고요한 바다가 되어 있을 거라 믿고 싶었다. 한없이 어렸던 시절을 떠올리면 지금도 이불을 차는 순간들이 한둘이 아니다. 분명히 그때보다는 현재의 내 모습이 더 만족스럽다. 분명히 앞으로도 조금씩 더 파도를 만들어나갈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들이 쌓이다 보면 어느새 할아버지와 이 카페처럼 고요한 바다가 될 거라 믿어본다.


KakaoTalk_20250905_114943476.jpg 제주도 카페의 모습이다. 소품들은 다 어떤 여정에서 만난 것들일까? 사연이 궁금해진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여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