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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레스트 Jan 23. 2024

딱따구리는 1가구 2주택

Episode 03. 둥지


숲 속의 새들은 한 곳에 머물지 않는다. 볕 좋고 경치 좋은 곳에 태평하게 앉아있다가는 언제 천적에게 목숨을 잃어도 이상하지 않다. 그러나 번식기 때만은 어쩔 수 없다. 그래서 둥지를 만드는 동안에 새들은 극도로 예민해진다. 위험하다 느끼면 힘들게 지은 둥지를 미련 없이 버리고 떠난다. 새끼들의 대소변이나 쓰레기는 그 자리에서 받아먹어 치우거나 둥지에서 최대한 멀리 떨어진 곳에 버린다. (그러니 둥지를 짓는 새를 발견하거든 제발 모른 척해주자.)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83가지 새 이야기>에는 오목눈이의 둥지 만드는 이야기가 나온다. 외벽은 이끼와 지의류를 모아 거미줄과 나방고치에서 뽑은 실로 엮고, 내부는 다른 새의 깃털을 물어다가 촘촘하게 깔아 만드는데 그 개수가 보통 1,000개에서 많게는 2,900개. 이렇게 만든 둥지는 단열이 뛰어난 데다가 탄력성이 있어 새끼들의 성장에 맞춰 적당히 늘어난다고 한다. (아이들의 성장과 독립에  맞춰 집을 바꿔주는 서비스 같은 거 어디 없나?)


조류계 최고의 건축가가 오목눈이라면 최대의 건물주는 딱따구리가 아닐까. 숲 속의 의사라는 별명처럼 딱따구리는 나무속 벌레를 잡아주는 대신 둥지를 만들 수 있는 독점권을 얻었다. 매년 둥지를 새로 짓는 딱따구리는, 특이하게도 수컷이 밤새 알을 품는 동안 암컷은 다른 둥지에서 잠을 잔다. 그래서 가구당 2 주택이 기본. 덕분에 다른 많은 새들이 둥지를 구하는 수고를 덜고 있다.


누가 그랬다. 집 세 번 지으면 죽는다고. 내 주변에도 집 짓다가 화병 난 사람이 몇 있다. 서점에 가도 그런 고생담을 써낸 책이 여럿 나와 있는 걸 보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짐작이 된다. 첫 번째 시도에 그 정도라니. 두세 번째쯤에는 정말 돌아버리거나 영영 돌아가실 수도 있겠구나, 싶다.


문제는 대개 설계와 시공의 차이에서 시작되는 것 같다. 건축주는 집이 들어설 곳을 잘 모르고 시공사는 건축주를 잘 모른다.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부족한 상황이 개선되지 않으면, 어느 순간 ‘호구’와 ‘업자’라는 먹고 먹히는 살벌한 관계가 되어 버려 결국 사람도 집도 수명을 단축하게 되는 것 아닐까.


나는 오랫동안 내 손으로 집을 짓고 싶다는 꿈을 갖고 있었다. 지금은 조금씩 생각이 바뀌는 중이다. 이미 전국 방방곡곡 집이 들어서지 않은 곳이 없고(그중에 제대로 지은 집은 얼마나 될까?), 거기에 나까지 한 자리 더하고 싶지 않다. 그나마 남아있는 숲이라도 그냥 내버려 두고, 가끔 찾아가서 실컷 걷고, 밤이 되면 내 몸을 누일 작은 텐트 정도면 충분하다고.


사람은 동물과 다르게 한 번 배운 것으로 죽을 때까지 살아갈 수가 없다. 세상은 늘 우리에게 계속 변화할 것을 요구한다. 점점 더 그런 시대로 접어들수록, 우리에게는 변함없이 제 자리를 지키고 있는 집이 필요하다. 언제든 돌아와 쉴 수 있고 다시 세상으로 나갈 용기를 불어넣어 주는 집.


어쩌면 당연할 수 있는 그런 평범한 일상을 유지해 주는 것은 집의 위치나 디자인, 가격만은 아닐 것이다. 집에 대한 끊임없는 관심과 손길이야말로 집의 가치를 높여준다고 생각한다.(추워서 귀찮지만 생각은 이제 그만하고 당장 쓰레기부터 버리고 와야겠다.)




입춘이 지나면서 까치들이 짝을 지어 둥지를 짓는 모습이 자주 눈에 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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