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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레스트 Jul 16. 2024

현실은 노란색 카레 국밥

Episode 17. 밥

높은 습도 탓에 찌는 듯이 더운 날이 계속되고 있다. 수목원 산책 중에 어디선가 삐이익 삐이익 가냘픈 울음소리가 들린다. 걸음을 멈추고 살펴보니 어린 새 한 마리가 버드나무 가지를 간신히 붙잡고 내리쬐는 볕을 그대로 맞으며 앉아 있다. 툭 튀어나온 두 눈은 꿈뻑꿈뻑 작은 부리는 반쯤 벌린 채 힘겹게 숨을 내쉬고 있다. 둥지를 떠나 독립하기에는 아직 어려 보이는데… 갑작스레 내린 소나기에 둥지에서 미끄러지기라도 한 것일까.


혹여 중심을 잃고 가지 아래로 떨어지면 어쩌나 걱정이 되어 꼼짝없이 서서 바라보고 있는데, 직박구리 한 마리가 다가와 경고음을 낸다. 어미인 모양이다. 천천히 자리를 뒤로 옮겨 몸을 숨기고 쌍안경을 꺼냈다. 어미는 나무 안쪽에 앉아 그늘로 들어오라고 부르는 듯한데, 어린 새는 도대체 기운이 하나도 없는지 꿈쩍도 하지 않고 칭얼대기만 한다. (아이를 키워본 분들이라면 수없이 겪어본 상황이죠?)   


어미새는 잠시 후 메뚜기를 입에 물고 새끼 옆에 내려앉았다. 일단 밥부터 먹여볼 셈인가 보다. 새끼는 본능적으로 입을 벌리는데... 메뚜기가 너무 크다. 게다가 다리와 더듬이는 삐죽삐죽 제멋대로 벌어져 부리에 걸리고 만다. 얼른 기운차리라고 큰 놈으로 잡아온 것 같기는 한데, 한 입에 쏙 들어가도록 잘 차려내는 센스는 부족한 것이... 초보 맞벌이 가정의 식사 시간을  보는 듯하다.


여느 집과 마찬가지로 우리 집도 부모님 모두 일을 나가셨다. 아이들은 집열쇠를 목에 걸고 학교에 다녀왔다. 오후 내내 텅 비었던 집은 저녁 늦게야 불이 켜졌고 어머니는 부랴부랴 식사 준비를 하셨다. 매일 텔레비전에서는 단정하게 앞치마를 두른 아줌마가 '오늘의 요리'를 예쁘게 담아내고 있었지만, 하루종일 직장일 집안일에 치이는 어머니에게 밥이란 얼른 해치워야 하는 '오늘의 숙제'와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인가. 죄송스럽게도 기억에 남은 어머니표 음식은 없다. 그렇다고 지금껏 딱히 불만도 없다. 다만, 가끔 카레를 만드는 날이면 텔레비전에 나오는 것처럼 넓은 접시에 밥 따로 카레 따로 예쁘게 담아주시기를 바랐다. 볼이 깊은 숟가락으로 카레를 조금씩 떠서 뜨거운 쌀밥에 비벼가며 천천히 맛과 향을 음미하고 싶었다. 그러나 현실은 노란색 카레 국밥... 언젠가 어머니가 그때 이야기를 하신 적이 있다. 당시엔 그럴 마음의 여유도, 예쁘게 담아낼 접시도 없어서 참 미안했다고.


직박구리 어미는 새끼의 입에서 메뚜기를 다시 꺼내더니 몸통을 돌려가며 자근자근 씹어 납작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다시 입 안으로 쏘~옥 넣어주고는 튀어나온 뒷다리를 재빨리 부리로 떼어냈다. 먹이가 크고 거칠다고 해서 어미의 마음까지 그런 것은 아니었던 것이다. 커다란 메뚜기를 홀라당 삼키는 모습을 대견스럽게 바라보던 어미는 다시 새끼를 불렀다. 배도 부르고 기운도 되찾은 새끼는 어미를 따라 나무그늘로 들어갔다.  




요즘 최고의 요리선생님은 누가 뭐래도 '어남선생'이죠. 하지만 제 첫 선생님은 '나물이'님이었답니다. <2000원으로 밥상 차리기-나물이의 생존전략>을 마르고 닳도록 봤죠. 안타깝게도 2015년 세상을 떠나셨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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