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23. 깃털
날은 밝았으나 해는 아직 낮아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진 아침. 가로등 어깨 위에 간신히 걸려있는 볕자리마다 녹아내리다 만 눈덩이처럼 새들이 굳어있다.
얼어 죽어도 스스로를 가엽다 여기는 새는 없다지만, 반쯤 잠이 든 몸뚱이를 반쯤 남은 정신머리로 간신히 부여잡고 어서 해가 뜨기를 기다리지 않았을까.
새들이 추위 속에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은 평소 긴 시간을 들여 신경 써서 관리해 온 깃털 덕분이다. 그중에서도 가슴과 배를 촘촘히 덮은 솜털을 다운 down - 고대 북유럽어 dúnn에서 유래 -이라고 부른다.
1922년, 대영제국의 에베레스트 원정에 초대받은 호주 출신의 과학자이자 산악인, 조지 핀치 George Finch가 다운 down을 충전재로 한 방한복을 처음 만들어 입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녹색 열기구 원단에 아이슬란드산 아이더다운 eiderdown - 참솜깃오리의 가슴깃털 - 을 채우고 털로 된 카라를 붙인 방한복을 처음 본 영국 귀족들은 대놓고 그를 비웃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그가 개발한 산소통도 탐탁지 않게 여겼다.
멋진 트위드 재킷에 스카프를 매고 산소통의 도움 없이 8천 미터가 넘는 고산을 오르려던 콧대 높은 고집쟁이들의 비웃음이 부러움으로 바뀌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런던 알파인 클럽의 유명인사 조지 말로리 George Mallory - 에베레스트에 왜 오르냐는 질문에 ‘산이 거기 있기에’라고 말했다는 - 의 첫 등정이 실패한 후, 조지 핀치는 방한복과 산소통의 도움을 받아 8,360미터까지 올랐다. 그러나 지친 동료 때문에 - 에베레스트 ‘정복’의 타이틀을 식민지 호주인에게 넘겨주고 싶지 않았던 영국인들의 꼼수로 보이지만 - 결국 정상에 오르지 못하고 물러섰다.
30년이 지난 1953년, 뉴질랜드인 에드먼드 힐러리 Edmund Hillary와 셰르파 텐징 노르가이 Tenzing Norgay가 비로소 히말라야 정상에 놀랐다. 조지 핀치는 탐험대의 고문으로 활약했으며, 그의 방한복은 오늘날에 가까운 형태로 개량되었다.
조지 말로리는 1924년, 에베레스트에 재도전하며 - 조지 핀치를 원정대에서 제외시키고 - 산소통을 적극 활용했다. 옷차림은 여전히 트위드... 등반 도중 실종된 그의 시신은 1999년에야 발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