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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라 Jul 05. 2023

인생의 길, 자아를 찾으려 왔다고요?

친절한 화살표를 따라서 앞으로 걸어가기만 하면 된다.

  스페인 배낭여행의 막바지에 마드리드에서 눈에 띄는 여자아이를 만났다. 건강해 보이는 까무잡잡한 피부를 하고 커다란 배낭을 메고 있는, 나보다 예닐곱 정도 어린 친구였는데 너무나 건강하고 에너지가 넘치는 친구였다. 상대방의 기분을 좋게 만들고 뭔가 하고 싶다는 의욕이 샘솟게 만들었으니까 말이다. 그런 친구의 여행이야기를 듣고는 가슴이 쿵쾅거렸다.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결정했다. 난 그곳으로 떠나겠다고 말이다.


  일 년 뒤 난 그때의 다짐을 지키기 위해 짐을 꾸려 한 달 일정으로 산티아고 순례길로 떠났다. 요즘은 인터넷만 봐도 온갖 정보가 쏟아지지만 그때만 해도 그렇지 않았다. 관련 카페에서 대략적인 정보를 얻고 비행기만 예약해서 무작정 떠났다. 그렇게 떠난 산티아고 여행은 두고두고 추억을 씹어먹으며 낭만에 젖을 수 있는 나만의 안식처를 만들어 주었다. 대충 생각나는 것들만 이야기해도 끝이 없다. 남들에겐 군대 갔다 온 남자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축구 이야기, 출산한 여자사람이 아이 낳은 이야기처럼 지겨울 수도 있지만 말이다.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떠난 여행이었지만 절대 만만히 봐서는 안 되는 곳이였다. 한국인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악으로 깡으로!! 무식하게 걷기는 잘한다. 스페인 친구 한 명이 묻더라. 한국인들은 왜 이렇게 열심히 걷는 거냐고? 우리는 비싼 비행기값을 주고 왔고, 또 이곳, 먼 곳까지 언제 다시 올지 몰라서 그런다고 했다. 지금 생각해 보니 내가 말해놓고도 어처구니가 없는 대답이다. 조금 멋있게 대답해도 되었을 텐데 말이다. 하지만 나의 본심이었기에 다른 대답은 생각나지 않았던 거 같다.     


  산티아고를 걸으면서 많은 사람을 만났고 이야기하면서 가장 많이 들은 질문은 “넌 산티아고에 왜 왔어? 왜 이렇게 힘들게 걷고 있어?”였다. 여행 초기에는 이 질문에 생각도 많았고 주저리주저리 대답도 길었다. “난 이런이런 일을 했었는데, 새로운 일을 구상 중이야. 아이디어도 얻고 생각의 정리가 필요해서 왔어. 그리고 앞으로 나의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게 뭔지를 알고 싶어서 지금 이 길을 걷고 있어.” 물론, 나뿐만이 아니라 국적불문하고 다들 심각하게 대답을 했다. 이런 이야기를 할 때는 엄숙하기까지 했었다. 인생을 이렇게 심각하게 고민할 수 있다니 대단한 곳 인가보다. 그래서 다들 대답을 찾아서 돌아갔을까? 할 이야기는 지금부터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정말 힘든 여정이다. 일주일 정도 지나면 온갖 통증으로 몸에 무리도 오고 ‘난 누구? 여긴 어디?’ 이런 순간이 자주 생긴다. 하지만 아침에 눈을 뜨면 또다시 하루를 시작한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 비행기 일정은 정해져 있고 어떻게든 이곳에서 시간을 보내야 하니까 말이다.


  그런데 여기서 정말 좋은 점 한 가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는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친절한 화살표를 따라서 앞으로 걸어가기만 하면 되니까 말이다. 그냥 나의 고민은 오늘 점심은 어디서 먹고, 몇 킬로미터를 걸어서 어느 마을까지 가고, 어떤 알베르게에서 잠을 자는냐다. 알베르게란 순례길을 걷는 사람들이 저렴하게 숙박을 할 수 있는 곳이다. 내가 갔을 시기가 비수기인 겨울시즌이라 운영하지 않는 알베르게가 많아서 나름 중요한 결정이었다. 그리고는 저녁으로 뭘 먹을지를 고민한다. 이 얼마나 단순하고 얼마나 간단한가. 여행 초기의 진지한 대화는 다 없어지고 점심을 먹으면서 그날 저녁 메뉴에 대해 토론을 한다. 


  몸은 만신창이가 되어갔지만 정신은 맑아지고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주변 풍경을 보고 즐기며 느낄 수 있게 되었다. 여행을 마칠 때쯤 조금은 가벼워진 마음으로 주변을 바로 볼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물론 일상에서는 여전히 해결되지 못한 문제가 수두룩 했다. 내 인생에서 내가 풀어야 할 숙제니 남아있는 게 당연하지 않은가? 하지만 그 문제를 바라보는 나의 모습이 달라져 있었다. 


  지금도 고민이 생기고 어려움이 닥쳤을 때 산티아고에서의 그날들을 찬찬히 생각해 보면 명쾌해진다. 어떤 어려움도 고민도 풀지 못할 게 없다. 우선 앞을 보면서 걸어가며 꾸준히 무언가를 하면 된다. 어떤 행동도 하지 않으면서 불평만 하고 있지 않은가?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미리 걱정하지 않은가? 기본을 생각하며 닥친 문제를 하나하나 해결해 나가면 된다. 해야 할 일들 중 빨리 처리해야 하는 일, 중요한 일, 덜 중요한 일, 나중에 해도 되는 일로 나눠서 적고 하나하나 해결하고 지워 나가자. 그리고 우리는 혼자 살지 않는다.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해라. 그럼 해결 못할 일이 없을 것이다.


  나에게 산티아고를 걸으면서 얻는 것 중 가장 큰 소득이라면, 삶을 대하는 여유로운 자세를 가질 수 있게 된 것과 그리고 하면 안 될 게 없다는 마음을 얻게 된 것이다. 그럼 넌 어떤 시련도 어려움도 없냐고 묻고 싶을 것이다. 하루에도 몇 개씩 생긴다. 특히 육아를 하는 요즘은 더더욱 많다. 육아를 하면서 나 아닌 다른 인격체와 잘 지내기가 쉽지 않음을 느낀다. 참 마음대로 되지 않는 삶이다. 하지만 이 글을 적으면서 다시 한번 더 되새기고 다짐해서 하나씩 해결해 봐야겠다. 지금 난 ‘당장 산티아고를 걸으려 가세요 ‘가 아니라 나의 짧은 경험담에 비추어 삶이란 게 별 게 없으니 단순하게 살아보자고 말하고 싶다. 아무리 거대해 보여도 하나씩 해결하면 반드시 이루어져 있을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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