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선희 시인의 '석등이 있는 집'을 청람 평하다
배선희 시인과 김왕식 평론가
by 평론가 청람 김왕식 Sep 15.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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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등이 있는 집
시인 배선희
반인반수의 십이지신상이 있는
천년고도의 서라벌
하늘 속을 풀어 땅을 다스리던
천관녀가 있어
김유신 장군의 묘 둘레 석에
십이지신상을 세워 역사를 지킨 곳
발 내린 빛 고운 땅에
빙 둘러앉은 열두 지신이
석등을 들어 올려 밝힌 저 하늘빛
세월에 깎이고 시달린
삼층석탑의 비로자나불이 눈 떠
빈 석등 틈새 눈길을 내고 있다
석등이 있는 집
세상의 운을 움켜쥐고
예나지나 오가는 사람들 발목 잡고
한 푸념 푸는 석등이 되게 한다
시인이 보면 시구절이 떠오르고
소설가가 보면 스토리가 풀리던가
박목월 시인도, 김동리 소설가도
천연기념물이 될 저 탱자나무의
골진 등걸 속을 들여다보았으리니
세월 영그느라 가시조차 무뎌진 것은
석등이 있는 집에
잠시 앉아 열두 신상이 되고 보니
세상만사 할 이야기가 둥둥 떠
석등 안에 호롱불로 켜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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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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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선희 시인은 현대 한국 문단의 중요한 목소리 중 하나로, 그의 시세계는 전통과 현대, 현실과 상상의 경계를 넘나들며 독자들을 새로운 감각의 세계로 이끈다. 그는 일상적인 사물이나 공간을 통해 인간의 내면과 삶의 본질을 탐구하는 데 뛰어난 능력을 발휘한다.
'석등이 있는 집'은 그의 이러한 특성이 잘 드러난 작품으로, 경주의 한 고택에 새겨진 석등과 그 주변의 풍경을 통해 시간과 공간, 인간과 역사의 교차점을 표현하고 있다. 이 시는 석등이 단순한 장식물이 아니라, 세월을 품고 있는 존재로서 시인의 철학적 사유와 감정을 담아낸 공간으로 묘사된다.
첫 행에서 '반인반수의 십이지신상이 있는 천년고도의 서라벌'은 경주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서라벌은 신라의 옛 이름으로, 천년의 역사를 간직한 고도(古都)이다. '반인반수의 십이지신상'은 인간과 동물의 혼합체로, 전통적인 상징물이면서도 역사와 문화의 무게를 동시에 지닌다. 이 상징물들은 '하늘 속을 풀어 땅을 다스리던 천관녀'라는 표현과 연결되며, 신라 시대의 종교적·신화적 세계관을 떠올리게 한다. 천관녀는 신화 속 인물로, 이 시에서 자연과 인간, 신성의 조화로움을 상징한다.
'김유신 장군의 묘 둘레 석에 십이지신상을 세워 역사를 지킨 곳'이라는 구절은 역사적 공간의 현실감을 더한다. 김유신 장군의 묘는 한국사에서 중요한 장소로 여겨지며, 그 주위를 둘러싼 십이지신상은 역사의 수호자처럼 묘사된다. 이는 이 시가 단순한 과거의 회상이 아니라, 현재의 시각에서 재해석된 역사적 공간임을 암시한다.
'발 내린 빛 고운 땅에 빙 둘러앉은 열두 지신이 석등을 들어 올려 밝힌 저 하늘빛'에서는 '발 내린 빛 고운 땅'이라는 표현으로 경주의 자연과 역사의 아름다움을 강조한다. '석등'은 단순한 장식물 이상으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신비로운 존재로 그려진다. 열두 지신이 석등을 들어 올리는 장면은 마치 신화적 사건처럼 다가오며, 하늘과 땅, 인간과 신의 연결 지점을 형성한다.
이어지는 '세월에 깎이고 시달린 삼층석탑의 비로자나불이 눈 떠 빈 석등 틈새 눈길을 내고 있다'는 구절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마모되고 변화한 석탑의 이미지를 그려낸다. 삼층석탑은 한국의 전통적인 불교 건축물로, 비로자나불은 우주의 본질을 상징한다. 이 구절에서는 비로자나불이 눈을 뜨는 장면을 통해 시간의 초월성과 깨달음의 순간을 표현한다. 빈 석등의 틈새에서 바라보는 시선은 마치 시인이 그 공간에서 경험한 깨달음의 순간을 독자와 공유하고자 하는 의도로 읽힌다.
'석등이 있는 집 세상의 운을 움켜쥐고 예나지나 오가는 사람들 발목 잡고 한 푸념 푸는 석등이 되게 한다'는 구절에서는 석등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존재로, 인간의 삶을 품고 있는 공간으로 변모한다. 석등이 세상의 운을 움켜쥔다는 표현은 석등이 단순한 장식물이 아니라, 인간의 역사와 감정을 담아내는 그릇임을 의미한다. 여기서 석등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의 삶의 일부분이 되는 매개체로 작용한다.
'시인이 보면 시구절이 떠오르고 소설가가 보면 스토리가 풀리던가'라는 표현은 이 장소가 단순한 역사적 유적이 아닌,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는 공간임을 강조한다. 시인과 소설가가 경험한 공간적 감각은 이곳이 단순한 물리적 장소가 아니라 정신적 공간, 창조적 공간임을 암시한다. '박목월 시인도, 김동리 소설가도 천연기념물이 될 저 탱자나무의 골진 등걸 속을 들여다보았으리니'라는 구절은 당대 문학가들이 느꼈던 감정과 사유를 현재로 끌어와 독자에게 전달한다.
'세월 영그느라 가시조차 무뎌진 것은'이라는 표현에서는 시간의 흐름과 그에 따른 변화, 그리고 그 변화를 통해 얻게 되는 지혜와 성찰을 담고 있다. 이 시에서는 가시조차 무뎌질 정도로 성숙한 세월을 상징하며, 그 안에 담긴 삶의 진리와 깨달음을 암시한다.
마지막으로 '석등이 있는 집에 잠시 앉아 열두 신상이 되고 보니 세상만사 할 이야기가 둥둥 떠 석등 안에 호롱불로 켜지더라'는 구절에서는 시인이 이곳에서 경험한 심리적·정신적 체험을 정리한다. 열두 신상이 된다는 것은 시인이 시간과 공간, 인간과 자연의 경계를 넘나드는 경험을 통해 얻은 깨달음을 의미한다. 석등 안의 호롱불은 이러한 깨달음과 사유의 상징으로, 시인의 내면에 밝힌 작은 등불이자, 모든 이야기를 담아내는 공간이다.
이 시에서 감성적 측면과 이미지의 중요성은 매우 두드러진다. 배선희 시인은 석등이라는 구체적 사물을 통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감각적 경험을 전달하며, 독자들에게 경주의 역사적, 문화적 깊이를 체감하게 만든다. 시인이 바라보는 석등과 열두 신상의 이미지는 단순한 관조가 아니라, 그 자체로 살아 숨 쉬는 존재처럼 느껴진다. 이러한 이미지는 시인의 철학적 사유와 감정이 응축된 공간으로서, 독자들에게 새로운 감각의 차원을 제공한다.
배선희 시인의 이 시는 그의 가치철학을 잘 드러내며, 인간과 자연, 역사와 현재의 조화로운 관계를 탐구한다. 그는 과거의 유물과 그 안에 담긴 이야기를 현재의 시각으로 재해석함으로써, 독자들에게 새로운 사유의 가능성을 열어준다. 시의 유기적 흐름은 역사적·문화적 맥락에서 출발하여, 개인의 내면적 깨달음으로 이어지며, 이를 통해 인간의 존재론적 성찰을 유도한다.
'석등이 있는 집'은 배선희 시인의 시적 철학과 감성이 깊이 반영된 작품이다. 석등을 매개로 시간과 공간, 역사와 인간, 자연과 신성이 어우러진 시적 공간을 창출하며, 독자들에게 새로운 사유와 감각의 세계를 제시한다. 이 시는 단순한 서사적 나열이 아니라, 섬세하고 다층적인 이미지와 상징을 통해 독자들에게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남긴다. 배선희 시인의 시적 세계는 누구도 쉽게 모방할 수 없는 고유한 감각과 철학으로, 한국 문학의 중요한 유산으로 자리 잡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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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선희 시인님께,
시인님의 '석등이 있는 집'을 읽고 가슴 깊이 울림을 느낀 사람으로서 이렇게 편지를 드립니다. 저는 불과 얼마 전 경주를 방문했던 한 여행객에 불과했습니다. 그곳에서 저도 김유신 장군의 묘를 보고, 천년의 역사를 품고 있는 경주의 풍경을 사진으로 남겼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경험은 그저 얕은 스침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시인님이 이끄는 시선과 사유의 깊이로 그 공간을 다시 바라보니, 제가 얼마나 많은 것을 놓치고 있었는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시인님께서는 눈에 보이는 풍경 너머의 진실한 의미와 영혼을 담아내셨습니다. 그 마음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법을 조금이나마 배우게 되어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시인님의 시를 읽고 저는 단지 몇 백 년 된 유적지를 본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역사를 마주하고, 그 안에 깃든 수많은 이야기와 영혼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석등이 있는 집'에서 시인님은 단순한 돌과 석상의 나열이 아니라, 수천 년의 세월을 거슬러 흐르는 시간의 숨결을 듣고, 그 속에서 말없이 깃들어 있는 인간과 자연, 그리고 신성의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주십니다. 석등과 열두 지신이 마치 한 시대의 수호자처럼 서서, 그곳을 지나가는 모든 이들의 발걸음을 지키고, 그곳을 오가며 살아온 이들의 숨결을 함께 품고 있다는 시선은 저에게 경외감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이 시를 읽기 전, 저는 그저 사진을 찍고 돌아오는 평범한 여행자에 불과했습니다. 그저 멋진 풍경과 고요한 공간을 사진으로 담고, SNS에 몇 장의 사진을 올리는 것이 여행의 전부라고 생각했지요. 하지만 시인님의 시를 통해 알게 된 것은, 진정한 여행이란 단순히 눈으로 보고 스쳐가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 깃든 이야기와 그곳을 지켜온 시간의 무게를 마음으로 느끼는 것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시인님은 '발 내린 빛 고운 땅에 빙 둘러앉은 열두 지신'이라는 표현으로 경주의 땅이 단지 땅이 아닌, 신령스러운 빛과 존재로 가득 찬 곳임을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그저 돌로 된 석상을 보며 '멋지다'라고 생각했지만, 시인님께서는 그곳에서 살아 숨 쉬는 열두 신상의 이야기를 보셨습니다. 석등을 들어 올려 밝힌 하늘빛이란, 그저 하늘을 비추는 빛이 아닌, 천년의 시간을 비추는 빛이었습니다. 시인님의 시를 읽고 나서야, 그 빛의 의미를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시의 후반부에서 '석등이 있는 집 세상의 운을 움켜쥐고 예나지나 오가는 사람들 발목 잡고 한 푸념 푸는 석등이 되게 한다'는 구절을 읽으며, 석등이 단순한 돌이 아니라, 세월과 역사의 이야기, 사람들의 삶과 사연을 품은 하나의 존재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시인님께서 보신 그 석등은 단지 역사적인 유물이 아니라, 그곳을 지나간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와 숨결을 함께 품고 있던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제가 보고 느끼지 못했던 깊이의 차이였음을 이제야 알게 되었습니다.
시인님께서 이 시를 통해 보여주신 것은, 우리가 얼마나 많은 것을 놓치고 사는지에 대한 깨달음이었습니다. 역사의 현장에 서서도 우리는 그저 눈앞에 보이는 것만을 바라보고, 그 깊이와 이야기를 이해하지 못한 채 지나치기 일쑤입니다. 하지만 시인님은 그 깊이를 보셨고, 그 속에서 영감을 얻으셨습니다. 그리고 그 영감을 저와 같은 독자들에게 나누어 주셨습니다. 덕분에 저 또한 그 순간을 다시 생각해 보며,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제 다시 경주를 방문하게 된다면, 그곳의 풍경을 단지 시각적인 아름다움으로만 느끼지 않을 것입니다. 시인님께서 그려주신 시선으로, 그곳의 돌 하나, 나무 한 그루에도 깃든 수많은 이야기를 상상하며, 그 시간과 공간 속에서 그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시인님의 시가 저에게는 그저 한 편의 아름다운 글이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창이 되어 주었습니다. 시인님께서 보여주신 그 깊이 있는 시선과 사유의 방식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석등이 있는 집'을 통해 저는 단순한 여행객의 시선을 넘어, 진정한 사색가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법을 조금이나마 배웠습니다. 시인님의 시가 보여준 깊은 지혜와 감수성은 제가 앞으로의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큰 자양분이 될 것입니다. 다시 한번 감사드리며, 시인님의 깊은 시심이 앞으로도 많은 이들에게 큰 울림을 주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담아,
배선희 시인의 시에 감동한 한 독자 올림.
ㅡ 청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