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평론가 청람 김왕식
Nov 11. 2024
'청산이 타는 빛' ㅡ 시인 백영호
백영호 시인과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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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이 타는 빛
시인 백영호
산 깊은 계곡에
물은 붉은빛
산천은 불바다
불빛 물속에
손을 담그니
나그네 손끝에서
뚝,
뚝,
감전되어 떨어지는
방울방울 불방울
갈한 목 축이고
쓰윽, 고갤 드니
청산은
연기 없는 산불로
전신 만신에 번졌더라.
■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ㅡ
시어 처리에 탁월한 백영호 시인은 생명과 자연의 순환을 다루며 자연 속에서 인간의 존재와 생의 근본을 탐구하는 작가이다.
특히 그의 시에서는 자연에 대한 경외심과 함께 인간 존재의 작디작은 모습이 두드러진다.
이 작품 또한 그러한 삶의 철학이 담겨 있는 것으로 보인다.
'청산이 타는 빛'은 자연의 변화를 불빛에 비유하여, 그 속에서 여행자의 감정과 깨달음을 감전된 듯 표현한다.
"산 깊은 계곡에
물은 붉은빛"
이 구절은 고요함 속에서 드러나는 강렬한 자연의 색감을 강조한다. 산 계곡 깊숙이 자리한 물이 붉게 물든 모습은 일종의 자연의 불꽃이며, 이는 비극적이면서도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어지는 "산천은 불바다"는 그 색감이 산천을 온통 감싸는 모습을 표현하여, 자연이 만들어내는 극적인 장관을 감동적으로 드러낸다.
"불빛 물속에
손을 담그니"
이에서 화자가 물속에 손을 담그는 장면은 단순한 접촉을 넘어, 자연과의 교감을 상징한다. 물속의 불빛이 화자의 몸을 통해 전달되는 장면은 자연의 강렬한 에너지가 인간에게 흘러드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이후
"뚝,
뚝,
감전되어 떨어지는
방울방울 불방울"은
그 에너지가 방울처럼 떨어지며 흩어지는 모습을 섬세하게 포착한다. 여기서 '감전'은 자연의 강렬함을 체험한 화자의 놀람을 상징하며, 작은 물방울 하나마저도 자연의 불꽃이 되어 떨어지는 광경을 통해 자연의 위엄을 새삼 깨닫게 한다.
"갈한 목 축이고
쓰윽, 고갤 드니"
자연 속에서 피로를 해소하는 장면으로, 물을 통해 갈증을 해소하는 모습은 생명의 본질적인 연결을 느끼게 한다. 이러한 단순한 행위는 그 자체로 자연과의 화합이며 생명의 연장을 의미한다.
"청산은
연기 없는 산불로
전신 만신에 번졌더라"
이는 화자가 자연과 하나 된 모습을 극적으로 드러낸다. 청산의 불빛이 연기 없는 불로 화자의 몸에 스며드는 장면은 단순한 물리적 체험을 넘어선 정신적 경험을 의미하며, 자연이 인간의 내면에까지 닿아 들어온 듯한 인상을 준다.
백영호 시인의 시 세계는 자연을 단순한 풍경이 아닌, 인간이 다시 돌아가야 할 원초적 공간으로 바라보는 데 있다.
'청산이 타는 빛'에서 그는 자연 속에서 이루어지는 생명과 순환의 장관을 "불바다"와 같은 강렬한 이미지를 통해 구현해 내며, 자연이 가진 본연의 아름다움과 힘을 독자에게 각인시킨다. 특히, 이 시에서 자연과 인간의 접촉을 감전된 듯한 경험으로 표현함으로써, 인간이 자연을 경험하며 얻게 되는 놀람과 경외심을 심도 있게 전달한다. 작가는 청산의 불빛이 연기 없는 산불로 화자의 몸에 번져가는 순간을 통해, 자연의 신비와 위대함이 인간의 내면에 깃드는 듯한 독특한 미학적 체험을 드러낸다.
백영호 시인의 시에서는 자연의 에너지가 인간에게 스며들며, 그 속에서 인간은 자신을 초월하는 존재로 확장된다.
이 작품은 그의 미학적 세계관을 반영하여 자연을 단순히 관찰하는 대상이 아니라, 인간이 적극적으로 체험하고 교감해야 하는 대상으로 제시한다. 이를 통해 독자는 자연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되돌아보며, 인간과 자연이 하나로 연결된 세계관을 체득하게 된다.
이러한 백영호 시인의 미학은 자연을 통해 인간의 근원적 본질을 탐구하며, 삶의 순환을 깊이 깨닫게 하는 독창적인 미적 경험을 제공한다.
ㅡ 청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