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평론가 청람 김왕식 Dec 9.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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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과 하늘을 품은 의협객, 안최호
먼 하늘 아래, 리비아 트리폴리의 상공에서 한 남자는 추락하는 비행기 잔해를 뚫고 나아갔다. 불길과 파편 속에서도 멈추지 않고, 45명의 생명을 구하며 그는 자신의 몸과 마음을 바쳐 의협의 길을 걸었다. 그의 이름은 안최호. 삶을 헌신의 길로 가꾸어온 그는 의협객이었다.
그는 험난한 시대 속에서 타인을 위한 길을 묵묵히 걸었다. 국회위원의 수행비서와 보좌관으로 충직하게 공직을 수행하며, 약자의 곁에서 강자의 위엄을 낮추는 다리 역할을 했다. 그가 맡은 자리마다 바람은 고요해졌고, 사람들은 그 의연한 자세에서 배웠다. 세상의 중심에서 늘 타인을 먼저 생각하던 그는 환갑을 넘긴 어느 날, 모든 것을 내려놓고 산속으로 들어갔다.
장심리의 깊은 산속, 그는 ‘청람루’라 불리는 서너 칸 움집을 지었다. 화려한 도시의 빛을 뒤로한 채, 자연의 초록과 파랑이 뒤엉킨 공간에서 안빈낙도의 삶을 시작했다. 청람루는 단순한 집이 아니다. 그것은 한 인간의 삶의 철학이 스며든 쉼터이며, 자연과 인간이 어우러진 조화의 결정체다. 그는 나무를 다듬고 돌을 쌓으며 집을 만들었다. 땀방울 속에서 건축된 그 공간은 단순한 거처가 아니라, 삶의 본질을 깨닫는 성찰의 장소가 되었다.
청람루의 아침은 새소리로 시작되고, 저녁은 별빛으로 물든다. 그는 이곳에서 자연의 시간을 배우며 느리게 흐르는 삶의 미학을 익혀갔다. 도시의 빠르고 날카로운 삶과는 다른 차원의 시간이 그를 감쌌다. 청람루에서 그는 나무와 대화하고, 바람과 침묵하며 진정한 자유를 만났다.
자연 속에서도 생계는 피할 수 없는 숙명이었다. 그는 트럭을 몰고 전국을 누비며 짐을 나른다. 차창 밖으로 지나가는 풍경은 그의 또 다른 이야기의 한 장면이 되고, 트럭 위의 짐은 그가 걸어온 삶의 무게와 닮았다. 그는 묵묵히 핸들을 잡으며 자신의 길을 다진다. 도시와 산을 오가는 그의 삶은 인간의 두 얼굴을 비추는 거울과 같다.
안최호의 삶은 단순한 헌신의 연속이 아니다. 그것은 끊임없이 자신을 재발견하며, 타인과 자연, 그리고 자기 자신과 화해하는 과정이다. 그의 삶 속에는 의협의 강인함과 자연의 유연함이 공존한다.
그의 작품 속에서는 이러한 미의식이 강하게 드러난다. 자연 속에서 발견한 삶의 단순함, 그리고 인간의 존엄성이 어우러진 이야기는 독자들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 그의 글은 빠르고 복잡한 현대 사회에서 잊힌 자연의 미덕을 되살리고, 삶의 본질을 다시금 돌아보게 만든다.
그는 청람루에서 살아가는 일상을 통해 작고 사소한 것들에 담긴 아름다움을 노래한다. 아침 햇살이 스며드는 나무, 낙엽이 흩날리는 숲길, 바람 속에 실린 산의 향기. 이 모든 것이 그의 글 속에서 새로운 생명력을 얻는다.
안최호는 단순히 자연으로 돌아간 사람이 아니다. 그는 산과 하늘을 품은 사람이며, 삶과 자연의 조화를 글로 노래하는 예술가다. 그의 삶과 글은 현대인이 잃어버린 진정한 자유를 환기시킨다. 의협에서 안빈낙도로 이어진 그의 노정은 단순한 삶의 기록을 넘어, 우리 모두가 추구해야 할 삶의 방향을 보여준다.
그가 트럭을 몰고 지나간 길 위에, 청람루의 푸른 기운이 스며들고, 그가 쓴 글은 우리 마음속에 새로운 숲을 가꾼다. 산처럼 묵직하고 하늘처럼 자유로운 그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잊혀 가던 삶의 본질을 일깨운다.
ㅡ 청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