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평론가 청람 김왕식
Dec 20. 2024
삶이란, 고통 속에서도 무릎을 펴는 일, 의사 이상엽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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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란, 고통 속에서도 무릎을 펴는 일
에마누엘 스베덴보리(스웨덴어: Emanuel Swedenborg, 1688년 1월 29일 ~ 1772년 3월 29)는 영적 세계를 연구하고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54세부터 84세까지, 무려 30년간 30여 권의 저서를 남겼다.
서양철학자 칸트와 헬렌 켈러, 전 미국 대통령 루스벨트까지도 그의 사상에 영향을 받았지만, 그의 이름은 여전히 낯설거나 신비주의자로 오해받곤 한다.
그를 단순히 신비주의자로 치부하기엔 그의 삶과 사상은 깊고도 폭넓다.
그의 영적 세계를 흠모하며 삶 속에 녹여낸 한 사람이 있다. 그는 나의 고교 친구이자 정형외과 의사, 이상엽이다.
겨울, 일산 백병원의 병실에서 친구의 어머니가 소천하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겨울은 어르신들에게 더없이 가혹한 계절이다. 차가운 바람은 몸과 마음을 움츠러들게 하고, 삶의 끝자락을 더 선명하게 느끼게 한다.
그 한겨울 속에서도 삶의 무게를 묵묵히 견디며 무릎을 펴는 사람들이 있다. 친구 이상엽이 그런 사람이다.
그는 환자의 무릎을 치료하며, 다시 삶의 무게를 견디도록 돕는다. 그의 손길은 단순한 의술을 넘어섰다. 환자에게는 치료자인 동시에 위로자였고, 친구들에게는 든든한 주치의였으며, 부모에게는 극진한 아들이자, 자녀에게는 따뜻한 아버지였다. 그는 언제나 누군가를 일으켜 세우는 무릎이 되어 주었다. 그러나 그의 삶도 결코 평탄하지 않았다.
젊은 나이에 3살 터울의 형을 잃고, 본인 역시 초기 암 판정을 받으며 생사의 문턱을 마주했던 그는 스베덴보리의 사상을 통해 삶의 고통을 견뎌냈다.
제주도로 떠난 그는 손수 누룩을 띄우며 막걸리를 빚기 시작했다.
삶의 무상함 속에서도 새로운 길을 찾은 그의 모습은, 고통을 발효시키며 더 깊은 맛을 만들어내는 과정이었다. 그가 서울의 친구들에게 대접한 막걸리는 단순한 술이 아니라, 삶의 희망과 위로였다.
스베덴보리의 사상은 그가 고통 속에서도 무릎을 펴고 서도록 지탱해 주었다. 스베덴보리는 삶을 영적 세계와 연결하며, 고통은 우리를 더 높은 이해로 이끄는 과정이라 말했다. 친구는 그 가르침을 삶으로 증명했다. 그의 막걸리에는 손으로 띄운 누룩처럼 삶의 고단함과 희망이 함께 녹아 있었다. 고통은 씻겨 나가는 대신, 막걸리의 깊은 맛으로 남아 사람들의 잔을 채웠다. 그의 진심은 잔을 넘어 친구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했다.
그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겨울날, 그는 마지막으로 어머니의 무릎을 곧게 펴드렸다. 그 모습은 그의 삶을 대하는 태도와 다르지 않았다. 삶이란 고통 속에서도 다시 일어서고, 다른 이를 일으켜 세우는 것이다. 스베덴보리가 말했던 "삶의 영적 중심"은 그의 손길과 막걸리, 그의 무릎을 통해 세상에 전해졌다.
삶은 얼어붙은 겨울 들판에서도 새싹을 틔우는 힘을 가진다. 고통 속에서도 그는 환자의 무릎을 고치며, 삶을 지탱할 수 있는 힘을 선사한다. 그는 단순히 의사가 아니라, 고통을 함께 나누고, 다시 걸을 수 있도록 돕는 사람이다.
그가 대접한 막걸리를 마신 한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그 막걸리는 단순히 맛있는 게 아니라, 따뜻했어.” 그것은 그의 삶이 증명한 진심이었다. 고통 속에서도 무릎을 펴고 서는 사람, 무너진 무릎을 일으켜 세우는 사람. 그것이 바로 우리의 친구이자, 스베덴보리가 말한 삶의 모습이다.
삶이란 무엇인가?
스베덴보리가 가르쳤듯, 고통 속에서도 영적 중심을 잃지 않고 무릎을 펴는 것. 그 무릎으로 또 다른 이들을 일으켜 세우는 것이다.
겨울은 춥지만, 그의 삶은 늘 따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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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란 무릎을 펴는 것
한겨울 찬바람 속에서도
무릎을 펴고 서는 이가 있다.
스베덴보리의 영혼을 품고
삶의 무게를 견디는 사람.
환자의 아픈 무릎을 고치며
삶의 걸음을 돕는 친구,
제주의 햇살 속에서
고통을 막걸리로 빚은 사람.
손으로 띄운 누룩 속에
고단한 날들이 발효되고,
잔 속으로 흘러든 진심은
누군가의 마음을 덥혔다.
삶은 쓰디쓴 고통 속에서도
새로운 숨을 틔우는 일.
무너진 무릎을 일으켜 세우며
다시금 함께 걷는 것이다.
2024, 12, 20
ㅡ 청람 김왕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