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
바람이 머물다 가는 자리
청람 김왕식
사람들 사이에서는 때때로 도(道)에 대한 이야기가 오르내린다.
마음을 닦아야 한다거나, 비워야 한다거나, 내려놓아야 한다는 말들이 정리된 듯 들리지만,
그 말들의 힘이 오히려 마음을 단단히 묶어두는 순간도 있다.
비우려는 마음이 지나치면, 마음은 어찌할 바를 몰라 더 무거워지곤 한다.
어쩌면 마음은 거창한 가르침보다
그저 잠시 쉬어갈 여백을 더 좋아하는지도 모른다.
누구에게도 보여줄 필요 없는 숨 하나,
소리 없이 가라앉는 작은 고요 같은 것이 마음에는 더 잘 어울릴 때가 있다.
평범한 이들의 일상 속에서 그런 고요를 자주 보게 된다.
시장통에서 좌판을 열어놓고 하루의 리듬을 따라가는 상인,
강가에 낚싯대를 드리우고 물결의 속도에 맞춰 표정을 바꾸는 노인,
소를 풀어놓고 멀리 들판 끝의 바람을 바라보는 농부,
풀섶에 누워 구름의 모양만으로 오후를 보내던 어린 날의 우리.
이 모습들은 설명하려 들지 않아도
잠시 마음을 풀어주는 힘이 있다.
누군가는 그 속에서 도를 보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그저 살아 있음이 주는 온기를 느낄 뿐이다.
어느 쪽이든 틀리지는 않다.
삶은 원래 다양한 얼굴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도라는 단어가 반드시 큰 깨달음을 가리킬 필요도 없을 것이다.
억지로 붙잡으려 할수록 멀어지고,
살짝 뒤로 물러섰을 때 오히려 가까이 스며드는 경우가 있다.
바람이 지나가며 길을 만들듯,
마음도 억지로 가지런히 하려 하기보다는
흘러가는 대로 두었을 때, 제자리를 찾아간다.
각자의 마음은 조금씩 다른 방식으로 움직이고,
누구에게 필요한 길이
다른 이에게도 같은 모양일 이유는 없다.
이 사실을 조용히 인정하게 될 때 비로소 마음의 자리는 편안해진다.
굳이 비우지 않아도, 굳이 채우지 않아도
삶은 저마다의 리듬을 따라 흐른다.
우리의 하루 속에는 이미
잠시 머물 만한 자리가 몇 군데씩 숨어 있다.
눈을 들면, 커피잔의 김 올라오는 결에도 조용한 쉼이 있고
길가에 잠시 멈춘 바람에도 잔잔한 호흡이 있다.
그 자리는 꽃처럼 화려하지 않지만
낮은 나무의 그늘처럼 다정하게 사람을 받아준다.
누구의 방식도 강요되지 않고,
누구의 생각도 뒤처지지 않으며,
각자가 자기 마음의 고요에 닿는 그 순간—
그 순간이 바로 도의 모양일지 모른다.
도는 하늘 높이 달린 별이 아니라
이미 우리 손에 가만히 쥐어져 있는 작은 따스함이다.
시장의 소란 속에서도, 강가의 잔물결 속에서도,
들판의 한낮의 고요 속에서도
사람들의 마음을 비추는 빛은 늘 다정하게 머물러 있다.
그 빛은
깨달음이라는 이름을 달고 오지 않는다.
그저, 우리가 잠시 멈추어 서는 바로 그 순간에
조용히 걸어와 앉을 뿐이다.
ㅡ청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