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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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 불빛 아래에서 멈춘 발걸음
저녁이 내려앉는 도시에서
가장 먼저 불을 밝히는 곳은 편의점이다.
해가 완전히 지기도 전에 켜지는 그 하얗고 작은 불빛은
멀리서 보면 별처럼 반짝인다.
크지 않지만 늘 같은 자리에서
누군가의 하루를 비추고 있다.
그 불빛 때문에
사람들은 이곳을 스쳐 지나가다가도
잠시 멈추곤 한다.
편의점 문이 열릴 때마다
‘딩동’ 하는 짧은 종소리가 울린다.
그 소리는 하루 종일 지쳤던 사람의 마음에도
조용히 스며든다.
누군가는 삼각김밥 하나를 사러 들어오고,
누군가는 단지 물 한 병을 들고 나온다.
사람들은 모두 각자의 필요를 따라 들어오지만
편의점이라는 공간은
필요보다 조금 넉넉한 온기를 준다.
유리문을 밀고 들어가면
선반 위 물건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
어느 곳도 서두르지 않고,
어느 곳도 삐뚤지 않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
사실 이 정돈된 풍경은
사람의 마음을 꽤나 편안하게 만든다.
바깥세상은 늘 예측할 수 없고
순식간에 어지러워지지만
편의점 안은 항상 같은 모양을 유지한다.
그래서일까.
지친 저녁,
사람들은 편의점 앞에서 잠시 걸음을 멈춘다.
불빛을 바라보다가,
스스로도 모르게
그 안으로 들어선다.
마치 “여기서 잠깐 쉬었다 가도 괜찮아요”라고
불빛이 먼저 말을 걸어오는 것처럼.
어떤 날은
특별한 물건을 사려던 것도 아닌데
그저 몸이 편의점 문 쪽으로 향한다.
그 안에는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작은 안식이 있다.
가족도, 친구도, 직장도 아닌
완전히 혼자만의 공간이지만
그 고독은 이상하게도 따뜻하다.
바쁜 직장인은
편의점 커피머신 앞에서
뜨거운 물이 내려오는 걸 멍하니 바라본다.
손에는 커피값이 담긴 작은 영수증이 들려 있다.
그 종이는 너무 가벼워서
낮 동안의 무거움을 잠시 잊게 한다.
컵에 커피가 채워지는 동안
직장인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숙인다.
생각을 비우는 것도 아니고
생각을 지속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잠시, ‘멈추어 있다.’
한쪽에는
오래된 점퍼를 입은 청년이
컵라면 앞에서 한참을 서 있다.
고르고 또 골라
결국은 가장 익숙한 맛을 집어 들고
뜨거운 물을 붓는다.
김이 피어오르며
안경알을 잠시 뿌옇게 만들자
청년은 그 김을 바라보며
작게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에는
작지만 분명한 위로가 깃들어 있다.
누가 주는 것도 아니고
스스로 챙겨주는 작은 위로다.
편의점 구석 매대 앞에서는
중년 부부가 조용히 서 있다.
주머니에서 동전을 꺼내면서도
얼굴에는 서두름이 없다.
빵 두 개와 우유 하나를 사서
어두운 집으로 돌아가려는 듯하다.
그들의 움직임은 묘하게 닮아 있다.
하루를 다르게 살아도
저녁이 되면
조용히 같은 자리로 돌아오는 두 사람.
편의점 불빛 아래에서
그들의 그림자가 길게 겹쳐진다.
밖으로 나오면
공기의 온도가 확연히 달라진다.
편의점 안의 밝음은
밖에서 보기보다 훨씬 따뜻하다.
문을 나서는 순간
사람들은 무언가를 얻은 듯
걸음이 조금 가벼워진다.
물 한 병,
과자 한 봉지,
따끈한 호빵 하나일 때도 있다.
하지만 그 물건들은 종종
물건 이상의 의미를 품고 있다.
편의점 불빛은
사람들에게 말없이 말한다.
“오늘도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했다.”
“당신의 마음은 조금 쉬어가도 괜찮다.”
“그리고, 다시 갈 힘이 생길 때까지
여기 불빛 아래 머물러도 좋다.”
사람들은 그 말을 들은 듯
불빛을 등지고 떠난다.
하지만 떠나는 등 뒤에는
편의점의 하얀빛이 조용히 따라오듯
온기가 남는다.
가끔 삶이 너무 차갑게 느껴지는 날이면
이 작은 불빛 하나만으로도
사람은 저녁을 견딜 수 있다.
이 작은 공간은
거창한 위로를 주지 않는다.
그러나 ‘잠시 멈춤’이라는
보이지 않는 선물을 건네준다.
편의점 불빛 아래에서 멈춘 발걸음.
그 발걸음은
삶의 기척을 다시 느끼게 하고
누군가의 마음을
조용히 데운다.
그리고 그 온기는
다음 순간을 살아가게 하는
아주 작은 불씨가 된다.
ㅡ청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