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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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도보다 결과가 오래 남는 이유
사람은 마음으로 시작했다고 믿는다.
선의였고, 배려였고, 나름의 진심이었다고 말한다. 그래서 일이 어긋났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말은 늘 같다.
“그럴 생각은 아니었다.”
의도는 출발점에 있다.
그러나 삶은 출발점보다 도착점에서 기억된다.
말을 건넨 순간의 마음보다, 그 말이 남긴 흔적이 더 오래 머문다. 행동의 동기보다, 그 행동 이후에 생긴 변화가 더 선명하게 남는다. 그래서 사람 사이에서는 종종 이런 일이 벌어진다. 나는 좋은 마음이었는데, 관계는 멀어진다.
이때 우리는 억울함을 느낀다.
의도가 무시당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그러나 의도가 억울해지는 순간, 결과는 이미 자리를 잡았다. 결과는 설명을 듣지 않는다. 그저 남아 있을 뿐이다. 남아 있는 것은 언제나 말보다 강하다.
성숙은 이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서 시작된다.
의도가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 아니다. 다만 의도는 나를 설명하는 재료일 뿐, 나를 대신해 책임을 지지는 않는다. 책임은 언제나 결과의 몫이다. 그 책임을 회피하지 않을 때, 인간은 비로소 자신의 삶에 닿는다.
우리는 흔히 결과를 오해의 산물로 돌린다.
모든 결과가 오해는 아니다. 때로는 내가 익숙하게 반복해 온 태도가, 말버릇이, 무심한 선택이 쌓여 만들어진 필연이다. 의도가 아무리 선해도, 그 반복이 누군가에게는 상처의 패턴으로 남을 수 있다.
여기서 필요한 것은 변명이 아니라 조정이다.
의도를 증명하려 애쓰기보다, 결과를 기준으로 자신을 다시 세우는 일.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라고 말하기보다, “그렇게 보였다면 바꿔야 한다”라고 인정하는 태도. 이 태도는 나를 부정하는 일이 아니라, 나를 현재로 데려오는 일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순간부터 관계는 회복될 가능성을 얻는다.
의도를 주장하는 사람은 설득하려 들고, 결과를 인정하는 사람은 책임을 지려 한다. 사람들은 설득보다 책임에 더 쉽게 마음을 연다. 말보다 행동이 신뢰를 회복시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삶은 의도로 평가되지 않는다.
삶은 남겨진 자리로 평가된다.
내가 떠난 뒤 남은 분위기, 말이 끝난 뒤 남은 침묵, 행동 이후에 생긴 변화. 그 모든 것이 나의 현재를 말해 준다.
오늘,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지금 어떤 의도로 살고 있는가가 아니라,
나는 지금 어떤 결과로 남고 있는가를.
그 질문을 정면으로 바라볼 수 있을 때,
의도는 비로소 삶을 향해 나아간다.
결과를 감당하는 자리에서, 진짜 변화는 시작된다.
ㅡ청람 김왕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