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
비워지기 위해 오르는 곳
정상은
하늘이 잠시
몸을 내려놓는 접시
오르며
숨은 낡은 종이처럼
구겨지고
생각은 바람에 씻겨
점점 얇아진다
도착하면
산은 박수를 치지 않는다
빛 한 줄 건네며
이제는
내려갈 차례라고
말없이 적어 둔다
뒤에 오는 사람들의
기척은
아직 멀지만
이미
시간이 나를 지나간다
나는
정상을 갖지 못하고
다만
잠시 이름을 맡긴다
그래서
눈으로만 앉아 있다
오래 볼수록
머물 수 없음을
더 잘 알게 되기에
내려오는 길
바람은
아무것도 묻지 않고
내 어깨에서
한 시절을
조용히 걷어 간다
정상은
머무는 자리 아니라
사람을
가볍게 만드는 곳
하여
또 오른다
비워지기 위해
ㅡ청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