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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저 Jul 05. 2023

여름 안에서

무더운 계절이 다시 한번 찾아왔다. 검은 머리 위에는 햇살이 강하게 내리쬐고, 숨이 막힐 듯한 바람은 온몸을 에워 감싼다. 초여름의 싱싱함과 파릇함은 이미 지나가고, 열기와 싸워내야만 하는 이 계절은 참으로 사람을 지치게 한다. 이런 계절이 오면 우리는 늘 시원한 것을 찾게 된다. 냉장고에서 방금 꺼낸 얼음장 같은 수박, 입에 닿으면 사르르 녹아버리는 아이스크림, 그리고 에어컨 아래 엄마의 무릎을 베고 누워있는 아이.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한강을 찾는 사람들을 TV속 모니터로 바라보며, 얼음을 와그작와그작 씹는다.


내가 살던 곳은 일 년 내내 여름으로 가득 찬 곳이었다. 한국에서 흔히 느낄 수 있는 사계절은 찾아볼 수 없었다. 아무리 추워도 20도 정도의 선선한 날씨가 전부였기에, 한국에서 처음 겨울을 나는 나에게 영하라는 날씨는 너무나 혹독했다. 한여름에는 50도까지 오르는 곳에서, 나는 나만의 여름을 보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20년을 무더운 나라에서 살다 보니 한국의 더위는 정말 아무렇지도 않아서 나는 에어컨을 켜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나는 하루의 반 이상을 수영장에서 보냈다. 내가 살던 곳 1층에는 세로로 아주 긴 수영장이 있었다. 세로폭만 해도 800m가 넘을 정도였으니 한국의 웬만한 호텔 수영장들보다도 더 컸으리라. 이 수영장은 호텔 투숙객과 아파트 입주민들을 위해 있는 시설이었는데, 가끔 주말 밤이 되면 이 수영장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임시로 지어, 패션쇼를 하는 등 여러 행사의 장소가 되기도 했다. 나는 아침에 눈을 뜨면 아침도 먹지 않은 채 수영복을 입고 1층 수영장으로 달려 내려갔다. 이따금씩 같은 아파트에 사는 친구들에게 전화를 돌리며 같이 수영을 하자고 이야기했기에, 수영장에 늘 친구들이 나와 있었다. 나는 그렇게 여름 내내 물놀이를 했고, 가정부 아주머니가 종종 들고 내려오는 간식을 물속에서 받아먹었다. 늦은 오후가 되어서야 나는 수영장에서 나왔는데, 이 마저도 비가 오거나, 외식 약속이 있는 등 중요한 행사가 있어야 지만 가능했다.


가끔은 엄마와 함께 밤에 수영을 나가기도 했다. 우리 엄마는 더운 나라에서 오래 살았지만, 더위에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았다. 그래서 태양볕이 뜨거운 낮보다는 그나마 선선한 밤에 수영하는 것을 선호했다. 나는 엄마의 등에 올라타 마치 돌고래를 타고 있는 물의 요정처럼 엄마가 수영하는 것을 온몸으로 즐겼다. 한 번은 너무 늦게까지 수영장에서 놀아, 물속에서 깜빡 잠이 든 적도 있었다.


우리 호텔을 이용하는 투숙객 중에는 종종 한국인들도 있었다. 특히 신혼여행을 즐기러 온 젊은 부부가 많았는데, 당시 너무 어렸던 나는 눈치가 없어 그들만의 시간을 주지 못했다. 처음에는 그들이 먼저 다가와 ‘부모님은 어디 계시니’를 물을 때, 나는 ‘부모님은 집에 있고, 나는 여기 살고 있다’라는 대답을 하면 그때부터 그들은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이것저것 물어보았다. 어떻게 여기 살게 되었고, 어떤 학교를 다니고 있고, 한국어는 어떻게 이렇게 잘하는지를 말이다. 처음에는 분명 그들의 질문으로 시작된 대화였지만, 그들을 놔주지 않는 것은 결국 나였다. “이제 우리끼리 놀게~ 너도 저쪽 가서 놀아~”라는 말을 들을 때까지 나는 기어코 대화를 이어 갔다.


어렸을 때부터 물놀이를 했던 나는, 초등학교에 들어갈 때쯤 정식으로 수영을 배우게 되었다. 오빠와 나는 함께 수영을 배웠는데, 우리 수영 선생님은 TV에도 종종 나오던 전 국가대표 선수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부모님이 어떻게 그런 사람을 수영 선생님으로 섭외를 했나 싶지만, 그 시절에 영어를 하는 운동선수는 흔치 않았을 것이다.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들은 주로 국제무대에서 활동을 해 본 사람들이었을 것이었기에, 그런 사람이 내 수영선생이 되지 않았다 싶다. 그렇게 나는 주말마다 수영을 배웠고, 나중에는 꽤 잘하게 되어, 중학생 때는 학교 수영선수 제의를 받기도 했다.


이렇게 나에게 당연한 일상이었던 것이, 한국에 와서는 참으로 귀한 경험이 되어버렸다. 나는 수영을 할 줄 모르는 사람을 한국에 와서 처음 만났고 (우리 학교는 체육수업으로 수영을 한다), 수영장이 아파트마다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처음 알았다. 내가 그토록 자주 가던 호텔 야외 수영장은 더더욱 귀했고, 수영 강습을 듣는 것 마저도 쉽지 않았다. 한국인들은 그래서 바다를 더 사랑하는 것일까, 아니면 바다가 있기에 수영장이 필요 없는 것일까. 아직도 나의 행복은 야외 수영장 파라솔 아래에서 망고주스를 마시며 책을 읽는 것에 있다. 이 행복만 있다면, 나는 언제든지 그때의 나로 돌아갈 수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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