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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나나스플릿 Nov 24. 2023

온전한 사랑은 그런 것이었을까?

문득 잡념에 사로잡힐 때가 있다. 맥락 없이 어떤 생각이 훅 들어오는 그런 것. 가끔 먼저 떠나간 나의 아버지와 함께 했던 순간을 기억한다. 그는 바보처럼 착하지만 때로는 아이처럼 성을 내기도 하는 순수한 사람이었다. 돌려 말할 줄 아는 것도 삶의 큰 지혜였을 텐데 그에게는 허례허식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가끔 거리에서 떼를 쓰는 아이들을 본다. 그리고 시골을 갈 때마다 만나게 되는 시고르잡종과의 교감을 통해 온전한 따스함을 느끼면서 동시에 제어되지 않는 상황에 대한 분노를 함께 느낀다. 왜 어린것들은 도대체 말길을 알아먹지 못하는 것인가.



어떤 부모는 화를 낸다. 떼를 쓰는 아이를 어르기보다는 강제로 부모의 판단을 앞세워 밀고 나간다. 때로는 이런 것이 분명 필요할 때가 있다고 생각한다. 아이는 아직 무엇이 옳고 그런지 잘 모르니까. 시고르잡종 새끼 역시 마찬가지다. 훈육이 필요하다는 것은 분명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기억을 더듬어보면 분명 훈육은 있었지만 강제되는 상황은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분명 그런 것이 존재했지만, 대부분의 경우 나를 기다려주고 참아준 우리 부모에 대한 기억이 더 크다. 왜 그것이 안 되는 것인지 스스로 깨닫게 했던 것 같다.



이러한 교육의 과정은 나를 일찍부터 독립적인 인간으로 자라게 한 것 같다. 의존하기보다는 스스로 판단하고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 더 익숙하고 더 편하다. 반대로 끌려다는 것, 통제되지 않는 것에 어려움을 많이 느낀다. 



내가 만약 아이를 낳게 된다면 나도 그들처럼 인내해 줄 수 있을까. 나도 아버지처럼 그렇게 내 아이를 말없이 기다려줄 수 있을까. 그가 나와의 나이차가 좀 적었더라면, 그리고 내가 이런 것을 다 깨달을 때까지 더 살았더라면 나는 그와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지 않았을까. 내가 하늘로 돌아가면 그를 안아줄 것이다.



친구들과 놀러 간 수영장에 아버지는 종종 몰래 따라오셨다. 아들과 얼마나 놀고 싶었을까. 나는 친구들에게 내가 아버지를 데리고 왔다는 것을 들키고 싶지 않았다. 그는 멀리서 나를 바라보며 즐거워했다. 적어도 내 기억에는 아버지의 웃는 얼굴이 남아있다. 결국에는 친구들에게 들켜 그는 떡볶이와 어묵을 사줬다. 왠지 모르겠는데 나는 그게 참 아까웠다. 아버지를 창피하게 생각하면서도 나는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싶었던 것 같다. 자기를 창피해하는 아이마저도 깊이 사랑했던 그가 바로 나의 아버지였다.



이런 생각이 든다는 것은 가끔 내가 나이가 들어감을 느끼게 한다. 내 아버지의 생각을 비로소 깨닫기 시작하는 나이가 되었다. 존경하는 나의 아버지, 그리고 어머니. 세상의 모든 부모는 훌륭하고 또 거룩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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