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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나나스플릿 Dec 05. 2023

나는 왜 가족을 꿈꾸는가?

사람을 만나는 것을 그렇게 좋아지도 않으면서 나는 늘 가족으로 사는 꿈을 꾼다. 누구나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기 원한다. 그 구성원 안에서 평안함과 존재감을 느끼기 때문이겠지. 한 번의 배신감을 처절하게 느꼈음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나는 가족을 꿈꾼다.



이루어지지 않는 사랑이 있다. 적어도 내 경우에는 이루어지지 않는 사랑이 많았다. 어쩌면 이루어지지 않을 불안한 사람들에 끌린 것은 아닐까 싶다. 내 곁에 항상 존재할 수 없는 사람을 난 찾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내게 가족이란 옆에 붙어 있는 존재가 아닌 적당한 거리감 속에 존재하는 그 무엇이었을지도 모른다.



나의 아버지는 자식의 교육이 우선이었다. 어떤 부모도 다 그런 것이겠지. 서울에 있어야 그래도 사람구실을 한다고 생각하셨던 것 같다. 역마살을 타고나서인지 그는 지방으로 발령되는 일이 많았다. 대전, 부여, 대구 등 크고 작은 지방을 몇 년에 한 번씩 돌아가며 관리했다.



그를 따라 돌아다니는 것도 사실 나쁘지는 않았을 것이다. 가족으로 함께 뭉쳐있는 것이 그에게나 어린 우리에게나 충분히 안정감을 주었을 것이다. 나와 동생에게는 아버지라는 존재는 주말에만 만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매일 통화를 했지만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과 수화기 너머 들려오는 목소리는 완전히 다른 것이다.



그렇게 나는 가족이라는 개념을 적절한 거리 감 속에서 배워가고 있었다. 함께 하는 것도 좋지만 떨어져 있는 것도 어색하거나 이상한 일은 아니다. 어쩌면 어느 정도의 거리감이 나를 더 익숙하고 편안하게 만들었던 것 같다. 지금의 내가 사람을 대할 때마다 적절한 거리감을 선호하는 것도 아마 이때 시작된 관성이 아닐까 싶다.



다시 새로운 가족을 계획하고 있었을 때 그녀는 나를 저버렸다. 그녀 스스로 갖은 어릴 적 상처는 누군가 자신을 사랑한다는 사실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나의 사랑의 그녀의 아픔을 건드려버렸다. 그럼에도 나는 적절한 거리감에서 쌓아온 우리의 우정과 사랑을 매우 좋게 생각하고 있었다. 잘 만나지도 못했지만 우리는 그 시공간의 갭 안에서 너무나도 행복했다.



나를 거부했던 그녀를 찾아갈 계획을 세웠다. 자신도 어떻게 할 수 없어 미안하다는 그녀에게 나는 바랄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다. 과거에 사로잡힌 그녀는 그녀 스스로를 언제 놓아줄지 모를 일이고. 그전에 내게 새로운 사람이 나타날 수도 있는 일이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14시간을 비행해야 비로소 만날 수 있는 그녀에게 가기로 했다. 마지막 만남이 될 수도 있겠지만. 후회하고 싶지 않아서 그런 결심을 했다. 중요한 것은 그녀가 보고 싶었다.



아마 그녀를 완벽한 가족 구성원으로 인지했던 것 같다. 적절한 거리감 안에서 사랑했으니까. 만나지 못해도 함께 존재하는 그 자체에서 나는 가족의 안정감을 느껴왔다. 만남보다 떨어짐에서의 기쁨이 더 클 수도 있구나. 삶을 부대끼며 영위하는 것이 나는 아직 어색한 존재일 뿐이다.



인간의 심리를 더 파고들면서 삶의 방식이 한 인간에 미치는 영향을 점점 더 실감한다. 의도하지 않았던 그 상황들로 인해 한 인간의 궤적이 소용돌이치기도, 고요해지기도 한다. 스스로 왜 그런 상황에서 평안함을 느끼는지 혹은 고통을 느끼는지 잘 인지하지 못한다.



가족을 구성해 가는 나의 방법이 과거의 어느 지점과 연결됨을 깨달았다. 새롭게 머리가 열린 기분이다. 이것을 그대로 잡고 살아가거나, 끊어내고 살아갈 수도 있겠지. 끊어내 버리는 것이 비로소 나답게 살아가는 시작일 것이다. 가족을 이루는 방법을 새롭게 정의할 때가 다가올 것 같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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