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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나나스플릿 Dec 12. 2023

첫사랑 같다. 첫 전시라는 것은

선배의 전시에 다녀왔다. 그의 첫 전시다. 나의 보스이자, 인생의 코치이자, 친구인 그다. 목공을 소재로 한 그의 작업은 나름 괜찮았다. 소품을 모아 작업을 하고 작품화했다. 여러 가지 공부하는 셈 치고 했다는 그의 첫 전시는 그럴싸했다. 그의 전시를 돌아보면서 나는 나의 첫 전시를 되짚어 보았다.



첫 전시는 첫사랑과 같다. 가슴 설레게 준비해서 사람들을 맞이하고 뭔가 한 것도 없이 아쉽게 끝나버린다. 그게 진짜 사랑이었는지 아닌지 갈피를 못 잡을 딱 그 정도로 순식간애다. 그런데 그 사랑의 여운은 아마 평생가지 않을까. 무엇이 사랑인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모른 채 내 마음을 다 꺼낸 그 순간. 마치 첫 전시를 준비하면서 느꼈던 그 기분과 같았을 것이다.



작업에서 손을 뗀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공부'를 하고 있는 것은 아마도 그 '무엇'을 스스로 정리하지 못했기 때문이겠다. 예술이라는 것은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다양한 매체를 통해 꺼내 보여주는 과정이다. 소위 아티스트라고 불리는 사람들의 큰  실수는 바로 표현하는 그 무엇이 원천적으로 부재하다는 것이다. 늘 그려왔고, 만들어왔기에 그냥 생산해 내는 것은 지속성 있는 예술, 그리고 예술가를 만들어내지 못한다.



그럴싸한 상품일 뿐 예술로서 영원을 담보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그렇기에 많은 예술의 결과물이 10년을 넘지 못하고 반복적으로 사장되고 잊혀 가는 것일지 모른다. 예술을 영속하게 만드는 길은 사랑과 같다. 계속 사랑하고 부딪히고 무너져가면서 나를 발견해 가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내가 진짜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때가 오는 것처럼, 나의 표현이 그 무엇을 말하는지 깨닫는 순간이 있을 것이다. 비로소 '마스터'가 되어가는 것이다.



그런데 사랑에 있어서나, 예술에 있어서 이는 인간에게는 쉽지 않은 과제이다. 답을 구한다고 바로 나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평생을 거쳐 도전해야 하는 과제임을 첫사랑에서 혹은 첫 전시에서 미처 깨닫지 못했을 뿐이다. 첫 전시의 기쁨에 도취되지 말아야 하는 이유일 것이다. 첫사랑의 아쉬움에서 벗어나야 비로소 한 인간으로 성숙할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나는 매일 부딪히고 무너져갔다. 스스로를 만나기 위해 길고도 긴 구멍을 뚫어 파고 또 파 들어간다. 지구의 핵에 도달하는 것이 종착점이 아니다. 지구의 그 반대편으로 뚫고 나오는 것이 어쩌면 마지막이 될 것이다. 긴 어둠의 터널을 묵묵히 견디며 조금씩 앞으로 전진하면서 사리 같은 나의 존재감의 한 덩어리를 비로소 토해낼 수 있을 것이다. 



여전히 포기하지 않는 그 정신력이 중요하다. 포기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나를 칭찬해주고 싶다. 나의 사랑도 그리고 나의 예술도 아직 진행 중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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