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이 되면 남의 말 듣기가 어렵고 짜증 난다는 게 심각한 문제가 된다.
부부 상담을 하면 먼저 각자 따로 만나서 이야기를 들어보고, 최종적으로 부부가 한자리에서 같이 상담하게 된다. 그런데 부부가 한자리에 앉으면, 상대방의 말을 듣지 않고 자기 얘기만 하고 특히 중간에 상대방의 말을 끊고 말꼬리를 물고 늘어진다. 결국, 부부 싸움을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상대에 대한 비난으로 끝이 나기 쉽다. 대화를 통해 서로의 오해를 푸는 것이 아니라, 서로에게 상처만 입히고 감정의 골이 더욱 깊어질 수 있다.
부부 싸움의 가장 큰 원인은 대부분 공감의 문제다. 상대방의 말을 듣지 않고,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하기 않고, 자기 말대로 배우자가 따라야 한다는 자기 주장이 문제다. 그런데 더욱 심각한 문제는 중년기에 들어서면 더욱 공감 능력을 상실한다는 것이다.
공감( Empathy) ; 대상을 알고 이해하거나, 대상이 느끼는 상황 또는 기분을 비슷하게 경험하는 심적 현상을 말한다. 1909년 미국의 심리학자 에드워드 티치너(EdwardB.Titchener)가 도입한 용어로, ‘감정이입’을 뜻하는 독일어'Einfühlung'의 번역어이다 (출처, 두산백과)
물론 중년기에 들어서도 남의 말을 잘 들어주는 특별한 남성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 중년기에 들어서면 자기 주장이 강해지면서 자기 말만 하고, 남의 말은 잘 안 듣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남성들이 자기주장을 펴는 이유는 내 경험과 내 지식으로 봤을 때 내 생각이 옳다는 것이다. 특히 임원이나 사장을 한 친구에게 두드러진 특징은 말이 많다는 것이다. 회사에서 처럼 이야기와 화제를 주도해야 하고, 때로는 남의 생활에 대해서도 간섭을 한다. 그 말을 길게 듣다 보면 피곤해진다.
대부분 중년기에는 자기 세계가 확립되어 남의 견해를 잘 경청하지 않는다. 그러나 세상에는 절대 진리란 없다. 내 생활 반경과 지식, 경험으로 형성된 주장일 뿐인데, 끝까지 자기가 옳다고 주장하는 것을 보면 딱하다.
예를 들면 과거 직장 상사를 만나면 과거 20년쯤 직장에서 상사로 만날 때처럼 95% 자기 이야기만 하고, 특히 훈계조로 타이르는 분이 많다. 그러나 후배들도 이제는 50~60대인데 그렇게 훈계조로 가르치는 것은 아니다. 그런 선배는 다시는 만나기 싫다. 후배들이 약속을 피하면 내가 말이 많은지 반성해봐야 한다.
몇 해 전 고등학교 동창회에 나갔을 때의 일이다. 대략 30명 정도가 모여서 술을 마시다가 중간에 잠깐 화장실에 나갔다 들어왔다. 기가 찬 것은 30명 중에서 20명이 떠들고 열 명만 가만히 있었다. 30명이 일대일로 대화한다고 하더라도 15명은 들어주어야 하는데, 20명이 일방적으로 자기 얘기만 하고 있다.
공감 능력이 부족한 원인은 과거 우리나라 군대의 명령 문화에서 비롯된 면이 많다. 과거 군대에서 상관에게 의견을 제시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까라면 무조건 깐다는 문화였다. 그리고 과거 직장 문화도 전형적인 상명하복 문화였다.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과거에는 실무자가 상사에게 다른 의견을 제시한다는 것은 거의 있기 어려웠다. 시키는 대로 해야 했다.
나이가 들어 중년이 되고 보니 사회 분위기가 많이 바뀌어서 우리나라도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 대열로 들어섰다. 선진국에 들어서면서 권위적인 문화가 청산이 되고 수평 문화가 형성된다. 그런데 중년층에게는 이 수평적인 문화가 낯설다. 더욱 기가 찬 것은 내가 젊을 때는 노인을 공경하고 노인을 우대했는데, 이제는 ageism이라고 노인을 우대하기는커녕 혐오하는 현상도 있다.
또한 중년이 공감 능력이 부족한 이유는 부모님으로부터 공감받아본 경험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부모님은 일방적으로 자녀에게 훈계하고, 아이들은 따라야 했다. 가정에서도 존중받아 본 일이 드물고, 공감을 받아본 일도 드물다. 그런데 중년의 나이에 들어서서 보니 아내와 자녀들의 입장은 바뀌었다. 아내와 자녀들은 수평적인 대화를 원한다. 부모의 일방적인 지시는 이제 통하지 않는다.
서글프지만, 이제는 중년에 들어서서 지혜롭게 잘 살려면 타인의 견해를 공감해야 하는 시대가 왔다.
그러나 공감 능력을 키운다는 것은 쉬운 것이 아니다.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 본다는 것은 어려운 과제다.
그래서 공감을 쉽게 시작할 수 있는 것은 부부가 논쟁이 벌어질 때 스톱워치를 놓고 5분씩 교대로 이야기하는 것이다.
상대 이야기를 일단 5분간 들어보는 것이다. 5분간 들어보면 상대방이 자기 의견을 충분히 이야기했다고 생각하고, 타인에게 발언 기회를 줄 수 있는 최소한의 시간이다.
둘째는 문제를 해결해주려 하지 말고 아내의 심정을 이해하며 "고생했어, 힘들었겠네" 격려해 주는 것이다.
여성들은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 남편이 문제를 해결해 주기를 원하는 것보다는 우선 힘든 내 마음을 들어주기를 원한다. 그런데 남편들은 먼저 문제를 해결해주고자 한다. 그래서 단답식으로 질문을 하고 해결책을 간단히 제시한다. 그런데 여성은 내가 이렇게 힘들고 고생하고 있는 마음을 알아달라는 게 우선이다. 아내가 말할 때 문제를 해결해주려고 하지 말고, 아내의 이야기를 일단 들어주면 대부분 아내의 불만은 해소된다.
셋째는 이제는 가정에서도 수평적 관계라는 것을 인정하고 실천해야 가정의 평화가 온다. 사소한 집안일도 이제는 지시가 아니라 부부가 서로 이야기하며 협의를 통해 결정하면 아내는 큰 불만이 없어진다. 과거 아버지가 가부장적으로 아내와 자녀에게 지시하던 시대는 끝났다.
요즘 시대의 현인은 지혜롭게 문제를 해결해 주는 사람이 아니다.
현인은 아픈 사람의 마음을 어루만져주며, 따뜻하게 위로해 주는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