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입견은 통계다
[2017년 남아공 파견 시절에 적었던 일기임]
나의 인간관은 썩었다. 나는 편협한 나만의 경험과 각종 편견에 사로잡혀 있는 모자란 사람이다. 내가 나의 가치관에 대해 할 수 있는 말은 '절대 바람직하지 않다', 그렇지만 '이게 잘못되었다는 정도는 안다' 정도다. 직설적으로 말하면 나는 1. 가부장적인 발언에 경기를 일으키며, 2. 수동적이고 연약한(척하는) 여성상을 대놓고 싫어한다. 3. 대다수의 백인을 호의적으로 생각하고, 흑인과 인도인, 아랍인에게는 방어막부터 친다.
그래, 균형 잡히지 않은 사고방식이고, 돌 처맞을 생각이라는 것도 안다. 내 개인적이고 제한된 경험들이 성평등, 인간평등에 대한 나의 인식을 점점 더 극단적으로 만들어 왔을 것이다. 여태까지의 경험으로부터 귀납적으로 도출한 나만의 편견은 "여성 인권이 낮은 나라 출신 남성은 10분 넘게 얘기해 볼 것도 없이 거의 다 구리다"는 것. 예외적 소수가 분명 존재하겠지만 나는 아직 만나지 못했다. 길게는 몇 년에서 짧게는 몇 분에 이르기까지, 그동안 지나친 수많은 남성들과의 대화에서 얻은 결론이다.
여성 인권이 낮은 나라에서 온 남성은 대부분 가부장적인 발언을 아무렇지도 않게 했고,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여성을 동등한 인격체로 인식한다면 절대 내뱉을 수 없는 몰지각한 말과 행동을 보였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은 대체로 어두운 피부를 가진 인도계, 아랍계, 아프리카계 흑인이었다.
여성이다 보니, 특히 혼자 외국 돌아다니는 동양인 여성으로 살다 보니 혼자 조용히 걷기만 해도 여기저기서 온갖 왈왈 소리를 많이 듣는다. 동양인 여성이 신체적으로 왜소하기도 하지만, 비단 신체적인 것뿐이 아닌 것 같다. 동양 여성에 대한 잘못된 인식들이 분명히 기저에 깔려 있다. 그저 조용히 미소를 지으며 남성의 뜻에 고분고분 따르고, 좀 험한 소리를 들어도 고개를 숙이고 부끄러워할 뿐인 수줍은 동양 여자. 마침 며칠 전에 직장에서 열 살이나 넘게 어린것들한테 더러운 소리를 듣고 와서 분노 게이지가 올라, 오늘쯤에는 드디어 그동안 모아 온 왈왈 소리 종합 선물세트를 풀어보기로 했다.
에든버러의 레코드 가게에서 본 모로코 새끼.
그는 날 보자마자 "나는 너처럼 아시아에서 온 여성들을 좋아해. 오늘 밤 11시에 너의 숙소로 가도 되겠니? 너에게 키스하고 싶어." 온 우주에서 어이가 증발해 버리는 것 같았지만 꾹 참고 "난 모르는 사람에게 키스받고 싶지 않아." 그랬더니 세상에, 거짓말하지 말라며, 너도 키스 좋아하지 않니, 너 이성애자 맞니? 하는 것이다. "넌 정말 성급한 사람이구나." 하고 돌아 나오긴 했지만 속으로는 '너 같은 놈들 볼 때마다 나도 동성애자였음 좋겠다'고 씨부렸다.
런던의 Co-op 슈퍼마켓 앞에서 마주친 방글라데시 병신.
이 놈은 진짜 병신이다. 거짓말 하나 안 보태고 날 보자마자, "와 너 정말 멋지구나, 나랑 저 아래 클럽에 가서 놀지 않을래? 여러 사람들이 모여서 그룹 섹스를 즐기는 곳이야." 하길래 "I'm not interested in that." 하고 돌아서서 갈 길을 갔다. 무슨 생각을 가지고 살아야만 처음 만난 여자한테 '저 아래 가서 그룹 섹스를 즐기자'는 말이 5초 만에 나오는 걸까?
한국에서 연수하다 만난 짐바xx 놈.
이 놈이랑은 꽤 많은 대화를 했는데, 기억에 남는 왈왈 소리를 몇 가지 꼽자면 이렇다. 내가 그 당시까지는 요리를 전혀 못했다. 난 요리 하나도 못해. 그랬더니 '나는 저녁 즈음에 아버지와 아이들이 TV 앞에서 스포츠 경기를 보는 동안 어머니가 저녁을 준비하는 모습을 이상적인 가정으로 그려." 저기요, 미스터 올드패션드? 나도 럭비 경기 좋아해. 요리는 가족 중에서 잘하는 사람이 하면 되는 거고, 그게 왜 어머니여야만 하지? 미안하지만 난 요리보다 설거지와 청소를 잘해.
또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시위를 한참 하던 시기였다. 어느 날 밤에 뜬금없이 연락해서는, 박 대통령 일로 한국이 참 안 됐어. 아마 한동안 한국 사회에서 여성 대통령을 보기가 힘들 것 같아. 하는 거였다. 와, 미스터 불쉿. 그게 그 사람이 여성 대통령이라 생긴 문제라고 생각해? 남의 나라 정치에 네 의견을 밝히고 싶으면 공부나 제대로 하고 의견을 말해. 그걸 여성 문제라고 생각하다니 정말 너도 참 안 됐다.
쓰다 보니 하나 더 생각났다. 자기는 한국 여성과 결혼하고 싶단다. 자기 나라 여성들은 한국 여성들처럼 열심히 살지 않는다고. 그래서 그게 무슨 뜻이지? 하고 물었더니, 모국의 많은 여성들이 대학에 가기보단 그저 좋은 집에 시집가기를 원한다고. 드라마를 너무 많이 봐서 신데렐라 같은 삶이나 꿈꾼다고. 그렇지만 한국 여성들은 대부분 대학에 가고 취업하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이 참 좋아 보인단다.(병신 맞구나) 야, 이 모자란 놈아. 너네 나라 여자들이 공부하기 싫어서 대학에 안 가겠냐? 대학에 가봤자 앞으로 그려지는 삶이 뻔한데 단순히 공부하기 싫어서, 신데렐라를 꿈꿔서 대학 안 가고 취업 안 한다고 생각해? 그딴 생각을 가진 네놈과 결혼할 여자가 가엽고 측은하고 불쌍하다.
쓰다 보니 줄줄이 생각나는데 다 적다간 밤새게 생겼다. 내일 출근을 위해 오늘은 여기까지 쓰고, 2탄부터는 성평등 의식에 더해서 일반적인 인간관까지 아우르는 다국적 왈왈 소리 목록을 작성해야겠다. 적다 보니 또 화나네. 오늘밤도 너희들의 발기부전을 기도해.
* 그래서, 7년이나 지난 지금은 인간관이 좀 성숙해졌느냐 하면? 아니다. 더 늘었다. 이젠 모든 사람이 다 싫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