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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윤희 Dec 12. 2023

크림아, 안녕!

2019. 06. 05.

슬픈 우리 아들. 아침에 등교하면서도 오늘의 오후를 예상했다.

탈피부전증을 앓던 크림이가 어제부터 숨 쉬는 것이 힘들어 보였다. 그래도 잘 먹고 잘 자고 우리가 오면 창문에 달라붙고 배고프면 달려오던 녀석이었는데, 탈피부전이 와도 잘 살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는데. 갑자기 숨도 못 쉬고 축 쳐지더니 아침나절에 엎드려 꼼짝없이 가뿐 숨만 쉬고 있었다. 퇴근하면 우리 곁을 떠날 것 같아 미안하다고 인사하고 갔는데 돌아오니 얌전히 엎드려 잠들어있다.

학교에서 내내 슬펐다는 아들은 보자마자 제 방에 들어가 엉엉 울고 있다.

다시는 동물을 사지 않겠다고 다짐을 한다.

미안하고 미안한 크림아.
멀리 데리고 와서 잘 키워주지 못해서 미안하다.
아무도 없이 무지개다리를 건너게 해서 미안하다.

항상 기억하고 너의 예뻤던 날들을 잊지 않을게. 미안해.

우리 가족에게 행복을 줬던 그 시간 잊지 않을게.





내가 다시 엄마가 된다면


아들이 유튜브를 보기 시작하면서 제일 집중해서 보던 것이 집돌이 총각이다. 파충류를 키우는 한 총각의 이야기인데 매일 이 영상을 최애로 여겼던 아들은 어느 날 자기도 도마뱀을 키워보겠다고 했다. 생명을 들이는 것이 늘 신중했던 우리는 엄마 아빠는 동물을 키우는 것은 반대다, 정 원한다면 네 용돈으로 사는 것은 허락한다고 말했다. 내 아들이 참 집요한 구석이 있음을 알면서 우리는 섣불리 그렇게 말을 했을까. 원래부터 돈을 잘 쓰지 않았던 아들은 생기는 용돈을 모으기 시작했다. 그러다 용돈의 성수기인 추석이 다가왔으니. 친척들로부터 받은 용돈을 모두 쓸어 모아 도마뱀을 사겠다고 했고 말한 것은 지켜야 부모의 권위가 선다고 생각했던 우리는 울며 겨자 먹기로 허락하고 말았다. 


열심히 검색하던 아들은 대전에 있는 한 파충류 샵을 꼭 가야겠다고 했다. 그곳에 가면 자신이 원하는 비어디 드래곤이 많이 있고 꼭 두 마리를 사야겠다고 했다. 아들의 굳은 의지를 어찌하지 못해 우리는 비어디를 입양하러 거제에서 대전까지 길을 떠났다. 귀엽게 생긴 아기 비어디 두 마리를 데려온 후로 아들만큼이나 온 가족이 비어디에 빠져버렸다. 그렇게 귀하게 키우던 녀석이 탈피부전으로 세상을 떠났을 때, 저녁 내내 엉엉 울던 아들 녀석이 잊히지 않는다. 사랑하는 생명과 첫 이별을 한 녀석이 안쓰러워서 그저 토닥여 줄 수밖에 없었다. 


다시는 동물을 키우지 않을 거라던 아들은 두 녀석 중 남은 한 녀석 초코도 떠나보내고 또 아기 비어디 두 마리를 입양했다. 가만 드러누워서 잠만 자는 것이 너랑 똑 닮았구나 놀려댔지만 그렇게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을 언제 한 번 또 느껴보겠나 싶기도 했다. 이별을 할 때는 너무 아프지만 함께하는 시간 동안 최선을 다했다면 이별은 후회가 없어야 함을 아들이 배웠으면 했다. 그래서 먼 훗날 내가 곁을 떠나도 오래 아프지 않기를. 이별도 연습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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