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비행일기
"내 이름은 수지가 아닌데~ 자꾸만 실수로 수지라 부를 때"
- 미스에이 'Good bye baby' 가사 중...-
위의 가사를 보고 나도 모르게 흥얼거리게 되고 바로 리듬이 생각난다면 이 글을 보는 여러분은 나의 동년배이다 :) 오늘은 이름과 관련된 승무원들이 겪는 이야기를 들려드리려고 한다.
입사를 하게 되고 일할 때, 한국 이름을 그대로 쓸지 혹은 영어 이름을 쓸지는 본인 마음이다. 많은 한국인 친구들은 영어 이름을 쓰는 것을 고려한다. 왜냐면 외국인들 입장에서 한국인들 이름을 정확하게 발음하기란 어렵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빠른 소통을 해야 하는 업무 환경 내에서 이름 하나 기억하기도 어려운데 그걸 또 정확하게 발음하려니 그들에게 있어 엄청난 스트레스일 것이다. 이러한 그들의 특성을 잘 알기에 내 한국인 동기들도 대부분은 본인만의 의미 있고 예쁜 영어 이름으로 일하고 있다.
나의 경우에는 영어 이름을 사용하고 있지 않다. 그냥 내 한국 이름으로 일하고 있다. 나의 한국 이름이 외국인들이 발음하기에 그렇게 어렵다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 외국인 동기들도 곧잘 내 이름을 잘 발음했다. 또 사실 나의 호텔 시절부터 쓰던 영어 이름은 'Julie' (줄리)인데, 느낌이 어디 미국 드라마에 나오는 주인공의 깨 발랄한 친구 같은 느낌의 이름이었다. 지금까지 살아온 날 봤을 때, 내 성격이 그렇게 통통 튀고 깨 발랄하지는 않아 스스로 위화감을 느끼는 것 같아서였다. 그리고 나는 외국인이 많은 이 환경에서 자랑스러운 한국 이름을 쓰는 게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서 나는 내 본명을 쓰고 있다.
근데 새삼 일을 하면서 느끼는 건데 생각보다 내 이름을 발음하기 어려워하는 크루들이 많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내 이름은 수지라고 한다면, 꽤나 많은 사람들이 '순지'라고 'ㄴ' 받침을 붙여서 발음한다. 정말 위의 노래 가사처럼 내 이름은 순지가 아닌데, 자꾸만 실수로 순지라 부를 때... 처음에는 속으로 난감했었는데 이제는 뭐 그러려니 한다. 심지어 어떤 부사무장은 내 이름이 은근히 부르기 어렵다면서 본인이 나를 이니셜로 부르겠다며 괜찮냐고 물어보기도 했다. 즉 수지의 이니셜인 SZ로, "헤이, 에스즤!" 이런 식으로 부르겠다는 말. 그래서 "당신이 편한 대로 불러주세요."라고 웃으면서 해탈한 듯이 말한 기억도 있다. 이제는 그러려니.. 맘대로 너 편한 대로 불러라라고 마음먹게 되는 외국인 크루이다.
하지만, 이런 이름과 관련된 이슈에 대해 나는 너그럽게 그러려니 하고 웃으면서 받아들이는 편이다. 비행기에 올라가면 아무래도 일하고 정신없다 보니, 크루들 이름이 긴가민가할 때가 정말로 많기 때문이다. 그러면 나도 모르게 내 멋대로 부르게 된다는 것. 이런 상황을 나도 매 비행마다 겪고 있다. 비행 준비 전에 함께 일할 크루들의 이름을 적고 심지어 작은 메모지에 적어서 갖고 다니지만, 아무래도 얼굴이랑 이름을 매치해서 외우는 것이 어렵기 때문. 심지어 나의 경우에는 사람의 이름과 얼굴을 그 사람만의 분위기를 느끼면서 외우고 각인하려고 노력하는데 '이상하다... 이 친구 이미지는 이름이 딱 신디의 느낌인데 이름이 제니퍼네...' 인 경우엔 굉장히 헷갈린다는 것이다. 해서 일할 때마다 누군가를 불러야 하는데 기억이 안 나면 이름이 적힌 메모지를 조용히 몰래 슬쩍 보고서는 부른다. 아니면 뭔가 가물가물한데 하면 그냥 냅다 비슷한 발음이겠거니 하고 부른다. 예를 들어서, 이전에 함께 일한 주니어의 경우 이름이 '프리실라'인데 나도 모르게 기억이 가물가물해서 그냥 냅다 '프리라'라고 부른 경우도 있다. 근데 재밌는 건, 이렇게 냅다 비슷하게 부르면 또 본인 이름인 줄 알고 다들 잘 반응한다는 것이다. 나도 내 이름을 순지라고 다른 크루가 불러도, 날 부르는 줄 알고 바로 반응한다.
크루들 이름뿐만 아니라 간혹 승객들의 이름을 기억해야 할 때와 부를 때 역시 참 난감할 때가 많긴 하다. 이전에 한 비행에서는 내가 일해야 하는 존에 계신 한 영국인 중년 여성 승객의 이름이 'whitbread' (윗브래드) 였다. 정말 까딱하다가 나도 모르게 T 뒤에 E가 있다고 착각이라도 하고 승객을 불렀으면 whitebread (화이트브래드), 하얀 빵이 될 그녀였다. 정말 조심해야겠다 하고 인사하고 말을 건넸다. 그러자 그녀는 웃으면서
"오호호~ 맞아. 내 이름은 윗브래드야. 많은 사람들이 화이트브래드라고 불러주지. 근데 네가 원하면 화이트 브래드라고 불러도 된단다. 어릴 적부터 내 별명이라서 익숙하거든."
그녀의 해탈한 듯한 대답에 웃으면서 친숙하면서도 예쁜 이름이라고 말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이름에 대해서 잘못 말하고 했을지, 그녀의 대답에서 느낄 수 있었다. 어쩌면 그런 실수들이 모여서 그녀가 그런 너그러운 너스레를 떨 수 있었을 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이렇게 윗브래드인지, 화이트브래드인지, 아니면 미스터 충인지 총 인지, 미스 사라인지 미시즈 사라인지... 정말 이름이 헷갈리는 순간이 승무원으로 일하면서 정말 많아졌다.
내가 승객을 부를 때 외에도 승객들이 나를 부를 때에도 그렇다. 간혹 내 이름을 어려워하는 경우가 있어서 나는 그냥 성으로 부르라고 한다. 미스 박, 미스 이, 미스 김. 그러곤 한 마디 붙인다. 더 쉽죠? 그러면 다들 웃으면서 그렇다고 말한다. 어떻게 불러주셔도 저는 감사할 거라고 말하면 다들 스위트하다면서 웃어주신다. 뭐, 어떻게 불러주시든 나는 내 할 일만 하면 되고, 그들을 위해서 일하면 그만이라는 생각도 갖고 있다. 하하
'이름은 하나인데~ 별명은 서 너 개'라는 옛날 초등학생 시절에 배운 동요 가사가 생각난다. 아무렴, 앞으로도 승무원으로 일하면서 비록 내 이름은 수지이지만, 당신들이 나를 뭐라고 불러줘도 나는 괜찮을 것이다.
일하면서 여러 개의 이름을 갖게 되는 건, 어쩌면 외항사 승무원들이 가지는 특권 아닌 특권(?)이자 특별한 경험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