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직업일기
승무원이 된 후 승객으로 타 항공사의 비행기를 타게 되면서부터 내게 생긴 습관 아닌 습관이 있다. 바로 '타 항공사 승무원들 및 서비스 스캔하기'이다. 그러고 스캔에서 끝나는 것이 아닌 비교가 시작된다.
나는 개인적으로 우리 회사 비행기를 타고 휴가를 가거나 이동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같은 승무원 동료라고 나를 동료들이 챙겨주는 것도 부담스럽고 나 역시 눈치가 보이기 때문이다. 특히나 휴가에서 되돌아오는 비행의 경우에는 확실하게 내 자리가 예약이 된 상태로 돌아오는 것이 맘이 편하기 때문이다. 아, 이것이 무슨 말인지 궁금해하실 수 있겠다. 승무원들이 본인 회사의 티켓을 사서 휴가를 가거나 비행기를 타는 경우에는 일반적으로 Subload 상태로 탑승하게 된다. 즉 일반 승객들에게 판매가 되고 남은 좌석이 있는 경우에 해당 비행기에 탈 수 있다는 뜻인데 내가 이 비행기를 탈 수 있을지 아닐지는 당일에 얼마나 많은 크루들이 대기상 태인지에 따라서도 다르다. 운이 좋고 좌석이 많이 남으면 탈 수 있고, 아니면 빠꾸 먹을 수도 있다. 정말 중요한 자리에 가는 티켓이라면 Firm 티켓 (확정 티켓)을 쓸 수도 있지만 웬만하면 다들 서브로드 티켓을 구매한다. 해서 이런저런 이유들로 인해서 나는 우리 회사보다는 타 항공사 회사를 많이 이용한다. 가격 차이가 좀 나긴 하지만, 가격이 그리 심하게 차이가 안 난다면 타 항공사 타는 걸 선호한다.
이렇게 타 항공사를 타게 되면 탑승 순간부터 비행기 스캔이 시작된다. 좌석 배열은 어떻고, 오버헤드빈은 어떻게 생겼는지부터 시작한다. 그렇게 좌석에 앉자마자 안전 규정에 맞춰서 짐도 두게 되고 미리 안전벨트를 착용한다. 그렇게 앉게 되면 승무원들에게 저절로 눈이 간다. 아, 이 항공사는 승무원들이 이렇게 승객들을 도와주는구나부터 해서 아우.. 힘들겠다는 생각이 든다. 저러다가 허리 아프실 것 같은데... 그리고 승객들에게도 눈이 간다. 아, 저거는 혼자서 좀 하지... 승무원들이 짐을 다 올려드릴 의무는 없는데 저걸 시키시네. 저런 작은 짐들은 본인 앞 좌석 밑에 둬도 되는 데부터 시작해서 나 혼자 속으로 말 없는 오지랖이 시작된다. 그러곤 승무원들의 안전 브리핑에 눈이 돌아간다. 우리 회사는 저렇게 하는데 여기는 이렇게 하는구나라며 비교 아닌 비교를 하면서 나 역시 내가 배운 것들을 상기시키면서 승무원들을 지긋이 바라본다. 물론 그들 역시 뻘쭘하겠다고 느낄 거라 생각해서 맨 처음 탑승했을 때는 열심히 지켜봤지만 이제는 굳이 쳐다보지는 않는다. 이미 다 알고 있는 사항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비행기의 이륙 준비를 하고, 서비스가 시작된 후에도 나의 말 없는 오지랖과 비교는 잠에 들기 전까지 시작된다. FSC의 경우에는 식사 서비스가 어떻게 이뤄지고, 메뉴 설명은 어떻게 하는지 바라보게 되고, LCC의 경우에는 면세품 판매 및 간식 판매 서비스가 어떻게 이뤄지는지 조용히 바라본다. 그러면서 우리 회사의 서비스가 저절로 떠오른다. 우리 회사가 할 일이 많긴 많구나... 나중에 이직할 때는 LCC도 경험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그렇게 조용히 잠을 청하는 나이다.
시간이 지나 캡틴이 착륙 준비를 하라는 멘트가 나오면 승무원인 승객은 알아서 좌석을 위로 세우며, 창문 덮개를 올리고 좌석벨트를 단단히 고정하며 팔걸이를 내린다. 하물며 USB 포트를 다 미리 뽑고 미리 준비를 다 한다. 그러고 조용한 오지랖은 곧바로 내 앞 좌석 승객에게 눈길을 돌린다. 좌석을 앞으로 안 한 승객에게는 빨리... 좌석을 앞으로 옮기라고 속으로 조용히 말하고, 창문 덮개를 올리라고 소리친다. 좌석 벨트 매라는 표시등이 켜졌음에도 안 착용하는 승객에게는 저절로 눈이 가고 빨리 본인의 안전을 위해서 착용하라고 속으로 말한다. 그러다가 승무원이 지나가는데, 승무원도 사람인지라 체크를 못 하고 지나가는 경우가 있는데 그럴 때는 나도 모르게 저런... 이라며 안타까움의 탄식이 나온다. 그럴 때 대신해서 그 승객에게 사인을 보내고 싶지만 유니폼을 입지 않는 나는 그저 평범한 그 항공사를 이용하는 똑같은 승객이기 때문에 굳이 튀고 싶지는 않다.
그렇게 승객이 된 승무원의 말 없는 참견과 오지랖은 착륙을 마치고 비행기에서 내리면 다 끝이 난다. 승무원이 되어 일을 한 뒤로, 타 항공사 승무원들도 이런 부분에서는 마찬가지로 힘들겠다는 공감이 많이 된다. 해서 나 하나라도 행동거지를 잘해서, 그분들이 말을 덜하고, 신경을 덜 쓰도록 알아서 다 해결하려는 노력을 하게 되는 것 같다. 같은 동업자로서 해줄 수 있는 나만의 배려랄까? 아, 때로는 신경 쓰는 배려도 있지만 나도 모르게 직업병으로 나오는 배려들도 있다. 예를 들어서... 착륙 후 비행기에서 내리는데 나도 모르게 오버헤드빈의 문을 열면서 내리게 되는 것이다. 비행기에서 하기 전 승객들이 두고 간 물건이 없는지 확인 차 오버헤드빈을 다 여는 데, 그게 나도 모르게 습관처럼 나와서 나도 당황했던 적이 있었다.
아무튼, 승객이 된 승무원의 말없는 오지랖이자 같은 동업자로서 보내는 조용한 배려에 관한 오늘의 이야기는 전현직 승무원들이라면 깊게 공감할 이야기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