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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꼬마승무원 Nov 08. 2024

도도한 듯 시크하지만 맘은 따듯한 크루

EP.비행일기_독일 프푸 미국 뉴욕 비행

오랜만에 글을 작성한다. 그동안 내 근황에 대해서 설명하자면 (궁금한 사람은 없겠다만...) 최근에 총 9일 동안 독일 프랑크푸르트와 미국 뉴욕을 서로 오가는 4섹터 장비행을 끝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어제는 회사 트레이닝 센터에 시험을 보러 다녀왔다. 정신 쏙 빼놓게 엄격하고 힘든 시험이었지만, 다행히 합격했고, 이젠 진정한 회사의 시니어가 되었다. 프푸 뉴욕 비행을 끝내고 약 4일간의 휴무가 있었는데, 이 시기에 조용히 한국에 다녀왔다. 한국이 아닌 여기서 공부하기엔 집중도 안 될 것 같고, 12월까지 인천 비행이 없었기 때문이다. 다만, 시험에 온전히 집중하고 싶어서 모든 친구들에게 내가 한국에 왔다는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그냥 혼자서 조용히 집 근처 오픈형 사무실 겸 스터디 카페에서 아침 일찍부터 저녁 늦게까지 공부만 했었다. 오랜만에 집밥 먹으면서 힘을 얻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공부만 하는 삶을 사니 이전에 한창 승무원 준비 시절, 회사 휴무일에 살던 나의 삶의 기록이 새록새록 샘솟았다. 그땐 이렇게 공부하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는데 지금도 이렇게 공부하는 삶이라니... 인생이란 배움의 연속이라는 말이 새삼 살갗으로 와닿는 3일 동안의 나였다. 그렇게 마음속에 짐이 사라진 지금은 아주 여유로워졌다. 마음의 짐이 덜어진 만큼, 이젠 내 스스로의 마음과 글을 더 자주 살펴볼 수 있고, 여러분들에게도 공유할 수 있게 되었다.    


 처음으로 해보는 4섹터 장비행은 몸은 힘들었지만 행복한 마음과 추억이 가득한 비행으로 마무리되었다. 아, 4섹터에 대해서 궁금해할 수도 있겠다. 4섹터에 대해서 설명하자면, 내가 살고 있는 나라에서 출발 -> 독일 푸 -> 미국 뉴욕-> 독일 푸 -> 내가 머무는 나라로 돌아오는 패턴이다. 총 비행을 통해 다른 나라로 이동하는 횟수가 4번이기에 4섹터라고 불린다. 해당 나라에서 머무는 기간도 다르다. 뒤틀려버린 시차로 인해서 몸은 배로 힘들지만, 그만큼 버는 돈도 많이 벌고, 크루들과 더 친해질 수 있다는 점이 바로 이 비행 패턴의 장점이다.


 독일에는 여러 번 와 본 나이지만, 미국 뉴욕은 처음이었다. 해서 마음이 맞는 선배들과 사번이 비슷한 동기들과 함께 뉴욕의 이곳저곳을 누비고 다녔다. 뉴욕의 젤리캣 매장에서 실제로 직원들이 인형을 요리하면서 춤추는 것부터 타임 스퀘어, 레인보우 색깔의 맛있던 유명한 리버티 베이글 집, 유명한 카페의 바나나 푸딩, 미국 현지 슈프림 매장 방문, 브루클린 다리에서 사진 찍기 등등... 여전히 새로운 나라에 가서 돌아다니고 이곳저곳을 탐방할 때마다 설레는 걸 보면 아직 승무원으로서 더 일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해외 낯선 국가에 마음에 맞는 동료들과 함께 다니면, 그 순간부터 다시 본국에 돌아오는 동안 우리는 동료 이상의 관계가 된다. 즉, 한 번만 보고 말 직장 동료라는 개념 이상으로 외국인 친구로서, 친근함이 더 커진 상태가 된다. 그렇기에 레이오버를 마치고 다시 본국에 돌아오는 비행에서 서로 더 자주 이야기꽃을 피우게 되고, 더 도와주게 된다. 실수가 나와도 그럴 수 있지 하며 더 많은 이해심과 관대함이 나오게 된다. 나 역시 이번 프푸에서 본국으로 돌아오는 비행에서 내 쪽 서비스가 일찍 끝났을 때, 태국인 후배한테로 먼저 다가가서 도와주었다. 일할 때 니 일, 내 일이 어딨냐. 빨리 함께 끝내버리자는 것이 나의 기본적인 마인드셋인데, 더욱 친해진 크루 쪽에 도움이 필요하다면? 호빵맨처럼 날아가서 도움을 주는 나이다.


 이런 나를 보고 태국인 후배가 연신 한국말로 감사합니다와 영어로 땡큐를 외치며 말해주었다. 그런 그녀에게 에이 당연한건데 뭘 그래. 나도 고마워! 라고 넌시지 말했다. 그러자 그녀는 내게 나는 너가 정말 좋아! 특히 너의 성격이 정말정말 좋아. 다음에 너랑 같이 비행했으면 좋겠다라며 말을 건넸다. 갑자기 훅 들어온 후배의 성격 플러팅 공격에 고맙다고 너털스럽게 웃으면서 이유를 물어봤다. 그녀는 나의 무던하고 시크하지만 굉장히 예의바르고 튀지 않는 성격, 그리고 옆에서 조용히 어느샌가 나타나서 도움을 주고서는 사라지는 든든함이 좋다고 했다. 감사하게도 그녀 말고도 대부분의 모든 크루들이 나와 함께 비행하고 싶다면서 비슷한 말들을 건네주었다.


 하기사, 승무원들이 가장 예민해질 때가 언제냐고 물어본다면 나는 당연코 밀 서비스하는 동안이라고 말할 수 있다. 특히나 카트를 2명이서 끌게 되는 투 맨 오퍼레이션의 경우, 선배가 후배에게 날카롭게 말하거나 무례하게 말하는 경우가 많다. 나도 이런 경우를 후배로서 많이 겪어봤고. 하지만 나는 무례하게 말한 적이 없고, 항상 그러지 않도록 주의를 하면서 일을 한다. 아무리 후배라도 나는 항상 'May I ~?', 'Could you~?' 'Thank you so much', "**님, 저 이것 좀 더 주실래요? 더 주실 수 있으실까요?" 라면서 항상 공손하면서도 끝맺음이 확실한 문장을 사용해서 말한다. 아무리 바쁘고 예민하다지만, 승객한테 받는 스트레스도 많은데 바빠죽겠는 상황에서 같은 동료한테서 받는 스트레스까지 주고 싶지가 않는 나이다. 그런 나의 모습과 성격이 그녀에게는 크게 와닿은 모양이었다.


 간혹 나는 후배들에게 비행이 끝나고 문자를 받는 경우가 있다. 선배님 잘 지내시냐, 최근에 비행해봤는데 선배님이 엄청 잘해주셨다는 것이 느껴진다면서 담에 또 같이 비행하면 좋겠다는 말. 이전에 인천 비행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는 택시를 잡기 위해서 후배들과 기다리던 일이 있었다. 두 명의 후배들이 갑자기 내게 "선배님은 성격에 큰 동요도 없으시고, 무던하시고, 무뚝뚝하신데 어느샌가 옆에서 조용히 도와주고 저희를 챙겨주시는 걸 보면서 되게 좋았어요. 저희 때문에 짜증나고, 많이 답답하고 두 배로 일해야해서 힘드셨을텐데 오히려 저희 멘탈 챙겨주셔서 감사해요." 라고 말해주었다. 이때 그냥 "아이고, 저도 살아남아야해서 정신없었던 건데 그걸 또 좋게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그런 시절이 있었으니 다 이해하죠. 아마 시간 지나면 저보다 더 좋은 선배가 되실 겁니다." 라고 담담하게 말했지만 속으로는 굉장히 고마웠다.  


 간혹 내 겉모습을 보고 깍쟁이같고, 도도하다고 생각하는 외국인 크루들이 좀 많은데 아마 일할 때도 그럴 거라는 인상으로 보여지는 것 같다. 내 목소리도 그렇게 하이톤으로 높지도 않고, 그렇다고 톡톡 튀는 성격도 아니니 아마 시크하고 무덤덤하다고 생각이 되나보다. 하지만 나는 속이 매우 여린 사람인걸!! 아무튼 그렇게 날 좋아해주는 사람들이 많으니 참 감사했다.

 승무원으로 일한 시간이 점점 쌓일 수록 이제 다른 승무원들이 나를 어떤 승무원으로서 기억되는 지 점점 알게되는 느낌이다. 나는 '도도한 듯 시크하지만 맘은 따듯한 한국인 크루' 라는 걸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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