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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수학쌤 Jul 10. 2023

두 눈

똥개의 환생이다.


나이 사십이 넘은 지금도 눈이 내리면 주책없이 마음이 들뜬다.

사방팔방 흩날리는 눈을 보고 있으면 있지도 않은 꼬리가 대차게 살랑이는 듯 뒤통수에 바람이 인다.     


20여 년 전 겨울, 기말고사를 앞둔 어느 날 대학교 중앙도서관이다.

시험 기간에는 자리 경쟁이 치열해서 이른 새벽에 학교를 와야 도서관 자리를 맡을 수 있다. 그날도 어김없이 나는 그가 맡아 둔 자리에 앉아 그가 사다 준 따뜻한 커피를 마시며 그의 옆자리에서 시험공부를 한다. 친구들과 잠깐 담배 타임을 나갔던 그가 급히 다시 들어오더니 개미 목소리로 큰 소식을 전했다. “밖에 눈 펑펑 온데이.” 머릿속을 떠다니던 골치 아픈 수식과 이론들이 비눗방울 터지듯 파바밧,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그의 손에 이끌려 도서관 밖으로 나가보니 세상이 하얗다. 하늘에서 퐁실퐁실한 솜뭉치들이 그야말로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넓은 대운동장 한가운데에 서서 눈 구경을 실컷 했더니 나무에 수북이 쌓인 눈이 우리에게도 쌓였다. 머리 위에 뽀얗게 쌓인 눈을 털어내기가 아까워 그냥 두었다. 아쉽게도 나는 나뭇가지에는 없는 체온을 가진 탓에 이내 머리가 젖어 버렸다. 자동차도 나무도 다들 그대로인데 내 눈만 녹았다며 속상해하는 날 보는 그와 눈이 마주쳤다. 차가운 눈 사이로 보이는 따뜻한 그의 눈. 어릴 적 돌아가신 아빠가 나를 볼 때 이런 눈빛이었을까. 조금의 부족함도 없이 따뜻한 그의 눈을 보며 나의 결핍이 한순간에 채워짐을 느꼈다. 왈칵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때부터였다. 원래도 좋아했던 눈이 더 좋아지게 된 건.     

그 날 이후로도 우리는 스물두 번의 겨울을 함께 보냈고 여전히 그는 싸리 눈이라도 날리면 “너 좋아하는 눈 온다” 하고 곧장 알려준다. 그리곤 “좋다꼬 밖에 나가서 눈 맞고 돌아댕기지 말고 안에서 봐래이, 감기든다.”하고 덧붙인다.     


나는 눈이 참 좋다.

추운 겨울 선물 같은 눈도, 부족한 나를 감싸주는 변함없는 그의 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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