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리언: 로물루스> 리뷰
에이리언.... 좋아하세요..?
저는 에이리언 시리즈를 안 봤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2편만 봤습니다. 3년 전에요. 기억이 가물가물 합니다. 근데 뭐 중요한가요? 인간이랑 외계인이랑 같이 붕쯔붕쯔하는 거 아니에요?? 이게 외계+인이지. 아니에요? 이거 아니야?
팬이 아닌 아저씨들은 꺼져
신작 영화가 개봉했습니다. 근데 시리즈물이네요? 전편을 보지 않아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평이 자자합니다.
그래도 저는 전편을 모두 보고 갑니다. 1편부터 시작해서 스핀오프에다가 비하인드 야사까지 싹 다. 그 시리즈의 올드팬이 신작을 보고 느끼는 감정을 거의 유사하게 느낄 수 있도록 말입니다. 대표적으로 쿠엔틴 타란티노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가 있었죠. 이거 예고편보고 타란티노 영화 몰아봤다가 이 사람의 열렬한 팬이 되었습니다. 시리즈 영화가 아니라고 태클을 걸진 마십시오. 쿠엔틴 타란티노는 그 자체가 시리즈고 장르입니다.
아무튼 중요한 건 이번 영화는 그러지 않았다는 거죠. 뉴비의 심정으로 영화를 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요즘 같은 ‘대 속편 시대’에서 아무 사전정보 없이 극장으로 가는 관객의 기분을 대변해보려 합니다.
그냥 귀찮은 거잖아요
쉿. 시작해 봅시다.
15000원
영화 티켓 값이 15,000원이 되어버린 시대에서 소위 말하는 ‘가성비’를 따지는 건 이상하지 않은 일이죠.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이 영화는 가성비가 아주 훌륭한 영화입니다. 내 심장이 쫄깃하다 못해 도래창이 되어 보고 싶다 하는 분들에게 이 영화는 예산 시장 같은 영화가 되어줄 겁니다. 2시간 러닝 타임 내내 쉴 새 없이 몰아치는 서스펜스와 액션. 이것 하나만으로도 볼 영화 없는 최근 극장가의 단비 같은 영화가 되어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여주인공
여주인공이 예쁩니다.
네?
그러니까, 여주인공이 예쁘다구요.
더 설명해 드려요?
호러
이 영화는 공포 영화 장르의 기본적인 문법을 충실히 따릅니다. 젊은 남녀 무리가 위험한 곳에(위험한 걸 알고 있음에도) 몰래 들어가 갇히고, 무서운 애랑 2시간 동안 지지고 볶다가 탈출하는 내용입니다. 중간중간 트롤들의 트롤링까지 빼놓지 않습니다.
특수부대도 있고 총도 있고 로봇도 있던 2편과는 다르게 이 영화는 그냥 몸뚱이들만 있습니다. 걸어 다니는 고깃덩어리들이죠. 덕분에 긴장감은 따따블입니다. 1편과 비슷한 구성입니다. 덕분에 2편에서 잡몹 취급이었던 제노모프(에이리언 성체)의 위엄은 굉장합니다. 제발 마주치지 않았으면 좋겠고 만약 마주친다면 세상이 무너지는 것만 같죠. 우리는 그저 저 녀석이 나를 모른 척 지나쳐주기를 하늘에 기도할 뿐입니다. 자매품으론 전여친이 있겠네요. 혹은 우리들일 수도 있죠. 내가 보내는 선톡이 그녀에게 에이리언인 겁니다.
자니...?
성기와 여전사
에이리언들의 디자인은 남성의 성기에서 모티브를 착안했습니다. 흔히 알려진 이야기죠. 이번 영화에서도 노골적으로 드러납니다. 제노모프의 대가리는 음경, 페이스 허거는 음낭과 같고 숙주의 몸에 강제로 새끼를 낳는 과정은 마치 강간과 같이 표현됩니다. 체스트 버스터가 숙주의 몸을 뚫고 나오는 과정 역시 거칠고 폭력적인 남성성의 상징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그에 맞서는 주인공이 강인한 여전사라는 점은 흥미롭죠. 올드 시리즈의 리플리가 그러했고 이번 영화의 레인 캐러딘 또한 비슷하게 그려집니다. 모성이 중요한 테마로 작용한다는 것 또한 재밌는 점입니다.
화면
많은 장면을 클로즈업으로 잡습니다. 이것 또한 공포 영화에 많이 보이는 기법이죠. 화각이 제한되니 관객은 화면 너머 미지의 존재에 대한 두려움을 더욱 크게 느끼고, 감독 입장에선 화각을 조금만 틀어도 시각적 충격을 크게 줄 수 있으니 유리합니다. 그리고 이 시리즈는 크리처물의 속성 또한 가지고 있기 때문에 징그러운 크리처가 잔뜩 확대되어 침 뚝뚝 흘리고 있으면 불쾌함 역시 배가 되는 효과를 볼 수 있겠죠.
음악
의외로 음악에 대한 칭찬이 별로 없더군요. 놀랐습니다. 이 영화의 음악들 모두 좋지 않았나요? 고전적인 느낌이 들면서도 쪼는 맛이 아주 훌륭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아쉬운 점이 있다면 영화에 카운트다운 장면이 꽤 많은 데 그럴 때마다 리듬이 너무 반복적이라 고조되는 느낌은 덜했네요.
생동감
세계관을 생기 넘치게 해주는 건 무엇일까요? 많은 요소가 있겠지만 이 영화에선 도드라지게 느껴진 건 ‘활용’이었습니다. 주어진 배경과 환경을 활용해 다양한 화면을 구성하고, 모든 등장인물들이 세계관의 설정과 등장하는 기물 하나하나를 알차게 써먹습니다. 단적으로 예를 들자면 후반부 에이리언 혈청을 사용하는 장면이 있겠네요. 저는 솔직히 중간에 임산부 죽일 때만 해도 큰 충격이었습니다. “모성애가 키워드 이 시리즈의 키워드 아니었어..?”하고 말이죠. 하지만 혈청을 회수하고 죽은 줄 알았던 케이를 되찾을 때 느낌이 오더군요.
아, 뱃속 아이가 에이리언이 되겠구나
이 정도면 변태 아닙니까? 탈출하고 끝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흐름이었는데 혈청이라는 요소를 이용해서 새로운 서스펜스를 또 만들어냈습니다. 흥미로운 설정은 하나라도 허투루 쓰지 않겠다는 의지가 보였습니다.
회수되지 못하거나 쓸모없이 소모된 복선이 거의 없는 덕에 엔딩크레딧이 올라가고 나서 깔끔한 뒷맛이 개운하게 느껴지더군요. 변태적으로 느껴질 정도로 세계관을 사랑하는 게 눈에 보였습니다. 장르 영화는 역시 변태들이 만들어야 제 맛입니다. 보고 있나 퍼시픽림?
서사와 주제의식
제가 어설프게 알기론 이 시리즈는 나름의 철학과 관통하는 메시지가 있습니다. 위에서 말한 ‘모성’이라는 키워드가 대표적인 예시입니다. 잘 만든 시리즈에는 고유한 이야기와 메시지가 있는 법이죠. 근데 이번 영화는 그딴 거 없습니다. 오프닝과 수미상관으로 이어지는 엔딩은 세련되면서도 깔끔합니다. 너무 많은 것을 보여주려 욕심부리지 않았고, 또 그렇다고 너무 슴슴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서 별로였냐 물으신다면 오히려 너무 좋았습니다. 이런 영화도 필요합니다. 정밀 재밌게 보았던 <에이리언 2>와 비슷했습니다. 적당한 이야기, 적당한 스트레스, 그리고 그것을 배로 갚아주는 강한 쾌감. 감히 예상컨대 이 영화 역주행할 것 같습니다. 매서운 다크호스입니다. 추석 전까지 극장가를 섭렵하지 않을까 싶네요.
마무리
재밌는 영화였습니다. 나머지 에이리언 시리즈가 보고 싶어지는 수작이었습니다. 왜 넷플릭스에는 내가 보려고 하는 영화들만 없는 걸까요. 저는 매달 17,000원씩 내면서 유튜브에서 영화를 5,000원 내고 보는 미친놈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영화든 내려가기 전에 미리 봐놓으시길 바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