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따라 된바람이 차가운 토요일 오후, 나는 어김없이 엄마 보려고 가게를 나섰다.
매주 토요일은 실버타운에 누워계시는 엄마 보러 가는 날이다. 일주일 동안 해야 할 일은 금요일까지 처리하고 토요일 오후 이 시간만큼은 비워놓는다. 그래야 엄말 볼 수 있으니까.
뇌출혈로 반신이 마비되어 실버타운에 누워 계신 지 4년째인 우리 엄마. 쉰여섯 막내아들이 여든여섯 엄마 보러 간다. 지난 일주일도 일하느라 정말 입에 단내가 나도록 바쁘게 살았지만 일 년 내내 침대에 누워 자기 몸 하나 어찌하지 못하는 엄마를 생각하면 나 자신이 피곤하다 생각하는 것조차도 불효인 것 같다.
매 주일마다 하는 고민이지만 오늘은 엄마께 무얼 사다 드릴까 헤아려본다. 실버타운 가는 길목에 고속도로 휴게소가 있어 거기서 엄마의 간식을 사곤 한다. 휴게소 뒤에는 마을길과 통하는 문이 있어 근처에 차를 세우고 들어가서 볼 일 보기가 좋다.
경호 강 따라 한적한 길을 천천히 운전하며 생각에 잠긴다. 우리 엄마 오늘은 무얼 사다 드릴까. 아무거나 드실 수도 없고 배부르게 드실 수도 없는 우리 엄마께 무얼 사다 드릴까 망설이지만 휴게소에 들르면 결국 손에 쥐는 것은 이천 원짜리 호두과자 한 봉지다.
지난 오십여 년 동안 반평생을 홀로 사셨던 우리 엄마는 자기 관리에 철저했었다. 하지만, 세월 앞에 이길 장사가 있으랴. 4년 전 크리스마스이브 때, 갑자기 혼자 사시던 아파트에서 뇌출혈로 쓰러지셨다. 하지만, 대단한 정신력으로 소리를 질러 맞은편 호실에 사는 아주머니가 그 소릴 듣고 119에 신고를 해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나셨다. 119 구급대원들이 베란다를 통해 집에 들어와 엄마를 해운대 백병원으로 이송하였다. 구급대원으로부터 전화연락을 받고 우리 부부는 황급히 산청에서 해운대 백병원으로 달려갔다. 뇌출혈이라는 초를 다투는 긴박한 상황에서 엄마는 그나마 위기를 모면하셨다. 엄마의 간병을 위해 우리가 사는 진주 쪽으로 병원을 옮겼고 엄마는 결국 반신 편마비로 누워있어야 하는 장애 2급 판정을 받았다.
그동안 자식들이 모두 멀리 살다 보니 자주 찾아뵙지 못하고 그저 전화로 안부를 물으며 지내왔었다. 엄마는 오랜 세월 홀로 살아오셨기에 근검절약이 몸에 배였고 자기 관리에 철저하셨다. 그 연세에 매일 일기를 쓰고 하루의 생활동선을 시간대 별로 노트에 기록해 둘 정도여서 우리 부부는 엄마를 인간 CC TV라고 놀려대곤 했었다. 그런 엄마는 아이러니하게도 의외로 병원 가는 걸 터부시 하고 건강보험 내는 것조차 아까워하셨다. 내가 건강한데 헛돈 쓰는 거라고 고집하셨다. 건강검진 자체를 거부하시니 자신의 몸 상태를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 엄마는 자식들에게도 살갑게 대하지 않고 애정 표현에 유난히 인색하셨다. 우리 자식들은 그동안 다른 집처럼 엄마라고 부르지 못하고 어머니라고 불렀다. 가정교육이 엄한 것처럼 보이겠지만 뭔가 거리감이 있는 호칭이었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글로써나마 ‘엄마’라고 맘껏 부르는 것이다.
그렇게 자식들에게 잔정도 주지 않던 엄마가 이제는 침대에 누워 이 아들놈 하나 기다리고 계신다. 일주일에 한 번 잠깐 보는 짧은 시간이지만 엄마는 일주일 내내 기다리고 계신다.
그 오랜 세월 동안 숨겨놓았던 모정을 이제 서야 풀어내고 있는 것이다.
오늘도 어김없이 호두과자 한 봉지를 손에 쥐고 복도를 걸어간다.
실버타운 2층 ‘희락실’ 첫 번째 침대에 누워 계신 엄마를 만나는 이 순간은 지금 내 인생에 가장 천금 같은 시간이다. 아들 얼굴을 보고서 그 굳어있던 얼굴에 화색이 돌고 흐릿하던 눈동자마저 생기가 돈다. 단팥 좋아하시는 엄마는 따끈한 호두과자 두 개면 족하다. 더 이상 드실 수도 없다. 그러면 나머지는 내가 먹고. 엄마는 토요일이면 찾아오는 아들이 입에 넣어 드리는 호두과자 두 개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다.
그런데 이 아들놈은 그 이상 해드릴 게 없음이 속상하다. 찾아뵐 때마다 앙상한 당신의 손을 매만지며 엄마가 지금 내 곁에 숨 쉬고 계심을 감사드리는 이 순간을 만끽하고 있다.
아직 정신이 있는 엄마와 도란도란 얘기 나누는 이 순간이 깨질 새라 가만히 숨죽이고 있을 뿐이다. 이제 침대에 누워 자식을 기다리며 조금씩 희미해져 가는 기억 속에 하루를 보내는 엄마를 볼 때, 지난 시간들은 모두 다 애증의 세월이다. 지금은 그저 따뜻한 당신의 손이 소중하게 느껴지는 순간일 뿐이다.
엄마는 그 뒤 5년을 더 힘들게 누워 계시다가 작년 개천절 날 우리 곁을 떠나셨다. 다가오는 10월 3일이면 1주기를 맞는다. 그래도 난 호두과자를 한 봉지 사고 싶다. 호두과자 두 개를 매만지며 그리운 엄마를 만나러 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