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5월, 우편실 아침은 완전 도떼기시장이다. 방금 도착한 우편물 행낭 자루가 가득히 쌓이고 하나씩 풀어헤친 후 집배 구역별로 대분류를 하기 바쁘다. 여기저기서 던지는 우편물 뭉치가 우편 실 하늘을 휙휙 날아다닌다.
이 날도 아침 7시에 출근하여 커피 한 잔 마실 겨를도 없이 우편물 분류하느라 바삐 손을 움직인다. 동료들로부터 넘겨받은 우편물을 다시 나의 집배 구역 순서대로 소분류를 해야 한다.
이제 3년 차가 되니 마을별로 집 순서들이 머릿속에 편안하게 저장되어 있다. 우리 집배원들은 이 작업을 ‘구분한다’라고 표현한다. 구분을 재빠르게 해치우고 등기 우편물을 별도로 수령해서 사이사이 순서대로 끼워 넣는다. 거기에 부담스러운 소포들까지 오토바이에 싣고 나서 오전 10시에 출발하면 그래도 빠른 출발이다. 그래야 점심때 동네 구멍가게에서 라면이라도 한 끼 때울 수 있는 타이밍이 된다.
그날 아침에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우편물 구분하느라 정신없는데 누군가 등 뒤에서 “어이 차성호, 니 편지다!”라며 던져준다. 무심코 받아 든 편지를 살펴보던 나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발신인이 ‘마산지방 검찰청 박기숙’이다. 일단 검찰청이란 단어에 멈칫했지만 그 뒤 박 기숙이란 이름에 가슴이 콩닥거렸다. 그 이름은 지난 주말에 친구 소개로 만난 그 아가씨 이름이 아닌가? 그렇지, 그 사람이 마산검찰청에 근무한다고 했지. 깜짝 놀랐네. 근데 웬 편지를?
하지만, 그 시간엔 너무 바빠서 편지를 뜯어 읽어볼 틈이 없었다. 편지를 윗주머니에 잘 접어 넣고 일단 밖에 나가서 읽어 보기로 했다. 일이 손에 잡히질 않았다. 무슨 내용일까.
지난 토요일 저녁, 마산에서 제일 번화하다는 창동 골목 ‘나드리에’라는 경양식집에서 서로 만나기로 하였다. 첫 만남이라, 만남을 주선한 고교절친 홍찬이가 동석하였다. 홍찬이와 박기숙 씨는 같은 검찰청 동료였다. 친구랑 나는 약속 시간보다 먼저 가서 기다렸다. 시간이 되어 나타난 아가씨는 걸음걸이부터 박력 있게 걸어왔다. 서로 인사를 나누고 식사를 하면서 대화는 막힘없이 이어졌다. 일이 되려는 징조였다. 여자 앞에서 숙맥인 나도 그날 나답지 않게 말을 많이 했던 것 같다. 중간에서 친구 홍찬이는 슬며시 먼저 간다고 빠져 주었다.
커피숖에서 헤어지지 않고 버스 정류장까지 나를 바래다준 박기숙 씨는 다음 주 토요일 경남대학교 완월강당에서 열리는 ‘성악가 안민 음악회’에 올 수 있느냐고 물었다. 마침 티켓 두 장이 있다고 했다. 나야 고맙기 그지없었다. 1초도 안 망설이고 승낙했다. 생각해 보니 애프터 신청을 받은 거지. 여자한테 먼저. 뭔가 순서가 바뀐 거라고 생각을 하긴 했었다.
근데, 오늘 이렇게 생각지도 않은 편지까지 받고 보니 살짝 긴장되었다. 우체국에 근무하는 장점이 바로 이런 거지. 편지를 가장 빨리 내 손에 받아볼 수 있다는 것. 오전에 눈썹이 날리도록 우편배달을 하고 마을 중간에 있는 양지바른 묏등 잔디밭에 앉아 땀을 식히며 박기숙 씨의 편지를 꺼내 읽었다. 어라! 편지지가 아니라 원고지였다. 하지만 원고지 칸을 지켜가며 쓴 글이 아니라, 그냥 써 내려간 글이었다. 엊그제 만났던 일에 대한 자신의 마음과 나의 대한 인상 등을 막힘없이 적어놓았다. 한마디로 나와 계속 만나 볼 의향이 있다는 ok사인이었다. 정말 고마운 일 아닌가? 나 같은 사람을 계속 만나보겠다니.
그런데 아차 싶었다. 지난 첫 만남에서도 애프터 신청을 그쪽에게 빼앗기더니 이번 편지도 그쪽에서 결과적으로 선수를 먼저 친 것이 아닌가. 주소를 가르쳐준 것도 아닌데 내 근무지가 김해우체국이란 말만 듣고 편지를 보낸 것이었다. 난 속으로 상대방이 범상치 않다는 느낌이 들었다. 어쩜 아가씨가 나보다 더 적극적이란 말인가?
이렇게 해서 우린 서로 휴대폰도 없던 시절, 11개월 동안 낭만적인 연애편지로 사랑을 키워갔고 지금은 같은 집에 산 지 34년이 되었다. 지금도 보관 중인 연애편지를 꺼내보니 편지봉투에 적힌 숫자가 63까지 적혀 있다. 거의 매주 2통씩은 주고받은 셈이다. 그 바람에 필력이 많이 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한 여자를 얻기 위해 한 남자는 그렇게 긴긴밤을 새웠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