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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효주 Jul 07. 2023

서른다섯 수에 생긴 일

스물다섯, 서른다섯, 마흔다섯 수의 상처

이혼을 한 이후 주체할 수 없는 마음을 달래는 게 쉽지 않았다. 하지만 결혼생활동안 내 앞으로 빚진 돈을 갚아야 하는 일은 온전히 나의 몫이었기에 몇 년간의 재판을 하는 동안 파트타임으로 학원도 열심히 나가고 과외도 만들어 열심히 했던 것 같다.

내가 갖고 온 채무는 이자가 컸어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학원을 차리기 전까지는 말이다.     

과외방을 넓혀가고 학생들은 계속 늘어갔지만 신고정신이 투철한 분들 덕에 교육청은 과외방의 벨을 계속 눌러댔다.


학원을 차리는 것 외엔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사업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준비는 했어야 하는 거 아닐까?

단순히 교육청을 피하기 위해 예산을 정확히 짜지도 못한 채 목수를 인테리어 업자로 착각하고 견적을 받았다. 700에 받은 견적을 싸다 생각하고 감사해하며 시작해서 마지막엔 몇 천만 원을 주는 일로 마무리하는 남들 안 하는 그 힘든 일을 나는 또다시 해내고 만 것이다.


정말 그 시절의 무지함과 용기란 어마어마했다. 배우고 성장하는 과정을 행복해하는 나는 남들 하는 설명회도 해보고 싶어 졌고 남들 하는 공부도 하고 싶어졌다. 학원을 차리고 몇 개월 후 고려대학교 최고위과정을 등록했다. 전국의 내노라하는 원장님들은 모두들 모인 듯했다. 다들 인맥을 쌓으려 왔다는 생각은 못했고, 얼마나 대단한 분들인지에 대한 생각도 안 했다. 그냥 나도 하고 싶고 따라 하고 싶었을 뿐!!     


내면세계가 간직하고 있는 도덕적, 정신적 자아가 무너지도록 내버려 둔 사람은 결국 권력의 희생자가 된다.   -죽음의 수용서에서-


학원은 생물이기에 사람이 투자금이고 그 투자금인 사람이 돈을 벌어주는 구조이다. 또한 학원을 키우는 과정에서 원장이 손을 놓으면 공든 탑이 무너지듯 와르르 무너지는 일들이 생긴다. 나는 CEO과정에서 나도 다른 원장님들처럼 학원을 하고 싶었다.

아기가 누워있다 뒤집기를 하고 그다음은 기어야 하고 일어서서 걷는 수순이 있는 것처럼 학원경영도 사람을 다루는 일이기에 사람과 부딪히며 알아가는 일들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나는 어떤 것도 경험하지 못한 채 누워있다 곧바로 걷겠다는 시도를 한 것이다. 게다가 경영에 관한 재무개념도 없었다.      


처음엔 선생님들을 세팅하는 시행착오를 겪었고, 노력한 대가는 있었던 듯 학원은 나쁘지 않게 계속 성장을 했다. 화장실에 앉아 나의 경제력으로는 안되지만 학원으로는 확장이 맞기에 신한은행의 도움을 받아 확장을 했다. 나는 2관을 얻어 확장을 하고 지출을 늘리면 안 되는 것이었다. 더 넓은 곳으로 옮겨 같은 비용으로 효율을 높이는 선택을 했어야 한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았다. 나는 곪아가고 있었지만 학원은 성공적인 듯 잘 되어가고 있었다.     

그러다 세무사에게 연락이 왔다. 사업자를 바꾸는 건 어떠냐? 는 것이다. 세금이 무엇인지? 어떤 건지도 잘 모른 채 처음엔 선생님들 급여에서 세금을 떼는 것도 몰랐고 종합소득세를 냈는데도 무언가? 증빙하라 온 연락에서 세무사는 나에게 다시 한번 세금을 조금 더 내고 그냥 바꾸시는 건 어떨까요?라고 말을 했다. 학원에서 함께 일하는 동생도 아닌 결혼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동생으로 사업자 명의를 바꾸고 나는 불편함을 겪기 시작했다.

은행문제들이 걸려들며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다시 나의 명의로 사업자를 바꾸었지만 이미 일은 벌어지고 말았다. 그 와중에 갖고 있는 채무를 없애고 싶은 욕심이 생겨 학원을 이전하겠다고 부동산을 찾아갔다. 어쩌면 좋을까? 부동산 사장님 눈에 나는 이미 호구였다.

왜 이전을 하려 하냐? 는 물음에 나는 나의 상황을 정확히 이야기했고 동업제안을 받았다.     

무언가 돌파구를 준 것 같은 부동산 사장님에게 받은 제안은 감사했다.     

나는 다른 걸 정리해서 돈에서 자유로워지고 부동산사장님과 동업으로 학원을 더 크게 만들어야겠다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알게 되었다.  사기라는 걸!!

그럼에도 처음에 내가 학원을 포기 못한 더 큰 이유는 나와 함께 시작한 선생님들 어떻게 하지?라는 마음이었다. 왜 선생님들을 내가 책임져야 한다 생각했던 것일까? 원장이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급여를 많이 그리고 잘 주면 좋은 원장인데 말이다.     


돈을 만들기 위해 집은 사장님 지인에게 싸게 넘겼고 그것도 은행거래 흔적을 남기지 않으려 중간에서 수표로 처리하게 만들었다. 학원의 보증금도 주인대신 건물을 관리하던 부동산 사장님은 나에게 보증금을 거짓말하고 계약서에만 세금 때문에 적게 적을 뿐이라 말을 했고 인테리어는 내가 받은 견적보다 더 싸게 할 수 있다고 이야기하고 남편이 말도 안 되는 공사를 하고 나에게 돈을 받아 챙긴 것이었다.  

   

나는 더 허름한 곳으로 말도 안 되는 인테리어 시설을 갖추고 내 돈과 내 학생들을 이끌고 가서 동업을 시작한 것이었다. 한 달 만에 그 사실을 알게 되었고 사람들은 속은 보증금 계약서를 이야기해도 믿지 않았다. 30대 중반에 그런 계약서를 작성했다는 건 믿을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때부터였다. 나는 돈에 휘둘리기 시작했다. 나는 돈이라는 권력의 희생자가 되어 이리 쿵 저리 쿵 하는 일들을 벌이기 시작했다.


누구의 탓도 할 수 없는 진정 나의 무지함 때문에 벌어진 일은 오지랖으로 학원에 아버지와 동생을 모두 끌어다 놓은 채 가족경제를 마비시키는 일을 만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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