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름 매미가 우는 동네에 하나 남은 느티나무 그늘 아래에서 이웃 아주머니가 건네어 준 삶은 옥수수를 먹으며 생각했다. 그리고는 바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건너편 교회로 뛰어들며 소리 높여 “목사님, 목사님” 하고 문을 벌컥 열어젖혔다. 깜짝 놀라 대기실로 나온 목사님은 날 보고 “오늘은 또 뭐가 궁금해서?” 라며 빙긋 웃어 주셨다. 그 웃음에 화답하듯 옥수수가 낀 이를 보이며 배시시 웃던 나는
“목사님,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고 이루셨잖아요. 우주도 만드시고. 맞죠? 그럼 하나님은? 하나님은 어디에서 오셨어요? 어느 날 갑자기 뿅 하고 나타나셨을까요? 그럼 그 뿅 하는 순간은 어떻게 나타나게 된거에요? 점으로 시작되었을까요? 그럼 그 점은요? 그건 어떻게 나온 거예요?”
머릿속에서 이해되지 않는 그 과거의 까마득한 순간에 대한 궁금증을 다다다다다다다 쏟아내는 어린 계집아이의 말에 인내심 좋게 귀를 열고 들어주시던 목사님은 종알거리던 소리가 그치자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정말 딱 한마디를 해주셨다.
“의심하지 마.”
뭔가 과학적이고 어렵고 복잡한 어른들의 단어가 쏟아질 것을 예상하며 못 알아 들어도 아는 척 크게 고개를 끄덕일 준비를 하고 있던 아이에게는 너무 김 빠지는 대답이었다. 하나님을 의심한 적이 없는데. 그저 궁금했을 뿐인데. 어째서인지 대답을 듣고 어째 평소와 달리 순순히 발길을 돌리는 아이가 의아하셨는지
“오늘은 어찌 말꼬리 한 번 늘리지 않고 가는 거야?” 라며 닫힌 문을 벌컥 열어 배웅은 해주신다.
항창 모든 걸 다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에 불타올라 있던 호기심 지수 가득인 12살의 나는 그렇게 그 뒤로 열렸던 교회 문을 다시 닫고 들어가지 못했다.
모태불교 집안에서 자랐지만 너무 즐거워 보이는 교회활동을 동경하다 간신히 허락을 얻어내고 초등학교 3학년 여름성경학교를 나간 뒤 주일마다 빠지지 않고 나갔던 예배를 정말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발걸음 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교회는 우리 집 대문에서 불과 30초 거리지만.
오가며 만나는 교회 친구들, 어른들, 목사님 하나같이 왜 이제 나오지 않느냐 물어보면 배가 아팠고, 할머니댁 다녀왔고, 심부름이 있었다고 갖은 핑계를 대며 그 순간을 빠져나갔다. 27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나는 교회 기준 집 나간 딸인 상태다.
그럼에도 아이의 유치원은 교회부속으로 선택했고, 주일마다 교회를 보내며, 전체 인원의 1/5도 참여하지 않는 유년부 찬양팀 활동도 시키고, 예배 시간이 되기 전 교회 문 앞까지 꼬박꼬박 아이를 데려다주고 있다. 주일마다 교회 문 앞에서 나에게만 무슨 결계가 쳐져 있는 듯 5m 앞에서 발 한 걸음 더 내딛지 못하고 돌아올라 치면 오가며 얼굴 익힌 동네 주민이자 교인들이 아주 환하게 인사하고 꼭 한 마디씩 건네어준다.
“어머니, 어머니도 같이 예배 드리시죠.”
“다음 사랑방 모임 함께 해요”
“왜 그냥 가세요. 이리 오세요”
그중에는 아이들이 친해서 아주 가깝게 지내는 지인들도 다수지만 그 순간만큼은 매몰차다 싶을 정도로 거절하며 집으로 돌아오고는 한다. 얼마 전 그중 한 명과 차 한 잔을 하는데 대뜸 왜 이런 기이한 형태의 종교 생활을 하고 있느냐는 물음을 받고 다시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왜지? 뭐지? 무엇이 나를 이렇게 떠돌게 하는 거지? 내가 종교를 갖고 있는 건가? 생각에 생각은 꼬리를 물다 드디어 떠오른 그것은 바로 ‘뫼비우스 띠의 시작점’ 이다.
우리의 뇌는 참 반항적인 부분이 있는지 하지 말라고 하면 꼭 더 떠올리게 되는데 12살의 내게 의심하지 말라는 목사님의 말이 떨어진 순간 그 말이 귀에 맴맴 돌아 눈을 감아도 떠도 앉아도 서도 앉아도 화장실 갈 때도 제일 좋아하는 텔레비전을 볼 때도 의심에 의심에 의심만 더해져 갔다. 그러다 어느 순간 나는 이런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바로 이 세계는 뫼비우스의 띠고 그 시작점은 각 개인이다.
내 몸 안에 세포들이 사실은 우리와 같은 세계를 구성하고 있는 것이어서 내가 배가 아픈 건 내 몸 세상 속에서 홍수, 해일 등으로 작용을 한다. 열이 나는 건 폭발, 화재 등이고 왕 여드름을 짜면 화산폭발의 조짐이고 재채기를 하면 지진이 일어난다. 그리고 몸 안의 세포들 역시 나와 같이 자기 속에 또 다른 세계가 있고, 그 안에 또 세계가 있고, 있고, 또 있고, 물론 나도 어느 생명체의 세포인 것이다. 러시아 인형 마트료시카처럼.
그렇지만 점점 커지고 점점 작아지는 형태가 아닌 뫼비우스의 띠로 서로 연결되어 있고 그 끝도 시작도 찾을 수 없어 결국 천국도 지옥도 의심하며 나를 세상 제일 귀여워해 주시던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이 세상이 지옥이지. 난 더 떨어질 곳도 없어라는 생각까지 뻗어 나가고야 말았다. 그 생각의 마무리를 짓지 못하고 뫼비우스 띠의 시작점은 구경도 못한 나는 오늘도 교회 문 앞에 발걸음을 돌린다. 부디 어느 날 아이를 통해 조금의 실마리라도 얻기를 기대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