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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리멘탈 Aug 09. 2023

사람이 제일 무섭다. 그중 제일은 한국 사람이다.

첫 하숙집, 그리고 삼촌의 두 얼굴 2

이모는 음식을 잘했는데 그중에서도 돈가스를 기가 막히게 만들었다. 겸상을 안 하기 위해 요리조리 피하던 나도 이모가 돈가스를 하던 날에는 따끈따끈한 돈가스를 먹기 위해 눈치싸움을 해가며 돈가스를 사수했다. 그날도 저녁으로 이모가 돈가스를 만들었다. 살금살금 내려와 식탁을 살폈다. 같이 앉아 식사를 하는 날도 있고 아닌 날도 있었기에 다른 식구들은 별 신경을 쓰지 않고 식탁에 다 앉아 저녁을 먹을 준비 중이었다. 그 사람 자리는 비어있었다. 그 사람이 집에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없었던 나는 삼촌은요 하며 그 사람의 행방을 물었다. 저녁을 나중에 먹겠다고 했다는 말에 오래간만에 나는 식탁에 앉아 다른 식구들과 식사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사람이 언제 내려올지 몰라 허겁지겁 밥을 먹었다.


밥을 먹고 살금살금 2층으로 올라가 내 방으로 들어가려던 때였다. 그 집은 방문 세 개가 마주 보고 있었는데 그 사람의 방에서 뭔가 퍽퍽 거리는 둔탁한 소리가 났다. 그래서 방에 들어가다 말고 머뭇거리다 그 방 쪽으로 귀를 대려던 순간 문이 확 열리며 이모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울면서 뛰어내려갔다. 나는 너무 놀라 같이 뛰어 내려갔는데 그 사람이 플루트 케이스를 들고 뒤따라 내려왔다. 내가 들었던 그 소리는 그 사람이 그 딱딱한 케이스로 이모를 때리고 있던 끔찍한 소리였다. 소파에 앉아 훌쩍거리며 울고 있는 이모에게 빨리 올라가라며 소리를 지르고 악을 썼다. 소리 지르던 그 사람 뒤에는 식탁에서 자신의 아이들과 그 플루트의 주인이었던 셰어생 오빠, 그리고 형이라고 부르던 우리 아빠가 평화롭게 앉아 식사를 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어이가 없었다. 갑자기 분노가 치밀었다. 그리고선 난 겁을 상실했다. 플루트 케이스를 한 손에 들고 얼굴이 벌게져서 이모에게 윽박지르는 그 사람을 막아서곤 무슨 짓이냐며 같이 악을 썼다. 그걸로 애들 앞에서도 또 때려보라며 내가 매섭게 몰아치자 상황 파악을 한 아빠와 셰어생 오빠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울상이 된 아이들은 셰어생 오빠가 데리고 방으로 올라가고 아빠는 그 사람을 말리기 시작했다. 그 틈에 나는 이모손을 붙잡고 그 집에서 나와 내 모발폰을 쥐어주며 교회 사람들한테 연락해서 가라고 했다. 이 집에는 다시 오지 말라고 하며. 이모는 울먹이며 고개를 흔들고선 내 모발폰을 들고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이모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나는 큰길에 서있었다. 그러고선 집에 돌아왔을 때는 어른들은 우리를 찾으러 다 나갔고 가여운 아이들은 불안에 떨며 거실 소파에 앉아 울고 있었다. 아이들을 다독여 별일 아니라는 선의의 거짓말을 했다. 밥 먹다가 못 볼 꼴을 본 아이들이 너무 불쌍했다. 아이들을 방에 데리고 가서 침대에 눕히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책을 읽어주며 재웠다. 아이들이 잠에 들었을 때 나는 방에 돌아와 문을 걸어 잠갔다. 책상에 앉아 내가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생각해 보니 등골이 오싹했다. 아빠한테 연락을 하려고 보니 내 모발폰은 없었고 아빠는 모발폰도 두고 나를 찾으러 나갔다. 


심장이 쿵덕거리고 손이 덜덜 떨렸다. 혼자 있는 게 너무 무서웠다. 그래서 아빠 모발폰으로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비싼 비용을 걱정할 상황이 아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끈금없이 내가 울면서 전화를 하니 엄마는 많이 놀래기도 놀랬을 거다. 엄마는 왜 그러냐, 무슨 일이냐 물었다. 엄마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다 털어놓고 싶었지만 신경질적인 엄마 목소리에 차마 더 이상 말을 더 할 수 없었다. 


금옥이 이모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가게 근처에서 일하던 금옥이 이모는 내가 어릴 때부터 나랑 놀아주고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주던 좋은 어른이었다. 이모 역시 그 사람을 알고 있었다. 이모에게 물었다. 삼촌이 허리를 껴안고 허벅지를 쓰다듬고 입을 맞추는 행동이 괜찮은 거냐고 물었다. 수화기 건너편이 조용해졌다. 잠깐의 정적 후 이모는 단호하게 말했다. 그건 괜찮지 않은 거라고. 잘못된 거라고 분명하게 말했다. 그동안 참아왔던 서러움이 몰려오며 핸드폰을 붙잡고 엉엉 울었다. 그러다 누가 집에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이모에게 엄마와 아빠에게는 비밀로 해달라고 했다. 눈물을 닦고 숨을 죽이고 기다렸다. 누군가 방앞에 걸어왔고 문을 열려고 했다. 셰어생 오빠 거나 아빠이기를 바라며 조심히 불렀다. 


아빠?


대답이 없었다. 나도 가만히 앉아 있었다. 그러자 거칠게 문을 열려고 했다. 그 사람이었다. 덜덜 떨며 저리 가라고 했다. 그랬더니 나에게 욕을 쏟아내고 더 악다구니를 쓰며 문을 열라고 했다. 갑자기 조용해졌다. 내가 있던 방은 아이들과 셰어생 오빠가 쓰던 방과 발코니로 이어져 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그 사람이 발코니에 와서 문을 열려고 했다. 다행스럽게도 발코니 문은 잠겨 있었다. 너무 무서워서 목소리가 잘 안 나왔다. 


애들 자고 있어요. 애들 또 울리려고 그래요?


유리 너머 그 사람은 나를 무섭게 노려보다 아이들 방으로 다시 들어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돌아온 아빠는 나에게 미안하다고 했다. 그리고 이사 가자고 했다. 

그렇게 끔찍했던 첫 하숙집에서 나는 해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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