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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리멘탈 Aug 11. 2023

못난이 셋째

첫 만남

2008년 9월. 난 그 무렵 졸업은 했는데 직장문제로 깊은 좌절에 빠져 있었다. 호주나라라는 웹사이트에 광고가 하나 올라왔다. 아기 강아지를 분양한다는 글이었다. 무엇인가에 홀린 듯이 광고를 보고 전화를 했고 늦은 오후에 강아지를 보러 가는 약속을 잡았다. 전화를 끊고 어찌나 설레던지. 보러만 가자 했던 건 맘에도 없는 말이었다. 난 벌써 강아지 이름을 고르고 있었다. 우리 집에 오는 강아지들은 다 자연에서 이름을 따왔다. 이슬이, 하늘이, 산이, 바다... 그 당시의 내 심경을 대변하듯 나는 '태풍'이라는 이름을 지어 놓고 약속장소로 향했다.


카슬힐에 있는 이층짜리 번듯한 하우스에서 2008년 8월 3일에 태어난 다섯 꼬물이들이 나를 반겼다. 엄마는 시츄고 아빠는 몰티즈랬다. 화목한 가정에서 자연스레 태어난 아이들이었다. 내가 갔을 때 아빠 강아지는 2층 어딘가에 있었고 엄마 강아지는 극도로 예민하고 너무 맹렬히 짖어서 방에 갇혀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내 강아지의 엄마에게 너무 미안하고 짠하다. 내가 얼마나 미웠을까.


첫째, 둘째는 엄마를 닮아 완전 시츄 같았고, 셋째는 안경을 한쪽만 쓰고 있었고, 넷째, 다섯째는 아빠를 닮아 완전 몰티즈 같았다. 첫째 덩치가 제일 컸고 막내로 갈수록 덩치가 작아졌다. 화장실을 벌써 가린다던 첫째는 태풍이랑 이름이 아주 잘 어울리는 잘생긴 남아였다. 그래서 그 아이를 데려갈 생각에 붙잡고 코에 갖다 댔다. 나를 좋아하는지 나름 테스트하는 거였는데 아무리 뽀뽀를 하라고 해도 고개를 돌리고 나를 거부했다.


그러는 동안에 그중 제일 못난이였던 셋째는 내 무르팍에 앉아 배를 까고는 온갖 재롱을 다 떨었다. 하지만 누가 봐도 믹스견이었던 셋째에게 난 눈이 가지 않았다. 나는 둘째를 붙잡고 뽀뽀를 시도했지만 둘째 역시 나에게 별 관심이 없었다. 셋째는 내 양말을 물고 나한테 달라붙어 혼자 놀고 있었다. 넷째와 다섯째는 둘 다 여자 아이여서 내가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다시 봐도 셋째는 못난이였다. 어떻게든 첫째와 둘 때의 환심을 사려고 노력해 보았다.


"애 아빠랑 우리 애들은 셋째가 제일 이쁘대요. 쟤는 다른 애들하고 좀 달라요."


나를 친절하게 맞아 주셨던 아주머니가 말씀하셨다. 내가 들어간 순간부터 나에게 달라붙어 있던 셋째를 들고 코를 갖다 댔다. 기다렸다는 듯이 신나게 꼬리를 흔들며 뽀뽀를 했다. 두 손에 꼬질꼬질한 못난이 셋째를 들고 가만히 쳐다봤다. 아무리 봐도 못난이다. 그렇지만 다른 아이들은 나한테 별 관심이 없고 이 녀석만 나한테 이렇게 달라붙으니 얘인가 싶었다. 아주머니에게 봉투에 준비한 이백불을 드리고 아이를 안아 나왔다.


그렇게 나는 선택됐다. 못난이 셋째에게.


2008년 9월 19일. 데려오고 다음날 아침. 사진을 뭐 이리 찍었는지... 초점이 이제 그나마 제일 잘 맞은 사진.
2008년 9월 20일. 초점은 안 맞지만 그래도 전신 사진 중 이게 제일 잘 나옴.
2008년 9월 20일. 가장 초점 잘 맞은 사진.




그때는 지금처럼 사진 찍는 게 당연하지 않았어.

너를 처음 만났던 날, 막 눈 뜨기 시작한 너를

네 형제들하고 같이 사진 한 장 남겨뒀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날 사진 한 장 안 찍은 걸 너무너무 후회해.

누나가 그때는 어려서 별 생각이 없었어.

작고 소중한 너를 만났던 그날이

나한테 얼마나 중요한 날인지.

누나를 선택해 줘서 고마워.

난 그날 마지막까지 너를 안아주지도 않았는데 말이야.

너는 어떻게 알고는 나에게 와주었어.

다시 돌아간다면 누나 진짜 잘할 수 있을 거 같은데.

언제 시간이 이렇게 흘렀을까.

네가 나에게 온 그날 정말 모든 것이 바뀌었어.

네가 태어난 집 엄마 말이 정말 맞았다.

너는 좀 달라. 너무 특별하고 별난 강아지지.

너의 엄마, 아빠가 이 세상에서

건강하게 잘 지내다 갔는지 궁금해.

그리고 너한테 좋은 유전자를 물려준 거 같아서

너무 고마워.

너는 네 엄마를 닮은 거 같은데

난 요즘 네 엄마가 아주 오래오래 건강하게

이 세상에 머물다

아주 평온하게 무지개다리를

건너갔기를 바라고 또 바라.

누나가 안 울고 너한테 편지 쓸 날이 있기는 한 걸까?

내 마음이 준비될 수는 있기는 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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