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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즈블리 Nov 12. 2024

사실 내가 그만둘 수밖에 없었던 진짜 이유는..

IT직종을 그만둘수밖에 없었던 이유

프롤로그




평생 직장이 없는 시대에 이직은 해도 되는 시대가 되었다.

이직은 '커리어를 쌓아나아가는 이직'과 '커리어를 전환하는 새로운 시작' 이 2가지로 분류된다.





지금 다니고 있는 직장이 나와 맞지 않아서, 현재에 내가 담당하고 있는 직무가 나와 맞지 않아서, 불가피하게 직무전환을 해야하는 상황으로 고민 중이신 분들이 계실 것이다. 





이유가 어떻든 커리어의 전환과 직장의 변경은 도전을 필요로 한다. 

익숙한 것을 탈피해서 새로운 세계로의 발걸음을 내딛어야 하는 새로운 출발. 





그 출발에는 언제나 두려움과 불안함 그리고 기대감과 걱정 등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러한 복잡한 감정은 나도 겪었다. 





나는 조금 더 특별한 길을 걸었다. 

기존의 직무를 그만두고, 브랜드를 런칭했으며, 그 후에 또 다른 직무로의 전환을 해나갔다. 이러한 항해를 한 분들은 다수는 아닐 것이다. 이런 나의 희귀한 경험에서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내가 느끼고 배운 점들을 생생하게 기록했다. 이러한 기록들이 누군가에게는 어떠한 영감으로 다가가길 기대하면서. 






차분하게 하루 하루 한 챕터씩 읽어봐주기를 권한다.

알게 모르게 들은 누군가의 이야기들은 내 새로운 시작을 이어나가게 해줄 자극제가 되었었다. 

이제는 나의 이야기가 당신의 새로운 시작의 좋은 자극제가 되길. 















과거나 지금이나 누군가 나에게 여전히 묻곤했던 질문이 있다. 

"서비스기획 일 어땠어요?" 라고 묻는다. 

새로운 회사의 면접 때나 지인들이나 동료들 등 나에 대해 궁금한 사람들은 묻곤 했던 질문이다. 






"잘 맞았어요, 재밌었어요"

라고 나는 대답했다. 






그러던 나는 이 기획 일을 그만둘 수 밖에 없었다. 








내가 서비스기획자를 그만둘수밖에 없었던 이유





1-1. 조금은 달랐던 출발




이런 내가 IT직종의 서비스기획자를 그만둘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다. 

2곳의 회사에서 신입으로 재직하던 시절, 여러 프로젝트를 담당할 때였다. 





내가 서비스기획자로 입사하던 당시 갈 수 있는 곳은 극히 제한적이었다. 

코로나19 로 인해 채용에도 급진적인 변화의 바람이 불었었다. 

때문에 내가 입사를 할수있었던 곳은 스타트업 뿐이었다. 





경력만 찾는 시절, 경력은 1도 없는 나로서는 그저 나를 뽑아주는 곳에 가야만 했기에. 

그렇게 나는 스타트업에 들어갔다. 스타트업으로 경력을 쌓아갔다.

내가 2번째로 입사한 스타트업은 서비스기획팀이 초반엔 없었으며, 고로 나는 서비스기획자 1명이었다. 






해당 회사의 과거 히스토리를 들어보니, 서비스기획팀이 명실상부했고, 최소 15명의 서비스기획자가 근무했다고 한다. 그러나 몇년 전에 해당 팀이 공중분해되더니, 점차 사라졌다고..

아무튼 내가 입사한 회사는 그런 회사였다. 

내가 보고 배울 서비스기획팀장님 조차 없는 그런 곳, 서비스기획 실무를 옆에서 눈으로 보고 배울 2-3년차의 실무자도 없었다. 그렇게 나는 그 곳에서 홀로 서비스기획자로서의 길을 가게 되었다. 






반대로 개발팀은 한 층을 다 차지할 만큼의 인원이 있었다. 15명 ~ 20명 남짓이었던 것 같다. 

이런 부분이 아이러니한 포인트였는데, 아무튼 내가 다닌 조직은 그러했다. 







그렇게 홀로 개발자 3-4명에 개발팀장님까지 상대하며, 프로젝트를 서비스기획자로서 꾸역꾸역 하고있었다. 평균 내가 맡고있는 프로젝트는 2-3개였다. 1개만 오로지 맞던 때는 입사 초기 딱 한달이었다. 





나는 회사의 프로덕트를 분석하고 내 나름대로 어떻게 개선해야하는지 제안서를 만들고 있었다. 그러나 그 한달이 지나자 점차 내가 맡는 프로젝트는 많아졌다. 홀로서 할수없는 규모있는 큰 프로젝트를 제외한, 회사내의 필요한 서비스 프로젝트들은 물밀듯이 들어왔다. 에이전시가 아니라 인하우스임에도 불구하고, 

서비스 기획요청까지의 체계화된 프로세스가 없다보니, 사용자경험의 개선이 필요하다 혹은. 새로운 기능이 필요하다 하면 그냥 찾아와 다짜고짜 들이대는 경우도 있었다. 






그 때 난 이 생각이 들었다. 

'난 이제 막 입사한 고작 신입인데...'






홀로 상대해야하는 어려움, 

레퍼런스와 도움 및 조언을 요청할 서비스기획팀의 부재, 

실무 프로젝트들을 몰라도 내가야 하는 부담감 등의 감정들이 나를 덮었다. 그렇게 항상 2-3개의 프로젝트를 맡으며 나의 시간은 흘러갔다. 








1-2. 그러던 어느 날






잘해내고 싶은 마음, 따라가기엔 버거웠던 몸





그러던 어느 날 손가락의 저린 현상이 심해졌다. 맡고있는 업무들에 대한 부담감 때문이었을까. 

나의 역할에 대한 책임감이었을까. 내 역할을 넘어서 잘해내고 싶은 마음때문이었을까. 

그런 감정들에 대한 마음고생은 어느 날 불현듯 몸고생으로 나타났다. 








마치 뻐그덕, 뻐근한 저린 현상이 몇 달이 지속되더니, 급기야 손가락이 움직이지 않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병원을 가보니, 의사선생님은 나에게 염증의 가속화로 퉁퉁 부어있는 상태라 손을 사용하지 말라고 했다. 

나에게 그 말이 말도안돼는.... 해결책이었다. 








손을 쓰며 일해야만 하는데, 손을 쓰지 말라고 하니 답답했다. 

근데 사실 쓸수도 없는 지경이라, 맞는 말이었다. 

그렇게 나는 오른손목과 손가락을 받쳐주는 정형외과 기형물을 하고, 거의 매일 점심시간 마다 물리치료를 받으러 다녔다. 솔직히 치료를 받고 나면 3시간은 그 효과가 있었지만, 3시간이 지나면 통증은 지속되곤 했다. 그렇게 나는 병원생활을 1달을 다녔다. 






나는 그날의 병원진료 이후 회사에 오자마자, 총무팀에게 슬랙을 했다. 그리고 버티컬 마우스를 요청했다. 기획서를 애자일로 하는 경우가 잦아, 주로 기획서의 화면설계며 플로우 차트 작성이며 주로 figma를 활용하여 했다. 그런데 그러한 화면의 디테일한 조작을 할 때에 일반 마우스로 6개월 이상을 하니, 손가락에 무리가 온 것이 분명했다.






그렇게 나는 움직이지 않는 오른손을 붙들고, 옷도 가족들에게 입혀달라고 하며 출퇴근을 하고, 오른손은 사용하지 못하고 왼손으로만 업무를 했다. 그 때 내가 믿을수있던건 MS와 구글이었다. MS PPT와 구글 문서에는 음성인식 타이핑 기능이 있어, 그 기능으로 슬랙을 하고, 이메일 답변을 쓰고, 기획서를 만들었다. 







조용한 IT회사에서 누가 통화하듯 들리는 말소리는 주로 나의 목소리였다. 

그 나의 목소리는 타이핑을 위한 AI에게 음성인식을 요청하는 것이었다. 그런 내 모습이 안타까워 보였는지, 내가 입사한지 8개월째 들어오신 서비스기획팀장님과 각 팀의 동료들이 나의 업무를 도와주곤 했다. 그렇게 오른손을 움직이지 못한 채 1달을 했다. 






그렇게 회사를 다니면서 느낀 사실은 어느 회사든 일을 제대로 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일을 적당히 하는 사람이 있다. '제대로'란 자신이 맡은 온전한 역할의 책임을 다해내고, 그 이상의 것도 해내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어느 조직을 가던 이런 사람들의 비중은 나뉜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그 조직의 성장을 이끌어내는 것을 보곤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을 나는 좋아했다. 가장 멋있었고, 든든했으며 나의 멘토같은 존경하는 분들이셨다. 그런 그들을 닮고 싶었기에, 나도 일을 제대로 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사수없는 기간 동안 대신 구글 사수를 두고 찾아가며 돌파해나갔다. 






업무가 몰리는 현상인, 쏠림현상은 어딜가나 특정 어느 누군가에게 몰리는 것을 자주 보곤했다. 보통의 근본적인 원인은 사람이 없어서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내가 속한 서비스기획자, 서비스기획팀도 그러했다. 그렇게 프로젝트, 업무의 과중은 특정 사람인 나에게도 찾아왔다. 그리고 그 과중의 여파는 나의 손에도 고스란히 전해졌다. 







1-3. 내가 서비스기획자 일을 그만둘수밖에 없었던 이유





손가락 이상증세.





원하는 일을 하기 위해서는 건강, 체력도 중요한 요소이다. 아니, 어쩌면 전부라고도 이제는 생각이 든다. 

내가 심각한 불치병에 걸린 것은 아니지만, 손이 중요한 직업에서는 손의 불편함이 나에게는 크게 다가왔다. 

1년 3개월의 2번째 회사의 퇴사 후에도 정형외과와 한의원, 그리고 자가치료(파라핀), 타이핑과 마우스 동작 최소화하기, 손가락 운동을 거의 3개월 간 병행했다. 그러니 점차 호전되었으나. 하루 5시간 이상 타이핑이나 마우스 등의 손가락 사용을 하면 오른손은 아직도 저려서 손가락이 불편해진다. 아무리 안 쓰고 하루 3시간만 써도 그런 증세가 1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있다. 






기획의 주요 업무는 노트북, 컴퓨터 앞에 앉아 기획 아이디어를 기획문서로 만드는 일, 타 부서들과의 협업 및 커뮤니케이션 및 아이디어 논의 회의하는 것이 주이다. 그러기에 손가락을 자유자재로 쓰지 못하면 그만큼 불편한 것이 없다는 것도 이미 겪어서 그 누구보다 잘 안다. 







예상 밖의 시련.. 그럼 난 뭐로 먹고 살지?





1년 8개월 만에 찾아온 예상보다 생각보다 너무 빨리온 부작용인 손가락의 저림현상으로 인해, 나는 '이 직무로의 커리어를 과연 앞으로 쌓아갈수있을까?' 를 진지하게 고민했다. 나의 목표는 이 직무 커리어로 '일단 3년은 채우자' 였자. 그리고 내가 앞으로도 올인(all-in)할수 있을 지를 나는 판단하려고 했다. 






이렇게 난 반강제적인 상황으로 이제껏 지내왔던 길과는 전혀 다른 길로의 도전을 해야만 했다. 도전을 해야 길을 찾을수있었으니까. 불가피한 상황이었고, 그러기에 받아들였다. 

그래서 다른 길들을 찾아갔다. 

그리고 이렇게 나의 이야기를 글로 적는 것도 그 도전들 중의 하나가 되었다. 






그 도전의 시작은 회사를 다니면서 내가 개인적으로 느끼고 깨달았던 불편한 점들에서 시작했다. 

회사가 시키는 일을 위주로 언제나 해야하는 상황이 나는 힘겨울 때가 많았다. 

한창 의욕을 가지고 해나가고있는 프로젝트를 갑자기 회사에서 중단시키고, 다른 프로젝트를 하라고 했을 때, 그리고 그런 일들의 반복. 

장기적인 수익에 집중하는 투자가 아닌, 그리고 가장 중요한 본질의 것이 아닌 그 외의 것들을 하라는 지시들. 그리고 그것들을 해야만 했을 때. 






나는 내 스스로를 내가 설득시키기가 힘들었다. 설득되지 않고 이해되지 않는데, 해야하는 그 상황들이 나에게는 그야말로 답답함의 연속이었다. 이는 조직이 나에게 급여라는 지급에 대한 대가였다. 그러기에 순응할수밖에 없는 곳이, 회사이자 조직이었다.






그래서 서비스기획 퇴사를 한 후 내가 한 도전은 내 스스로가 조직이 되어보는 것이었다. 

'사업.' 





그렇게 몇 개월의 준비끝에 나는 브랜드를 런칭했다. 

그 브랜드를 통해 내가 하고싶은 목적과 목표 아래, 해야할 일들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명확히 얘기하자면 '내 일, 나의 일'을 나는 하고싶었다. 그리고 이 시작은 내가 패션매장, 현장직에서 근무하게도 이끌었다. 






마우스와 타이핑을 오래해야하는 직업은 못하지만, 현장에서 고객을 직접 대면하는 일을 해보기로 선택했다. 그렇게 타의같은 '직무전환'의 길로 들어선다. 











인생에서 나와 맞는 직업을 찾은 사람이 얼마나 될까





생계를 꾸려가야하기에, 지금 이 직업을 선택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혹은 내가 하고싶은 직업을 선택한 사람도 있을것이며, 

어쩔 수 없어서 자의 반 타의 반 현재의 직업을 선택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여러분이 그리고 내가 가고싶어 하는 인생의 방향과 목적이 있지만, 

현재의 내가 그런 모습이 아닐 수 있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럴 수 있다. 






그러나 분명한 건, 과거의 내가 있었기에, 현재의 내가 있다는 사실이다.

지금의 내 모습, 그리고 내 직업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 그 시간들이 있었기에 더 나은 나를 만들수있다. 

지금의 내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내가 원하는 나의 모습이 되어가는 작은 노력들을 해나가면 된다. 

그 노력이 쌓여 더 나은 내 모습으로 변화될 것이기에. 







과거의 시간은 그만큼 자양분이다. 그 자양분이 쌓여 더 나은 내가 된다. 

서비스기획자로서 산 짧은 시간들을 나는 후회하진 않는다. 

다만, 더 좋은 조직 그리고 더 나은 기회가 있었더라면, 이 정도까지의 마음고생 몸고생은 조금 덜했지 않았을까. 싶다. 

그래도 그런 아쉬움이 있을지언정 그 과거의 시간들을 후회하진 않는다. 

그 시간들을 겪었기에 알수있었고, 깨달을수있었다. 






나에게 무엇이 맞지 않는지. 나에게 무엇이 맞는지.  






나는 마음 속으로 외치는 주문이 있다. 

'나는 될 놈이다. 나는 해낼 사람이다'






여러분도 이 주문을 외치며, 더 나은 나의 모습을 위해 

오늘을 사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우리 모두는 과거를 통해 오늘을 사는 사람이다. 

과거의 모습도 내 모습, 앞으로의 모습도 내 모습이다. 

다만, 시간을 더 소중히 여기길. 

그런 나와 당신이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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