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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hye Oct 25. 2024

작별하지 않는다

불가능한 작별에 대하여

페이지를 쉽사리 넘기지 못했다. 무슨 얘기를 하고 싶으신 걸까? 주인공은 왜 그럴까? 머릿속에 물음표가 한가득해 책을 덮을까도 생각했다. 그때 이동진 영화평론가의 한마디가 계속 읽게 했다.

“한강 작가님 책은 포기하지 말고 꼭 끝까지 읽으세요. 다 읽으면 굉장한 뭔가를 주십니다.”

이동진 평론가가 말한 굉장한 뭔가가 궁금해 마지막 페이지에 마침내 도달했으나 주인공의 생사 여부조차 알 수 없는 결말이 혼란스럽다. 인선이 병원에서 죽고 혼으로 나타난 건지, 아니면 예전 가출했을 때처럼 죽음의 위기까지 가서 혼이 잠깐 나온 건지, 아니면 경하가 인선의 집에 온 첫날 추위에 죽었던 건지, 그저 경하가 인선의 환상을 본 것인지는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는다. 작가님의 얼굴을 보고 묻고 싶은 심정이었다. 마음속으로 그녀에게 질문을 던졌다.

작가님, 예술의 영역이 그런 건가요? 독자가 깨닫고 느끼는 바대로 해석하면 충분하다고 알려주시는 건가요? 환상인지 죽음인지는 중요하지 않다고, 그저 70여 년 전 제주도에서 일어난 사건을 인선과 경하의 대화를 통해 보여주고 싶다고, 비록 환상일지라도, 죽음일지라도 역사적 진실은 변하지 않으니 진실, 사랑과 작별하지 말자고 하시는 건가요?

그렇구나! 물음표가 느낌표로 바뀌는 순간이다. 제목에 대한 의문도 풀린다. ‘작별하지 않는다’는 ‘작별하다’의 부정어로, 소설에서 학살 이후 실종된 가족을 찾기 위해 길고 고요한 투쟁을 하는 생존자 ‘정심’의 마음을 표현한 말이라고 한다. 이별을 고하 지도 않고 이별을 행하지도 않아서 정말로 작별하지 않은 상태. 프랑스어판 제목처럼 '불가능한 작별(Impossibles adieux)'도 있다고, 작가는 말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소설은 제주도 4·3사건의 비극을 경하, 인선, 정심 세 여성의 시선으로 풀어낸다. 전작-『소년이 온다』-의 에필로그에 등장한 꿈과 이 소설 첫 장의 꿈이 연결되어 광주에서 제주로 이야기가 전환된다.

제주도 4·3사건은 1947년 3월부터 1954년 9월까지 7년 7개월에 걸쳐 제주도에서 좌익세력과 경찰 및 우익단체 간의 무력충돌과 진압 과정에서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을 말한다. 1948년 4월 3일, 미군 철수와 남한만의 단독선거를 반대하는 좌익세력과 군정 경찰과 서북청년회 등의 극우단체의 횡포에 반감이 쌓인 제주도민들이 봉기하게 된다. 이를 미 군정청이 경찰과 우익단체를 동원하여 강력하게 탄압한다. 제주도민의 무장투쟁이 끈질기게 전개되자 진압 과정에서 2만~3만 정도로 추산되는 무고한 제주도민이 희생당하는 비극이 일어난다.

70여 전, 이 땅은 이념이 사람보다 먼저였다. 상대의 이데올로기로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은 이들은 가족을 죽음에 이르게 한 이데올로기를 가진 사람 모두를 배척하고 복수심을 키운다. 불행히도 국가는 그 마음을 부추겨 서로를 공격하게 만든다. 소리도 형체도 없는 이데올로기 때문에 한반도는 이념의 전쟁터가 되는 비극을 맞이한다.

작가는 이러한 과거의 비극을 되새기며 그 속에서 인간의 존엄성을 강조한다. 역사보다 인간이 중요하다고, 이념보다 사람이 먼저라고 말한다. 다수의 민간인이 학살되는 역사적 비극이 반복되지 않기 위해서는 과거를 기억하자고 한다. 그리고 과거를 기억하는 것을 넘어 그 기억을 통해 현재와 미래를 더욱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자는, 묵직한 조언을 건넨다.

소설가로서 그녀가 작품에 역사를 담는 방식이 독특하고 탁월한 것 같다. 역사의 수면 위에 올라와 있는 강자들이 기록한 일들이 아닌, 역사의 수면 아래에 있어 우리가 인식하지 못했던 사실과 사람들을 끌어올려 우리 눈앞에 데려다 놓는다.
노벨문학상을 받았으니 작가의 작품이 교과서에 실릴 것이다. 한국 역사에 대한 『소년이 온다』와 『작별하지 않는다』가 교과서에 실림으로써 다음 세대들이 교과서에서 그 역사를 보게 된다는 것이 대단히 의미가 있는 것 같다.

읽느라 힘들었다. 쓴 사람은 얼마나 고통스럽고 아팠을까. 어렵게 이해하고 고통스럽게 쓴 작가 덕분에 에필로그까지 엄청난 아름다움과 감동으로 남은 작품이다. 끝까지 읽은 나에게 굉장한 뭔가가 온 듯하다. 삶에 대한 사랑과 작별할 수 없고 작별하지 않겠다는 마음. ‘작별하지 않는다’와 작별하지 않길 참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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