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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호 Jan 16. 2024

<나의 영원한 강아지, 슈>

복제가 기적이라는 당신에게

새벽에 들리는 토독 토독- 작은 발소리, 그리고 몇 분 뒤 들리는 찹찹- 물 마시는 소리, 내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던 그 소리.      


2004년 2월 10일 우리는 동네 유기견 보호센터에서 강아지를 데려왔다. 동생은 첫눈에 이 강아지가 아니면 안 된다고 고집을 피웠고 이름을 슈로 지었다. 그렇게 슈는 나의 강아지가 되었다. 정신없이 엉킨 털에 퀴퀴한 냄새를 풍기며 오들오들 떨던 몸으로 슈는 그렇게 우리 집에 왔다. 동생은 첫눈에 알아봤다지만 나는 처음에는 몰랐다. 내가 슈를 이다지도 사랑하게 될 줄은.      


병원에서는 치아를 보더니 3~5살쯤이 되었다고 말했다. 슈는 집에 온 며칠이 지나서도 짖지를 않았다.   

   

나: 태어날 때부터 못 짖는 거 아닐까?

엄마: 혹시 전 주인이 짖을 때마다 혼낸 거 아냐?  그럼 어쩌지

동생: 아냐 착해서 안 짖는 거야. 착해서야.     


우리의 예상과 달리 슈는 몇 달이 더 지나자 마음껏 짖기 시작했다. 우리 집이 자기 집이 되고서야 맘 편히 짖을 수 있던 모양이다. 나는 슈를 만나 사랑을 알았다. 그것은 온전하고 그대로 완전한 사랑이었다. 내가 느낄 수 있는, 그전에는 느껴본 적 없는 그 어떤 불안도, 비교도, 질투도 없는 그런 사랑이었다.      


우리는 거실에서 햇빛을 받으며 마주 보고 누워 있길 좋아했다. 그럴 때면 나는 슈의 콧대를 만지며 슈의 눈 속에 가득 찬 내 얼굴을 바라봤다. 슈도 내 눈을 통해서 자신을 봤을까. 나는 그때마다 슈에게 약속했다. 세상이 끝나는 날까지 지켜주겠다고 반드시 곁에 있겠다고, 나는 슈가 내 말을 알아들었다고 확신한다. 동생과 나는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할까 수없이 많은 날을 불안해했다. 혹시라도 슈를 잃어버리면 어쩌지? 우리가 없을 때 갑자기 슈가 아프면? 뭘 먹다가 목에 걸리면? 다른 강아지가 우리 슈를 물면 어떡해? 동생과 나는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상황에서 슈를 구하려고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다행히도 그런 일들은 일어나지 않았고, 우리는 약속을 지킬 수 있었다. 슈의 마지막까지 우리는 함께했다.     


나이 든 강아지를 지켜보는 일은 내가 경험한 것 중에 가장 두려운 일이었다. 2016년 털의 윤기와 눈빛이 확연히 달라졌고 슈는 잠을 더 많이 오래 잤다. 피하고 싶었지만 우리에게 남은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게 느껴졌다. 말하면 정말 일어날 것만 같아서 우리 가족 그 누구도 이 이야기를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나는 시간이 멈추기를 바라고 또 바랐다. 그쯤 우리 가족은 슈가 오래 잘 때마다 정말 자는 게 맞는지 몇 번이나 확인하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2017년 겨울 슈는 하지 않던 행동들을 했다. 평소에 가지 않던 곳으로 가고, 갑자기 뒤로 걷기도 했다. 처음 내 곁에 올 때는 날 것처럼 뛰던 녀석이 걷기를 힘들어하고 소화도 부쩍 약해졌다. 자주 가던 병원에서는 신장이 많이 약해졌고 수술은 견딜 수 없을 거라고 말했다. 슈와 함께한 13년 넘는 시간의 끝을 향해가고 있었고 우리는 마지막을 준비해야 했다. 약이 독했는지 슈는 더 오래 잠을 잤다. 나는 3시간에 한 번씩 주사기로 약을 먹였고 혹시라도 물약이 기도에 들어가 숨이 막힐까 모든 신경을 곤두세웠다. 하루하루가 두렵고 그래도 슈가 곁에 있어 감사한 나날들이었다. 눈이 내리던 날 나는 너무 작아진 슈를 품에 안고 산책을 했다.     

 

“슈야 눈이 온다. 눈 알지 눈? 언니랑 눈 한 번 더 보자. 그때까지만이라도 조금만 더 곁에 있어 줘. 제발”     

 

슈는 그 약속을 지켜주었다. 내가 슈를 지킨 것이 아니라 슈가 나를 지켜주었다. 나는 사는 게 치가 떨려서 몇 번이나 죽을 생각을 했지만 그런데도 슈를 또 만날 수 있다면 이 삶에 몇 번이고 뛰어들어 다시 살고 싶다. 2017년 12월 10일 동생이 올 때까지 끝까지 기다려준 슈는 동생과 눈을 맞추고 마지막 인사를 하고 별이 되었다. 나는 솔직히 그때의 기억이 드문드문 잘 나지 않는다. 동생이 갔어 갔어..라고 말하고 울었던가. 그대로 동생은 주저앉아 소리쳤고 나는 방마다 뛰어다니며 가슴을 치며 울었다. 우리가 겪은 첫 이별이었다. 그 며칠간이 어떻게 흘렀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나는 한동안 내가 우는 소리에 놀라 잠이 깼다. 동생은 밥을 먹는 것도 잠을 자고 숨을 쉬는 것도 미안해했다. 우리는 시간이 지나서 아무렇지 않게 잘 지낼 우리가 밉고 또 무서웠다. 나는 슈를 보내고 몇 달간 길거리에 산책하는 강아지들을 보면 견딜 수 없어 고개 숙여 울었다. 슈의 사진은 3~4년이 지난 뒤에도 보기가 어려웠다. 너무 보고 싶어서 오히려 볼 수가 없었다.

     

아직도 햇빛을 따라다니던 슈의 뒷모습, 날 바라보는 그 표정, 냄새, 작은 발걸음 소리, 품에 앉았을 때의 감촉이 내 안에 깊이 남아있다. 슈를 보낸 지 몇 년이 지나서도 나는 자다가 ‘아기 밥 줘야되는데, 산책 안 시켰다’라는 생각에 놀라 잠에서 깰 때가 가끔 있었다. 믿을 수 없겠지만 새벽에 슈의 발걸음 소리도 몇 번이나 들었다. 내가 너무 그리워해서 찾아와줬을까. 혹시 우리를 자꾸 뒤돌아보느라 가야 할 길에 늦지는 않았을까. 슈를 보내고 나서 나는 전과는 다른 사람이 되었다. 나는 더 이상 전처럼 죽음을 무서워하지 않게 되었고, 죽음 이후의 세상에 대해 믿게 되었다. 그게 슈를 만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란 걸 알기 때문에 그 어떤 의심도 할 수 없다. 다시는 만날 수 없는 대상을 견딜 수 없을 만큼 그리워하고 사랑한다는 게 어떤 아픔이면서 동시에 그 자체로 사랑인지 처음으로 배웠다. 사랑은 견딜 수 없는 것을 견디게 하는 것이다.    

 

동생: 죽을 때까지 잊지 않으면 그건 영원에 가까운 거 아닐까?

나: 아니, 어떤 마음은 우리가 죽어도 계속돼.     


인생에 기적은 반드시 있다. 동생이 강아지를 키우고 싶다고 고집을 피우고, 우리가 하필이면 그 유기견 보호소에 가고, 동생이 첫눈에 슈를 알아본 것, 그리고 우리가 슈와 함께 보낸 13년 10개월이란 시간은 기적으로밖에 설명할 수 없다. 나의 기적은 왔다 갔고, 한 번이면 족하다. 나는 그 기억으로 살아갈 수 있다. 어떤 마음은 내가 사라진대도 계속될 테니까     


사람이든 물건이든 모든 것에 끝이 있단다.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란다

그리고 한 번 읽은 건 돌아오지 않지

그래서 사람은 한탄하고 괴로워한단다

그래도 시간은 멈추지 않지

아무리 슬프거나 괴로워도 계속 살아나갈 수밖에 없단다

- 반딧불 언덕 (영화)에서      


그렇다. 나는 기꺼이 평생 그리워하고 괴로워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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