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상달빛의 "마음에 쓰는 편지"라는 노래를 우연히 듣게 되었다.
밤이 아름다워
잠이 오질 않아
창을 열고 가만히 벽에 기대어-
기교 없이 깨끗한 그녀들의 음색이 귓가에 꽉 찰 때면 묘하게 마음이 맑아지곤 한다. 경연프로그램에서 그녀들이 부른 4년 전 이 노래를 어떤 비디오클립을 보며 알게 되었다. 그 영상의 제목은
"손편지 수백 통 받은 기분"의 감성이다.
정말 손 편지 수백 통을 주고받았던 시대가 있다. 좋아하는 친구, 선후배와는 일 년에 수십 통을, 아주 가끔은 위문편지와 부모님. 혹은 나를 가르쳤던 선생님들께. 커서는 사귀는 연인에게 손으로 마음의 고백을 썼다.
손글씨로 전달하는 내 마음의 이야기. 특히 중학교 때 학교나 교회에서 마니토라도 하는 날은 아침에 책상밑에 뭐가 있을까 두근거리던 그 기분과 아트박스에서 예쁜 손 편지를 고를 때의 가졌던 마음.
그 마음들은 열셋넷부터 스물 중반까지 열심히 꾸역꾸역 종이박스에 보관되었다가 결국 십 오 년 뒤쯤엔 버리기엔 아쉽지만 정리해야 할 종이쓰레기 목록으로 모두 폐기되었다.
폐기되고 만 그 마음들을
들여다보면 짬을 내어 쓴
누군가의 정성이고, 친구와 더
친해지고 싶은 마음이며 말로는 하기 힘든 위로, 숱한 교감의 흔적들이다.
손으로 쓴 진심들은 자판을 두드리는 일보다는 덜 편리하고 시간도 더 걸리는 일이지만 진심을 보내고 기다리는 일은 봉투를 뜯을
때부터 언제나 설레었던 것 같다.
그러나 마흔 넘어 손 편지 수백 통을 받을 정도의 감동은 남편의 한 권짜리 태교일기 이후로 전무하다.
카톡이모티콘과 프사메시지가
내 기분을 알리는 가장 빠르고 쉬운 신호니까.
이렇게 인스타와 SNS에 길들여졌음에도 가끔은
손편지의 아날로그 감성이 그리운 것은 분명 지금의 내가 있기까지 종이 위에 실린 투박한 진심들이 가끔은 빈 마음을 채워주고 내 유년과 청년의 감성을 더 따뜻하게 해 줬을 거라고 믿기 때문이다.
7살 어린이집을 졸업할 때 받아온 딸아이의 책받침에 삐뚤빼뚤 꼬마들이 쓴 한 줄짜리 롤링페이퍼가 있다.
o o아 사랑해. 잘 지네.
맞춤법 틀린 잘 지네 세 글자에 내 마음 한쪽이 괜히 아릿해졌었다. 초1 마지막 수업에도 아이들은 주저 없이 격려와 칭찬의 말을 써 주었다.
나와 남편은 성장 중에 받은 이 사랑의 기억을 책상 밑 아이의 박스에 열심히 저장 중이다. 내 젊고 어린
날에 그러했던 것처럼 ,
그 작고 예쁜 마음들과 손으로 쓴 진심들을 최대한 오래 간직하게 하고 싶어서.
마음을 주고받는 일이 어색하지 않고 좀 더 당연한 세상이 되길 바라면서.
아이의 가방 속에,
남편의 바지 속에 ,
작은 기쁨하나
몰래 넣어줄 수
있는 그런 엄마이길 꿈꾸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