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설픈 텃밭지기의 수난은 계속되고 있다.
지난 봄,
겨우내 얼었던 땅을 갈고 엎고 축분거름을 섞어서 만든 텃밭은 남편의 고민과 열정으로 만든 작품이다. 흙이 쓸려 내려가지 않아서 나름 실용적인 쿠바식텃밭모양이다. 지난 겨울까지만해도 별로 손 맛을 보지 못해서 심리적으로 위축되어 있었는데 올 봄부터는 새로 시작하는 마음으로 텃밭 한 켠에 도라지씨를 뿌렸다. 작물을 키우기 위해서는 좋은 흙과 적당한 거름이면 다 될 것이라는 나름의 판단으로 파종을 한 뒤 물만 한번씩 주곤 했다. 그런데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나도 싹이 올라올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주변에 함께 심었던 상추, 샐러드야채들은 제법 싹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괜시리 씨앗을 잘못산건 아닌가 하는 의심을 품곤 했다. 한번은 윗집 왕언니라는 분께 도라지 싹이 안올라온다고 푸념을 하니 도라지는 씨를 뿌리고 나면 위에 비닐로 덮어놔야 싹이 올라온다는 것이다. 아뿔싸! 또 실수를 했다는 생각에 아쉬움도 잠시 올 가을에는 도라지꽃도 볼 수 없겠다는 실망감에 한 숨이 나왔다.
도라지는 내 기억에서 조금씩 잊혀져갔다. 하지만 마음 한 구석에 미련의 한 조각이 남아 있었다. 여름 긴 장마로 텃밭에 그나마 아침 밥상에 올라와 주었던 입이 부드러운 야채들이 초토화가 되어갈 무렵, 도라지 싹이 올라오기 시작한다. 긴가민가하는 생각에 사진을 찍어 인터넷에 검색 해보니 도라지 싹이라고 한다. 가슴을 쓸어내리며 며칠전 잡초라고 뽑아버렸으면 어쨌을까하는 안도감에 뭉클함이 올라왔다. 역시나 자연이 하는 일은 기다림이 필요한 일이구나.
씨를 뿌린 뒤 비닐로 덮어 두었더라면 훨씬 싹이 빨리 나왔을지도 몰랐었겠지만 스스로 생명력을 키워낸 도라지가 고마웠다.
한 여름이 지나고난 가을이 선선한 바람을 땅 위로 쓸어내릴 즈음, 도라지는 앙증맞은 꽃을 피워주었다.
내 가슴에도 도라지꽃 한줌이 사랑으로 내려앉는다.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