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13번이었지만 12번과 한 번도 이야기를 나누어 본 적이 없었다. 아마 으레 번호순으로 짝을 짓고 나면 내 짝은 14번이었기 때문이었을 수도 있고, 우리 반 누구도 그 애와 이야기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을 수도 있었다. 그리고 우리 앞의 누군가가 - 아마도 한 7번 정도 - 결석인지 조퇴인지를 했던 어느 화요일의 체육시간, 그날 우리는 우리 반의 여섯 번째 짝지가 되었다.
나는 체육에 소질이 없었고 특히 공을 다루는 데에는 형편없다고 말해도 될 정도였는데, 그날은 배드민턴을 배우는 날이었다. 파트너와 셔틀콕을 30번 주고받아야 A. 안 그래도 자신 없는 과목인데, 교류 한번 없던 그 애와 같은 옷을 입고 나란히 앉아 체육선생님의 이해되지 않는 설명을 듣고 있자니 머리가 팽팽 돌고 몸은 경직되기 시작했다. 몇몇은 어디서 과외라도 받고 왔는지 바로 30번을 퉁퉁 해내고는 강당 구석에서 저들끼리 삼삼오오 모여 자유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나는 입학 이래로 강당과 운동장에서는 항상 뒤처지는 느낌을 받아왔지만, 이번에는 나의 실패와 12번의 수행평가 점수가 유관하다는 점에서 유독 더 불안했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점은 알고 보니 12번도 완벽한 친구는 아니었기에, 나도 완전한 죄책감은 면할 수 있었다는 것이었다.
체육선생님은 여중생들이란 참으로 어련하군, 이라는 표정을 지으시고는 야 다른 반애들도 못한 애들 많으니까, 너네 점심시간이나 쉬는 시간에 와서 연습하라는 말로 그날 수업을 마무리했다. 나는 한 시간 내내 시달린 긴장감의 잔여물을 들키고 싶지 않은 마음에, 태연한 척 12번을 떠나 강당 구석에 앉아있던 친구들에게 돌아갔다.
교실에서 치마만 후룩 갈아입고, 체육 실기 비중은 왜 이리 높은지에 대해 한참 불만을 토로하며 점심을 먹고 나서 교실로 돌아오니 그 애가 가만히 앉아있었다. 나는 눈알을 이리저리 굴려본 다음, 나 배드민턴 연습해야 돼,라는 생각을 말과 행동으로 옮기기로 했다. 나의 어디서 그런 마음이 생겨났는지도 모르겠고, 그 애도 어떤 마음으로 나를 따라나섰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우리는 삼십 분 만에 다시 강당 안에서 네트를 사이에 두고 마주 섰다.
통. 통. 통.
우리의 랠리는 처음보다는 많이 나아졌지만, 셔틀콕은 감히 30회의 고지에 오르려 하느냐며 나를 놀려대는 듯했다.
통. 너는 B야. 통. 잘해봤자 B야. 통. 너 이렇게까지 하는 애 아니잖아. 툭.
셔틀콕이 바닥에 떨어질 때마다 관자놀이가 지릿했다.
나는 정해진 목표가 있는 일을 하면 항상 성공의 목전에서 무너지고 마는 느낌이었다. 다음 체육시간까지 이게 될까 싶고, 나를 의심하는 마음들이 서서히 커져만 갔다. 하지만 내가 공을 받아내지 못하면 내 쪽으로 공이 떨어졌고, 그럼 나는 떨어진 공을 주워야 했고, 자연스레 다시 서브를 넣어야 했다. 내가 그 애를 강당으로 데려온 이상 내가 먼저 포기할 수는 없었다.
기적은 없었고 우리는 별 소득 없이 5교시 직전에야 교실로 돌아갔다. 그리고 다음날 점심시간, 그다음 날 점심시간에도 빈 강당 한가운데 네트를 차지하고 잡담 없이 공을 주고받았다. 다른 날과 다른 점이 있었다면 체육선생님이 지나가다 우리가 연습하는 걸 구경하기 시작했다는 것인데, 선생님은 둘이 그러고 있는 게 재밌다는 듯이 지켜보시다가 야 그 채 중앙에 딱 들어맞게 쳐야 그게 들어가지 그게. 공을 끝까지 좀 봐봐라와 같은 훈수를 한두 마디씩 던졌다. 그러다가 갑자기, 지금 30번을 성공하면 수행평가 점수로 인정해 주겠다는 것이었다.
나는 당황해서 선생님과 12번을 번갈아 쳐다보았지만 그 애는 네트를 넘어와 내 옆에 떨어져 있던 셔틀콕을 다시 집어 들었다. 그렇게 우리의 연습시간은 이제 실전이 되었고,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눈을 한번 마주친 뒤, 5g의 셔틀콕으로 포물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통. 통. 통. 통.... 통. 그렇게 30번의 박자가 지나고서도 공은 아직 공중에 있었다. 그러고 보니 30은 그리 많은 숫자가 아닌 것 같았다. 우린 이미 300번도 넘게 서로 공을 주고받아봤으니까.
선생님은 어유 점수 준다니까 또 금방 하네 이것들이, 하시고는 우리의 출석번호를 적어가셨다. 비로소 등줄기로 땀 한 방울이 미끄러지는 것이 느껴졌다. 이번 고지는 눈앞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나는 처음 느껴보는 성취감에 환호성을 내지르며 12번에게 다가가 한껏 그 애의 등을 두드렸는데, 그 애의 교복도 살짝 땀에 젖어있었다. 12번의 웃음소리를 들은 것은 그게 처음이었다.
그제야 나는 왜 우리가 이야기를 나누어 본 적이 없었던 것인지를 생각했고, 우리는 이런 성취만을 이룬 채로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는 것인지, 내가 앞으로 12번과 이야기를 나눌 용기가 생기긴 한 것인지도 알 수 없었기에